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급 안 부족하다"더니 또 그린벨트 '만지작'

송진식·김상범 기자 2020. 7. 1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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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특단 대책" 주문에
범정부 TF서 공급 확대 논의
뾰족수 없자 그린벨트 카드
전문가·업계 "해제 신중해야"

[경향신문]

“주택을 더 공급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와 여당이 도심 내 주택 추가 공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실무작업에 착수했다. 당정은 역세권 고밀도 개발,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등 기존 안에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까지 염두에 두고 공급 확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업계와 전문가들도 “그린벨트 해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과 진선미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이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대책 당정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 “그린벨트 해제도 검토”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15일 부동산 대책 당정협의를 열고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공급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단장을 맡는 이 TF에는 기재부와 서울·경기·인천 등 광역자치단체까지 참여한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이 맡는 TF 산하 실무기획단도 이날 출범해 서울시 등과 첫 회의를 열었다.

논란이 분분했던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결국 TF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조응천 의원은 당정협의를 마친 뒤 ‘서울 그린벨트 해제 방안을 논의했나’라는 질문에 “그런 것들까지 포함해 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하게 된다”고 밝혔다. 박선호 차관도 실무기획단 회의 모두발언에서 “기존에 검토된 방안과 함께 도시 주변 그린벨트의 활용 가능성 등 지금까지 검토되지 않았던 다양한 이슈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충분하다”더니 공급 확대 ‘혈안’

문 정부 출범 후 22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는 동안 정부는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실제 통계도 그렇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2017~2019년 수도권에 공급된 주택은 연평균 29만2000가구로, 직전 3년(2013~2016년)의 연평균 20만6000가구보다 41.7% 공급이 늘었다. 아파트만 놓고 봐도 최근 3년 연평균 20만3000가구로, 직전 3년의 연평균(11만1000가구)보다 82.8%나 공급이 많았다.

실수요가 많은 서울의 경우 최근 3년간 연평균 7만4000가구가 공급돼 직전 3년(7만3000가구)과 거의 차이가 없다. 아파트는 최근 3년이 연평균 4만가구로 직전 3년(3만2000가구)보다 물량이 더 많다. 정권 초기 제시한 수도권 77만가구, 임대주택 100만가구 공급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 2일 ‘특단의 대책’을 언급하며 주택 공급 확대를 지시한 뒤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다. 지난주부터 여당 일각에서는 “서울 그린벨트를 풀자”는 주장까지 흘러나왔고, 결국 검토 방안에 추가됐다. 지난 14일만 해도 “서울 공급은 충분하다”(김현미 장관)며 버티던 국토부도 하루 만에 백기투항하는 모습이다. 박 차관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방송에서는 “그린벨트 해제 논의를 해본 적 없다”고 했다가 몇 시간 뒤 열린 실무회의에서는 “그린벨트 해제도 논의하자”고 입장을 바꿨다.

■부동산 업계도 그린벨트 신중론

부동산 업계에선 정부가 뾰족한 공급 확대책을 찾지 못하자 그린벨트 카드를 꺼낸 것으로 해석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에 공급을 확대하려면 재건축 규제를 풀지 않고선 답이 없는데 이를 건드리지 못하니 그린벨트 해제를 꺼내든 것”이라며 “재건축 완화냐 그린벨트냐 어느 쪽을 택하든 부작용이 있는 문제라 정부로서도 난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한 유보지 성격을 갖는 데다 서울 등 수도권의 ‘허파’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해제하더라도 제한적으로 개발 방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 역시 “이미 3기 신도시로 인해 327㎢에 달하는 그린벨트가 훼손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추가 해제에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 내 그린벨트의 해제 권한을 가진 서울시도 불가 입장을 고수 중이다. 서울시는 이날 실무회의 뒤 공식입장을 내고 “그린벨트를 흔들림 없이 지키겠다”고 밝혔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규제책을 내놓은 이상 우선 투기수요를 잠재우고 난 다음에 정확한 실수요를 계산해 공급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옳다”며 “현시점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하자는 것은 너무 성급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송진식·김상범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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