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멈춤법'에 또 갈라진 임대인-임차인..갈등만 커진다

문제원 2020. 12. 1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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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여당→정부' 낙하산식 법안
임차인 보호책 필요하지만 방식 문제
'임대인=甲' 이분법 논리, 부작용 양산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정부와 여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힘들어진 임차인을 위해 상가 임대료를 강제로 인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차인을 보호하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임대인 등 특정 한측의 희생을 요구하는 쪽으로 이뤄져선 안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을 유발한 새 임대차법 때처럼 제대로 된 의견수렴 없이 '청와대→여당→정부'의 낙하산식으로 급하게 추진하는 정책이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 한마디에 또 규제법안

16일 국회와 정부 안팎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공정 임대료'를 언급한 이후 당정은 코로나19로 인한 영업금지ㆍ제한 업종 소상공인에게 임대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대료 멈춤법'으로 불리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상가가 '집합금지' 명령을 받은 경우 임대인이 임대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집합제한'이 되면 임대료을 절반 경감하는 내용이다. 같은 당 이성만 의원도 지난 9월 '집합금지' 조치가 적용되면 임대료를 절반 이상 감면하는 법안을 냈다.

업계에선 코로나19로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큰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코로나 전쟁에 왜 자영업자만 총알받이가 되나'라는 글을 올린 한 청원인은 "집합금지가 되면 대출원리금과 임대료, 사용하지 못한 기간의 공과금, 각종 세금납부도 정지돼야 한다"며 "집도 줄이고 가진거 팔아가며 10개월을 버텨왔다. 죽기 일보직전"이라고 호소했다. 해당 글은 나흘만에 15만명이 넘는 사람이 동의했다.

속도전 입법에 임대차2법 부작용 재연 우려

다만 당정이 주도하는 '임대료 멈춤법'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 정책이 임대인의 희생만 강조한다는 점 때문이다. 거대 여당 체제에서 문 대통령이 필요성을 언급하면 속전속결로 당정의 처리가 진행되다 보니 전문가나 다른 측면의 이해관계자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주 의원 법안의 경우 임대료를 감면해주는 임대인에 한해 건물 담보대출의 상환 연장 등의 혜택을 주는 내용도 담았지만, 추가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임대인의 재산권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 의원은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임대인의 부담 가중에 대해선 "정부당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임대인에 대한 적절한 지원책은 검토하지 않고 법안을 발의한 셈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일반적으로 임대인이 갑(甲)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임대인의 세금을 깎아주거나 영업실적이 좋아지면 임대료를 높일 수 있는 조치 등을 함께 마련해 상호호혜가 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고 임차인의 입장만 너무 강조하면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울산의 한 소규모 상가 임대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임대로 줬는데 현재 월세가 670만원 밀렸다"며 "경기가 안좋은 것은 알지만 그 기간 동안 대출이자가 꼬박꼬박 나가 거지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 추이를 살펴보면 전국의 330㎡ 이하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5.9%에서 올해 3분기 6.5%로 오르는 등 영세 임대인의 부담도 커지는 중이다.

정부 계속된 '약자-강자' 이분법적 논리가 갈등과 부작용을 키운다는 지적도 많다. 전ㆍ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등록임대주택사업자 폐지 등의 정책 이후 집주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크게 확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정책 이후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급등하며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부담이 커진 것을 고려하면, 이번 '임대료 멈춤법' 역시 차후 임대인이 임대료를 대폭 상승하는 등의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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