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많은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안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유준호 2021. 3. 3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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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청와대·국회 전셋값 내로남불 관련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이어 임대차 3법을 주도했던 여당 의원들까지 '전셋값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일반 주택 수요자들이 박탈감이 가중되고 있다. 자금조달계획서와 전월세신고제 등 주택 매매와 임대차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거래 행위는 이 잡듯 뒤지면서 정작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정보 공개에는 인색한 탓이다.

◆ 2억짜리 집에 누가 4억 주고 전세 사나
고위공직자 재산 신고 현황
실제 매일경제가 국회 공보를 통해 분석한 결과 시장 현실과 동떨어진 엉터리 정보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가격을 웃도는 전셋값 신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주택가액은 공시가격으로, 전세 보증금은 실거래가로 신고하면서 발생하는 일이다.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 관련 안내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실무자는 "원래 그런거 아니었냐"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본인 명의의 서울 도봉구 방학동 신동아아파트 전용면적 84㎡의 전세 보증금이 4억원이라고 신고했다. 함께 신고된 이 주택의 가격은 2억5400만원으로 전세 보증금 대비 1억원 이상 낮다. 단지 내 같은 전용면적의 매물은 지난 1월 6억원(5층)에 거래됐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친 명의의 서울 양천구 목동 한강빌라 전용 69㎡의 주택가격을 1억5800만원으로 신고했는데, 전세가격은 2억8000만원으로 2배에 육박한다. 같은 당 기동민 의원 역시 서울 성북구 돈암동일하이빌 전용 84㎡의 전세 보증금(5억원)이 주택가격(4억9500만원)을 넘어섰고,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도 주택 가격(3억6100만원)을 웃도는 전셋값(3억9000만원)을 신고했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은 2월 기준 56.17%다. 평균적으로 집값이 10억원이라면 전셋값은 5억 6170으로 절반 가량이라는 얘기다. 국회 공보에 신고된 내용만 봤을 때는 2억5400만원짜리 집(이은주 의원 기준)에 세입자가 4억원을 주고서 전세로 거주하는 시장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정보가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 60억짜리 집이 30억으로 축소 신고도 잇따라
서울 서초구 반포 아파트 전경. 박병석 국회의장은 지난 25일 국회 공보를 통해 보유 중인 전용 196㎡의 주택가액을 39억 6100만원으로 신고했다. [사진 = 매경DB]
특히 청와대와 정부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은 실거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재산 신고를 하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서울 서초구 반포아파트 전용 196㎡의 주택가액을 39억6100만원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호가는 60억원을 넘는다. 전셋값 내로남불로 논란이 된 김상조 전 청와대정책실장도 청담동 한신오페라하우스2차 전용 120㎡을 11억 5800만원으로 신고했지만 2019년 12월 같은 전용면적 1층 매물은 16억 5000만원에 거래됐다. 현재 바로 옆 단지 비슷한 전용면적 매물은 호가가 20억원을 넘는다. 실거래가 대비 10억원 가량이 축소 신고된 셈이다.

결국 공시가격으로 신고하게 되면 일반 국민들에게는 '착시 효과'가 일어나게 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산 신고된 액수의 딱 두배 정도를 하면 고위공직자들의 정확한 재산규모를 알 수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라며 "아파트만 해도 실거래 가격을 다 확인할 수 있는데도, 고위공직자들의 본인들 규제에는 인색한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축소 신고 의혹은 청문회 때마다 도마에 오른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변 장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시절 재산 공개를 통해 현재 사는 아파트 가격을 5억 9000만원으로 신고했다. 청문회 당시 야당은 재산 축소 신고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실제 올해 1월 전용면적 105.74㎡인 변 장관의 옆집은 14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변 장관은 올해 재산 공개에서 6억 5300만원으로 지난해 공시가격 인상을 반영해 주택 가격을 신고했지만 여전히 실거래 가격과 격차가 크다.

◆ 매매 일시 표시하고 아파트는 실거래가 반영해야

현재 공직자윤리법상 고위 공직자들은 주택 공시가격과 주택 매입 당시 취득가격을 비교해 높은 가격을 신고한다. 과거 취득가격이 공시가격보다 낮으면 결국 공시가격으로 신고해 시세 반영을 피할 수 있다. 이마저도 적용 대상은 2018년 7월 이후 고위 공직자가 된 사람이다. 그 이전부터 고위 공직자였던 기존 등록자들은 공시가격으로만 신고한다. 사실상 재산 신고에 실거래가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구조라는 얘기다. 지난 25일 공개된 정부와 청와대, 국회 등 고위 공직자 재산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올해 가파르게 오른 공시가격이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는 그동안 시세가 안잡히는 나홀로 아파트나 단독주택도 있기 때문에 실거래가로 재산 공개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실거래 가격은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보다. 정보 공개 대상 주택을 구분하면 되는 일이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을 손 놓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재산을 줄이거나 속일 수도 있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시스템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고 있다. 국회 공보와 정부 관보에는 주택 취득일조차 나오지 않는다. 2018년 취득한 주택에 대해서는 공시가격과 취득 가격 중 높은 금액이 신고돼야 하지만 외부에서는 정확하게 신고가 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고위 공직자가 허위 혹은 오기로 신고해도 잡아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실제 2018년 서울 용산구 신동아아파트 전용 210㎡를 취득한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21억100만원에 신고했다가 올해 24억4000만원으로 주택 취득 가격을 반영해 신고했다.

부동산 매매 일시를 함께 명시하면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시세 차익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 교수는 "자금조달계획서, 전월세신고제 등을 하며 일반인들의 부동산 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정부가 모두 들여다보려고 하면서 본인들 정보 공개엔 인색한 것이 일반인들의 박탈감을 더 키우는 요인이 된다"며 "정부와 청와대, 국회 등 고위 공직자의 내로남불 행위가 크게 불거진 상황에서 재산 공개 시스템이 더 촘촘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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