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전셋값 정하고 소급적용".. 反시장 규제 쏟아내는 여당
정부가 '7·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다(多)주택자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자, 시장에서는 세금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돼 전·월세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월세 상승은 서민 주거 안정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정부나 여당 입장에서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16일 당 회의에서 "(전·월세 가격 폭등) 우려를 차단하려면 '임대차 3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쓸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여당이 발의한 임대차 법안 상당수가 사유(私有)재산권 침해, 소급 적용 등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 안정화라는 취지는 좋지만 시장 원리를 무시한 규제는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대차 3법' 밀어붙이는 與
21대 국회 출범 후 현재까지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임대차 관련 법안은 모두 11건이다. 전·월세 신고제 및 상한제, 계약 갱신 청구권제 등이다. 전·월세 계약 신고를 의무화하고, 재계약 시 임대료 인상률을 제한하며, 임차인이 원하면 일정 횟수 이상 재계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요지다. 계약 갱신 청구권과 관련해서는 세입자에게 1회의 갱신 청구권을 보장해 최소 4년(2+2) 동안 세입자를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이원욱 의원은 여기에 더해 계약을 2회(2+2+2) 갱신할 수 있는 법안을 냈고, 김상희·박주민 의원은 세입자가 임대료를 여러 달 연체하거나 집을 심각하게 파손하지 않는 한 무제한으로 계약을 갱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전·월세 상한제와 관련해서는 한 번에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대부분이다. 이원욱 의원은 새로운 세입자와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에도 전·월세 상한제를 적용받게 하는 법안을 냈고, 윤호중 의원은 지방자치단체가 '표준 임대료'를 정하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임대차 계약을 맺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김태년 대표는 "종전 계약에 대해서도 바뀐 법을 적용해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막겠다"고 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계약에 새로운 제한을 가하는 소급 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급대책 병행돼야 효과 있을 것"
시장에서는 여당이 추진 중인 임대차법 개정이 과연 전·월세 가격을 잡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우선, 계약 갱신 청구권을 도입하더라도 집주인은 전·월세를 미리 한꺼번에 올려 4~6년 의무 임대 기간을 버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차인이 바뀌어 새 임차인과 계약을 맺을 때에도 인상률을 제한한다면 현금 여력이 있는 집주인은 일정 기간 집을 비워 두거나 실거주한 후 다시 임대하면서 임대료를 대폭 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임대사업을 하는 법인이 별로 없고, 대부분 개인이 세를 놓고, 세를 사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제도적인 규제가 먹혀들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전·월세 인상률 5% 제한' 규정은 굳이 임대료를 안 올려도 되는 상황의 집주인들까지 5% 인상을 고집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준 임대료 제도 역시 당장 시행하기엔 한계가 있다. 같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층(層), 동(棟), 실내장식 수준 등에 따라 임대료가 천차만별이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인 임대료를 산정하려면 전·월세 관련 거래 정보가 충분히 축적돼 있어야 하지만 아직 전·월세 신고제는 도입되지도 않았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전세 공급 감소다. 집주인들은 규제가 완화될 때까지 집을 비워 두거나 친척·지인 등 특수 관계인만 임차인으로 들이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서는 "앞으로 서울에서 전셋집 구하려면 집주인 면접을 봐야 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결국, 전·월세 인상에 대한 규제와 함께 전셋집 공급을 늘리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지금 전세 시장은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급감할 우려가 큰 상황이다.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내년부터 급감하는 데다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감면을 위한 의무거주 요건이 강화되는 것도 문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임차인 보호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전세 수요가 많은 지역에 주택 공급을 늘리고, 다주택자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전세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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