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임대차 3법' 폐지·축소 논란.."큰 틀 유지하며 미세 보완해야"
서울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인 정아무개씨는 오는 11월 임대차 계약 2년 만료를 앞두고 벌써 걱정이 태산이다. 정씨는 집주인이 직접 입주하지만 않는다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2년간 더 계약을 연장할 계획이었는데,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임대차3법 폐지·축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씨는 3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혹시 11월 전에 법이 바뀌면 계약갱신청구권을 못 쓰고 전셋값을 시세대로 1억원 정도 올려주거나 집을 비워줘야 하냐”며 “재계약을 앞둔 나 같은 임차인들에 대해선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번은 인정해주는 게 형평에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임대차3법을 폐지·축소하겠다고 밝히면서 임차인들의 걱정이 커지는 등 전월세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임대차3법 전면 재검토는 윤석열 당선자의 대선 공약으로, 처음에는 올해 7월말 시행 2년 차를 맞는 임대차3법의 부작용을 점검하고 제도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인수위 출범 뒤 별도로 만든 부동산태스크포스(TF)가 첫 일성으로 ‘임대차3법 폐지· 축소’ 방침을 강조하고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임대차3법 폐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되레 임차인들의 주거권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임대차3법’이 민생현안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임대차3법, 뭐가 문제?
지난 2020년 7월말부터 시행된 ‘임대차3법’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1회 보장하고 재계약 때는 전월세 인상률을 5% 상한으로 묶는 게 핵심이다. 이에 더해 전월세 계약을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한 전월세 신고제는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됐다.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임차인들은 계약 기간 만료 때 전셋값 인상 부담을 줄이면서 기존 전셋집에 2년 더 거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시의 임대차 신고정보 집계를 보면, 지난해 6~10월 전체 갱신계약 3만8463건 중 58%(2만2316건)가 갱신요구권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갱신계약의 77.3%(2만9751건)는 종전 임대료 대비 인상률 5% 이하로 계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고도 5% 이하로 인상한 계약도 상당수였다는 뜻으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재계약 때 임차인의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분석이다.
신규 전셋값이 상승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집주인들이 신규 전세 계약 때는 4년간 사실상 동결되는 전세금을 미리 올려받는 관행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2019년 연간 0.69% 하락했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임대차3법이 시행된 2020년 한해 5.58%, 지난해는 6.45% 급등했다. 다만 여기에는 저금리 환경과 전세자금 대출 확대 등에 따라 유동성이 크게 불어난 영향도 반영돼 있다. 지난해말 시중 금리 상승이 본격화된 이후 전셋값 상승세가 주춤해지고 올해 1월 말에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2년8개월만에 하락세로 반전한 까닭이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이번 주(28일 기준)에도 0.02% 떨어져 10주 연속 내림세를 보이는 중이다.
임대인·임차인 상생 해법은?
인수위는 더불어민주당 반대로 법개정이 어려울 경우 보완 대책을 내놓는다는 입장이다. 심교언 인수위 부동산TF 팀장은 지난 29일 브리핑에서 “임대차3법 개정이 장기적으로 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사이 부작용을 막기 위해 2가지를 준비했다”며 “하나는 민간임대 등록 활성화이며 다른 하나는 민간 임대주택 활성화”라고 말했다.
민간 등록 임대주택은 집주인에게 세금 혜택 등을 제공하는 대신 세입자가 임대료 인상 걱정 없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 정부가 집권 초기인 2018년에 집주인 세제 혜택을 늘리는 장려책으로 내놨으나 다주택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제공하고 집값 상승 원인이 된다는 비판에 부닥쳐 2020년 7월 대폭 축소된 바 있다. 인수위는 등록 임대주택을 비아파트와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아파트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민간 임대주택 활성화는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됐던 기업형 임대주택 ‘뉴스테이’의 부활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3법 시행 3년 차를 맞아 전월세 시장 불안 우려가 있는 만큼 여야가 협치를 통해 보완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 전문위원은 “‘2+2년’ 방식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어차피 한계가 있는 터라, 집주인과 임차인이 수긍할만한 상생안을 찾아야 한다”며 “‘상생 임대인제도’ 전면 확대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상생 임대인제도는 5% 이내 인상률로 재계약한 집주인에 대해 양도소득세 비과세를 위한 요건인 ‘거주 기간 1년’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도입된 이 제도는 올해 말까지만 운영된다.
최근 전세시장이 모처럼 안정세를 되찾아가고 있다는 상황에서 큰 틀의 제도 변경은 되레 시장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남영우 나사렛대학교 국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3법 도입 2년 만에 전월세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임대료 인상률 등 큰 뼈대를 건드리는 것은 시장에 혼선을 불러올 수 있다”며 “(같은 맥락에서)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신규 전세 임대료 제한 구상도 위험한 발상”이라고 짚었다. 시장 상황을 좀더 지켜보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을 줄이는 미세한 보완책 정도만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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