“집값 잡겠다”던 문재인정부가 노무현정부에서 배우지 못한 것[황재성의 황금알]
2: 발표 전 통계 보고 받고 반복 업무 지시로 압박
3: 집값 상승세 지속되자 부동산원장 사퇴 종용
4: 통계 표본 현실화 명목으로 왜곡 은폐도 시도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
매주 수십 건에 달하는 부동산 관련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이 되는 정보를 찾아내는 옥석 가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매주 알짜 부동산 정보를 찾아내 그 의미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
문재인 정부가 모델로 삼았던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실책으로 집값과 땅값이 급등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항변할 때마다 앞세웠던 말입니다. 언론이 비판의 근거로 삼는 통계 수치가 잘못됐고,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심지어 “정확한 정보는 정확한 통계에서 나오며, 이는 부동산 문제의 핵심을 들춰 주고 문제의 해법을 찾는 열쇠가 된다”며 “반면 잘못된 통계는 판단을 오도하고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또 “통계 왜곡의 부작용은 심각하다”거나 “통계는 속일 수 없다”며 언론 등을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의 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통계로 보는 부동산에 대한 오해와 진실’)
문재인 정부는 문 전 대통령이 노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서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비서실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고, 평생의 정치적 동반자였다는 점에서 노 정부의 진화된 형태(‘업그레이드 버전’)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매우 닮았습니다. 집값 하향 안정을 목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규제 위주의 대책을 쏟아냈습니다. 또 두 정부 모두 집권 5년 동안 20회가 훌쩍 넘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통계에 대한 태도는 달랐습니다. 통계의 ‘정확성’을 강조했던 노 정부와는 달리 문 정부는 부동산 통계 가운데에서도 핵심인 부동산 가격 통계를 입맛에 맞게 ‘마사지’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 것입니다.
감사원은 지난 15일 보도자료(‘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를 통해 “(문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이하 ‘BH’)과 국토교통부 등은 통계청과 (부동산 가격통계 작성 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해 통계수치를 조작하거나 통계서술정보를 왜곡하게 하는 등의 각종 불법행위를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감사원은 또 “이에 대해 통계법 위반,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의 범죄혐의가 확인된 관련자(12명=BH 6명+국토부 3명+부동산원 3명)에 대해서는 지난 13일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대검찰청은 지난 20일 사건을 국토부와 통계청 등이 세종시, 대전시에 위치한 점을 고려해 대전지방검찰청에 배당했습니다.
수사 결과 감사원 발표가 사실로 확인되면 처벌을 받습니다. 통계법 위반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됩니다.
문 정부 청와대 참모와 장관 등을 지낸 인사들 모임인 ‘사의재’는 감사원 발표에 대해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부동산 주간 동향 통계를 추가로 받아본 것, 관계기관에 급격한 통계 수치 변동의 설명을 요청한 것 등 감사원이 문제 삼은 모든 사안은 시장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감사원의 판단은 다릅니다. 통계법(27조의 2의 2항) 위반 혐의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관련 조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통계작성기관에서 작성 중인 통계 또는 작성된 통계를 공표 전에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며 통계수치 사전 공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김현미 전 장관이 국회의원이던 2013년 7월 대표 발의한 것으로, 2014년 박근혜 정부의 통계법 개정안에 반영된 뒤 2015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됩니다. 현재까지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따라서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혐의가 입증되면 김 전 장관은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리는 첫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큽니다.
흔히 통계는 국가 운영의 기본 인프라로 여겨집니다. 국가의 상태를 측정하고 수치화한 정보는 정부 운영의 기초자료이기 때문입니다. 통계를 뜻하는 영단어 ‘statistics’가 ‘국가’를 뜻하는 ‘state’로 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례는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만들기 위해 독립성과 중립성, 정확성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반면교사로 남길 바랍니다. 감사원 발표 자료와 언론 보도 등을 밝혀진 문 정부의 부동산 통계 조작과 이를 은폐하기 위한 시도 과정을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는 이유입니다.
● 집권 초기는 통계 결과 수정 유도
집권 초반기인 2017년 6월부터 2018년 8월까지만 해도 압박의 수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공표 전 가격통계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그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현장점검을 지시하거나 결정 근거를 해명하라는 지시를 반복적으로 내리는 식이었습니다. 즉 알아서 통계수치를 수정해 제출하라는 우회적인 압력이었습니다.
공표 전 통계 자료 공개 요구는 집권한 지 불과 한 달 정도 지난 6월 9일에 있었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BH(정책실장)는 첫 부동산 대책 발표(발표시점·6월 19일)를 앞두고 주 1회 공표되는 자료로는 대책 효과를 확인하기에 부족하다며 국토부에 작성 중에 있는 ‘서울 주간 주택동향(매매)’을 추가로 조사(주중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요구합니다.
이에 부동산원이 제공 중인 정보로도 시장동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거절했지만 이튿날인 6월 10일 다시 주중 조사를 요구합니다. 당시 BH는 부동산원에 “한시적으로 몇 주간 주택시장을 모니터링하는 차원”이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주중 조사는 2021년 11월 12일까지 계속됐습니다.
그 결과 부동산원은 주 1회 국토부에 보고하던 주간 가격 통계를 6월 12일부터 ▲주중치(보고시점·매주 금요일) ▲속보치(매주 월요일) ▲확정치(매주 화요일)로 구분해 BH와 국토부에 주 3회씩 보고합니다.
8·27 대책은 수도권에 30만 채 이상의 추가 주택 공급이 가능하도록 30여 곳의 공공주택 추가 개발 진행과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추가 지정을 골자로 합니다. 문 정부 최초의 공급대책이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서울시도 정부의 설득을 받아들이고 계획 발표 7주가 지난 8월 26일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발표와 추진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합니다.
이에 따라 부동산원은 4주차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을 0.45%로 낮춰 발표합니다. 당시 부동산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개발 호재와 상승 기대감으로 매물 회수되며 상승세이나, 통합개발 보류된 영등포구(+0.47%)는 상승 폭이 소폭 축소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금주 조사는 8월 21~27일까지의 가격변동을 반영한 것으로 금주 일요일부터 순차 발표된 정부의 시장안정정책이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 집권 중반기부터 통계 조작 노골화
업무 지시도 간접적인 유도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읍소나 협박 등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바뀝니다.
김 전 장관의 취임 2주년을 앞둔 2019년 6월 하락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고, 3주차 통계(6월 20일)에서 매매가 변동률이 마이너스(-)에서 보합(0.0%)으로 바뀌자 국토부는 부동산원에 “이대로 가면 저희 라인 다 죽습니다. (중략) 전주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변동률을 부탁드리면 안 되겠습니까”라며 압박을 가합니다.
이에 부동산원은 서울 매매가 변동률을 –0.1%로 소개한 뒤 “하락폭이 컸던 일부 인기 신축 및 재건축 단지는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구축 단지는 여전히 매물 누적으로 하락하는 차별화된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며 “32주 연속 하락세를 지속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감사원에 따르면 당초 이 보도자료에는 “서울지역이 보합세로 전환, 강남 4구의 상승세가 커지고 있다”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담길 예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압박에도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국토부는 2019년 7월 4일 부동산원 직원을 세종시로 불러들여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감정원의 조직과 예산은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릅니다. 또 한 달 뒤인 8월에는 부동산원 원장에게 “국토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며 본업(주택통계 등)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사퇴를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실제 가격 반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부동산원 직원들은 2019년 2월부터 2020년 6월까지 70주 동안 BH와 국토부에 보고하는 주중치에 대해서는 아예 표본조사도 하지 않고, 임의대로 산정한 가격을 청와대와 국토부에 제공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즉 ‘엉터리 통계’였던 것입니다. 문제는 BH와 국토부가 주중치보다 속보치나 공식 발표 통계인 확정치를 더 낮게 산정하도록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이후에도 통계 왜곡은 계속됐고, 대상도 총선을 2개월 앞둔 2020년 2월 서울지역 매매가에서 수도권 매매가로 확대됩니다. 2019년 서울 강남지역을 타깃으로 투기적 대출 수요 규제 강화와 종합부동산세율 상향 조정 등을 골자로 하는 ‘12·16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뒤 서울 강북과 수도권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020년 8월부터는 서울 전세가격도 대상에 포함됩니다. 직전인 그해 7월 말부터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서 예상됐던 전세금 상승을 우려한 조치였습니다. 실제로 3개월 뒤인 11월 1주차부터 전세금 상승폭이 커지자 BH는 국토부를 질책했고, 국토부는 다시 부동산원에 ‘통계 마사지’ 압박을 가합니다. 이에 11월 2주차(11월 12일) 보도자료에는 0.16%로 집계됐던 서울 전세금 변동률이 0.14%로 0.02%포인트(p) 낮춰져 소개됩니다.
● 통계 왜곡 사실 은폐 시도도
이런 과정에서 통계 조사를 책임졌던 부동산원 직원들의 저항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 정부의 통계 조작이 시도됐던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 사이에 모두 12차례에 걸쳐 정부 보고용 가격 조사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절됐습니다.
부동산원 관계자들은 심지어 2019년 11월 경찰 정보관에게 “BH(국토교통비서관실)와 국토부가 아파트 가격 통계에 외압을 가하고 있다”고 제보했고, 이런 사실은 당시 BH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보고됐습니다. 하지만 추가적인 조사 등 별도의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통계 왜곡을 은폐하거나 여론을 호도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났습니다.
2020년 7월 김 전 국토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문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집값 상승률은 11.5%”라고 말한 게 언론과 경실련 등으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당시 BH(정책실장)는 8월 19일 열린 대책회의(‘부동산 통계현안과 개선방안’)에 참석한 국토부 관계자에게 “적극적으로 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의 우수한 통계를 홍보하세요. 경실련 본부장이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는 말입니다”라며 질책했습니다.
이후 부동산원은 통계 조작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표본가격 현실화 등과 같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변동률이 크게 오르는 일을 막기 위해 기존 가격 낮추거나 기준시점을 임의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5년 단위인 통계표본 전면 교체 작업을 3년 만인 2021년 7월에 앞당겨 단행하면서 기존 표본은 낮춘 값으로, 추가되는 신표본은 실거래가로 각각 반영했습니다. 또 기존 통계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신구 표본 간 격차도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8차례에 걸쳐 조작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또 경실련이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 통계의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달라는 거듭된 요청에 대해 “주택가격동향조사 표본 현황은 관련법에 따라 비공개 대상으로 자료제공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또는 “부동산원의 주택가격 동향조사 이외에도 공동주택 실거래가격 지수, KB 등 타 기관이 생산 공표하는 주택가격 동향 및 매매수급지수 등 주택가격과 관련한 다양한 지표를 활용 중”이라는 동문서답으로 직답을 피했습니다.
문 정부에서 이처럼 부동산 가격 통계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을 보인 이유는 27회에 걸쳐 대책을 쏟아내면서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을 중요 국정과제로 내세운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정책 실패가 정권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실제로 문 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그 첫 번째 원인으로 무리한 부동산 정책이 지목됐습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한 집값 통계 왜곡이 결국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에 불과했음이 들통난 셈입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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