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20] 정부가 손대자 집값도, 전셋값도 모두 뛰었다
올 한해 부동산과 관련해 참 많은 신조어가 신문을 장식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서 집을 산다는 의미), 패닉 바잉(집값의 상승세에 공황 상태에서 집을 산다는 의미), 전세난민(전세계약 만료를 앞둔 상황에서 새 전셋집을 못 구한 처지), 벼락거지(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기에 상승 혜택을 보지 못한 처지를 자조적으로 꼬집는 말), 부동산 블루(부동산 문제로 인해 느끼는 우울함), 이생집망(이번 생에는 집 사는 건 망했다는 의미)….
각자 지칭하는 대상과 의미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집 문제로 인한 두려움, 절망감, 박탈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신조어가 많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투기 수요는 방지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투기를 잡고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있었던 곳은 (취임 전 수준으로)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대책이 시효를 다했다고 판단되면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 임기 내 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겠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현실은 대통령의 발언과 전혀 딴판이었다. 집값은 원상회복은커녕 ‘회복 불능’ 수준으로 치솟았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만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가 1월보다 10.86% 상승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보다는 무려 36.57%가 뛰었다. 정부가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집값 상승의 불길은 더 활활 타오른 셈이다.
올 한해 부동산 상황을 복기해보면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규제지역 내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출 한 푼 나오지 않게 한 ‘초강력’ 12·16 대책(지난해)의 여파와 코로나19 확산이 겹쳐 주택 시장은 상반기에 보합 국면을 유지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6월 이후부터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틈을 타 수도권 등 부동산 투기가 늘어났다고 보고 6·17 대책을 통해 접경지역을 제외한 수도권 전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부동산 시장 과열은 잦아들지 않았다. 사실상 수도권 전 지역이 규제지역이 되면서 투자 수요는 서울 강남권 등 ‘똘똘한 한 채’나 지방 비규제지역으로 옮겨 갔다. 계속되는 저금리와 넘치는 유동성의 틈바구니에서 부동산을 통한 부의 증식 욕구와 내 집 마련에 대한 절박함이 혼재돼 부동산 시장 과열은 이어졌다. 정부 규제는 늘 뒷북이었다. 집값이 급등하면 규제지역으로 지정하고, 그러면 또다시 인근 지역 집값이 오르고, 돌고 돌아 다시 서울 집값이 오르는 식의 ‘두더지 잡기 게임’ 같은 상황이 1년 내내 펼쳐졌다. 지난 7월 집권 여당 원내대표가 ‘행정수도 완성’을 언급한 이후부터 치솟기 시작한 세종시 아파트 가격은 불과 넉 달 만에 22.09%(KB국민은행 기준) 치솟았다.
급기야 정부 대책으로 실수요자들이 갑작스럽게 규제 대상이 되며 계약금을 날리는 등의 피해가 속출하자 직접 항의하는 시위도 벌였다. 지난 7월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집회 등 한여름 약 한 달여간 서민들의 부동산 피해 집회가 잇따랐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서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6·17 대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자 정부는 한 달도 안 돼 다주택자와 법인에 대한 ‘극약처방’을 담은 7·10 대책을 발표했다. 불과 지난해 3.2%로 인상한 종합부동산세 최고 세율을 다주택자와 법인에 한해 6.0%로 2배 가까이 올렸다. 국책연구기관이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증세 필요성을 제안한 것에 대해 코로나19 상황 등을 언급하며 “증세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보유세 인상과 동시에 거래세 성격인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기로 한 것도 논란이 됐다. 문 대통령은 “장기적으로는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간다”고 밝혔으나, 정부는 “불로소득 환수라는 조세 정의 차원에서 양도세 인하는 어렵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집을 사지도, 팔지도, 보유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는 푸념이 쏟아졌다.
결국 막대한 보유세와 양도세를 피하기 위한 증여만 늘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전국 주택의 증여 건수는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불로소득 환수라는 ‘도그마’를 고집하다 부의 대물림을 더 심화한 셈이다. 3년 전 김현미 전 장관이 방송에 나와 ‘세제 혜택’을 약속하며 최대 10년의 등록임대사업자를 권유한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대폭 축소한 것은 정책 신뢰를 해친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7월 말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의 의석을 앞세워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의 내용을 담은 ‘임대차 3법’을 강행 처리했다. 비교적 중립적인 국회 상임위 검토보고서에서도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지만 이런 우려는 법안 심의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
그리고 악몽 같은 후폭풍이 새로 전세를 구해야 할 실수요자를 덮쳤다. 전세 물건이 줄면서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가격이 됐고,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전셋집 한 곳을 보기 위해 9개 팀이 줄을 서고 제비뽑기로 세입자를 정하는 진풍경(국민일보 10월 14일자 1면 기사)이 펼쳐지기도 했다.
전월세 상한제가 적용되자 원래 임대료를 5% 이상 올릴 생각이 없던 집주인조차도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자식이 들어가 살 거니 나가 달라’고 얘기하고, 세입자는 ‘어디, 실제 들어와 사는지 보자’며 맞서는 촌극도 벌어졌다. 졸지에 집 때문에 전 국민이 내전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이 주택 매수자의 실거주 권리보다 앞선다는 유권해석으로 혼란을 심화시켰다.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산 사람이 세입자가 계약갱신을 요구하기 전 등기이전을 못 마쳤다는 이유로 급히 월셋집을 알아봐야 하는 황당한 사례도 나왔다.
전국적인 혼란 속에 급기야 경제사령탑인 홍 부총리마저도 ‘전세난민’ 처지가 될 뻔했다(국민일보 10월 8일자 1면 기사). 다주택자 논란 해소 차원에서 공개 선언했던 경기도 의왕 아파트 매각이 세입자 퇴거 거부로 무산 위기에 처하자 홍 부총리는 이사비 명목의 위로금을 건네야 했다. 경제수장이 임대차법 유탄을 온몸으로 체험한 셈이었다.
정부가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2년’ 의무를 부과한 것과 매매 수요를 돌리기 위해 사전 청약을 확대한 것도 각각 전세 공급 위축과 전세 수요 상승을 불러 전세 시장을 더욱 꼬이게 했다. 결국 이런 요인들로 올 한해는 매매 가격과 전셋값이 모두 뛴 해로 기록됐다.
실수요자의 고통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정부·여당 인사들의 잇따른 설화(舌禍)는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임대차법으로 인한 전세 소멸 우려에 “전세의 월세 전환이 나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서울 강동구 신축 아파트에 사는 진선미 의원은 임대주택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임대주택은 아파트와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다.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미 전 장관 역시 국회 출석 때마다 “문재인정부 들어 집값은 11% 상승했다” “30대 영끌, 안타깝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지만…” 등의 발언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모두 정책 실패 책임을 회피하거나 국민을 훈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 역시 시장의 혼란과 무관한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 검토나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뜬금포 정책’만 남발하면서 실수요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서울에 사는 한 30대 직장인은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뜻은 알겠는데, 실수요자를 지원하는지는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신용대출을 받은 뒤 주택을 사는 것까지 규제하기 시작했다. 정부만 믿고 기다렸다가는 평생 내 집 마련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20·30대의 패닉 바잉이 급증하면서 하반기 들어 서울 중저가 주택 집값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런 낙담 앞에서 “집은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정부의 구호는 기만에 가까웠다.
세종=이종선 기자, 이택현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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