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4% 오른 서울 전셋값, 작년에만 16% 폭등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보유세 중과, 임대차 3법 통과, 재건축 실거주 요건 강화 등 고강도 부동산 규제를 발표한 지 1년. 규제로 인해 전세 매물이 줄고 전국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세입자들의 고통만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잡겠다는 규제가 무주택 서민의 주거 불안만 가중시킨 역설적인 결과를 낳은 것이다.
9일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작년 5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0.47% 내렸다. 서울이 3년 동안 4.4% 올랐지만, 같은 기간 아파트값 상승률(24.93%)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치였다.
안정적이던 전세 시장은 최근 1년 사이(2020년 6월~2021년 5월) 충격적인 반전을 맞았다. 서울은 16.55% 치솟았고, 3년간 ‘마이너스’였던 전국 전셋값(11.15%)도 두 자릿수 상승률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이런 전세난의 원인으로 작년 6~7월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부동산 정책을 꼽는다. 작년 6·17 대책과 7·10 대책 그리고 7월 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까지 ‘규제 3연타(連打)’에 투기꾼이 아닌 무주택 세입자들이 쓰러졌다.
정부는 6·17 대책에서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규정을 도입했고, 수도권 대부분을 규제 지역으로 묶으며 대출을 옥죄었다. 7·10 대책에선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양도세·취득세를 대폭 올렸다. 여당은 “전셋값 급등이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했다.
실거주 규정 때문에 낡은 아파트에서 저렴한 전세살이를 하던 세입자들이 밖으로 내몰렸다. 다주택자 매물이 나오기는커녕 전셋집 품귀로 가격이 치솟았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매매 시장에만 치우친 정부의 ‘규제 폭탄’이 전세 시장에서 터진 것”이라며 “임대 사업자 등 전세 제도의 순기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에… 세입자 내쫓기고, 집주인은 빈집 방치
서울 성동구 한 낡은 아파트에 전세 사는 직장인 A(41)씨는 최근 “올 연말 계약 기간이 끝나면 바로 집을 비워 달라”는 집주인 통보를 받았다. 암 수술 후 통원 치료 중인 노모 때문에 이사가 부담스러운 A씨는 “보증금을 2억원 이상 올려줄 테니 2년만 더 연장해 달라”고 했지만, 집주인은 “나중에 재건축 입주권 받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며 거절했다.
강남구의 한 재건축 예정 아파트를 소유한 사업가 B(58)씨는 올해 3월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내고 그냥 빈집으로 두고 있다. 그는 “자택엔 전입신고만 하고 회사 근처 아파트에 월세로 계속 살고 있다”며 “이전 세입자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피해를 볼 수는 없다”고 했다.
◇황당한 재건축 實거주 규제
최근 서울의 주요 재건축 단지에는 주말뿐 아니라 평일도 거의 매일 이삿짐 트럭이 들락거린다. 정부가 지난해 6·17 대책에서 재건축 아파트 소유자의 2년 실거주 의무화를 예고하자 집주인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더 살고 싶어도 밀려나는 세입자가 속출하고 있다. 주택임대차법은 세입자에게 최대 4년(2년+2년)의 거주 기간을 보장하지만, 집주인이 입주하는 경우는 계약 갱신이 불가능하다. 대책 발표 직후 “세입자 피해만 키울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집주인은 불편을 감수하고 낡은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고, 세입자들은 무섭게 오른 전셋값 때문에 새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른다. 강남구 대치동 전셋집을 집주인에게 비워줘야 하는 C(46)씨는 “아이 교육 때문에 멀리 이사 갈 수가 없는데, 2년 전보다 전세 시세가 3억~4억원 정도 올라 난감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건축 실거주를 의무화한 것은 시세 상승을 노린 투자 수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새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실수요자다. “진단과 처방 모두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입자 피해만 키운 ‘투기와의 전쟁’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다주택자, 갭 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쏟아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집값을 잡는 데는 실패했고, 세입자 피해만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게 양도소득세 감면 제도다. 정부는 2018년 ‘9·13 대책’에서 1주택자가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기 위한 요건에 ‘2년 거주’를 추가했고, 2019년 ’12·16 대책'에서는 실제 거주 기간에 비례해 세금 공제 혜택을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거주 기간을 채우려는 집주인들의 입주가 몰렸고, 지난해 6·17 대책과 임대차 3법까지 더해지면서 ‘전세 대란’이 벌어졌다.
작년 7·10 대책에서 다주택자의 보유세와 양도세를 동시에 높인 것도 전세 시장 불안을 부추겼다. 집을 팔기도, 보유하기도 어려워진 다주택자들이 증여를 선택하면서 전세 매물이 줄어든 것이다. 2015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전국 아파트 증여는 월평균 4347건이었지만,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까진 월평균 8831건으로 급증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신규 주택 공급이 적은 상황에서 다주택자나 갭 투자자를 규제하면 세입자가 피해를 본다는 건 경제학 교과서에 다 나오는 이야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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