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 돈줄 조이는 정부..전세 공급과 규제 사이 '갭'은 없나 [안명숙의 차이나는 부동산 클래스]

안명숙 |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 2020. 6. 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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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7일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대출규제와 세금강화가 규제의 핵심이다. 전세보증금을 안고 매입하는 이른바 ‘갭투자’를 막기 위해 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3억원이 넘는 집을 신규 구입하는 경우 전세대출 보증이 제한되고, 전세대출을 받은 후 투기과열지구의 3억원 초과 주택을 사면 대출이 즉시 회수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보증금 승계 구입 비율이 서울 52.4%, 강남4구는 72.7%로 갭투자가 일반적인 거래보다 많다. 강남4구는 거래되는 10집 중 2~3집만 입주하고 나머지는 세입자를 승계하는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지표만 보면 강남4구를 포함, 서울에 집을 사는 가구들의 대부분이 거주 목적이 아니라는 뜻일까.

그러나 이 같은 단편적인 해석 이전에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갭투자 비중이 늘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기본적으로 임대수익가치가 없는 전세를 안고라도 매입하는 것은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 또는 우려 때문이다.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지 않으면 아무리 갭이 적다고 해도 집을 사지 않는다. 지방 소도시의 경우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80%를 상회하는 곳이 적지 않은데, 그 경우 몇백만원 또는 몇천만원만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지만 여전히 전세를 선호하는 가구가 많다. 집은 거래 과정에서 세금과 중개수수료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고 보유하는 동안에도 세금을 내야 하므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지 않다면 굳이 비용을 물어가면서 집을 소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출규제의 반작용이다. 15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는 대출이 불가하므로 자금이 부족할 경우 우선 전세 보증금을 안고 매입하면 은행 대출보다 더 많은 레버리지가 가능하다. 결국 강력한 대출규제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수요자들은 임차인과의 사적 금융인 전세를 통해 부족한 자금을 조달받게 되는 셈이다.

셋째는 세입자가 있는 주택을 살 경우인데, 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차인의 잔여 계약기간이 남아있으면 당장 입주가 불가하다. 따라서 임차인 승계 매입 후 계약기간이 종료되거나 임차인과의 협의를 통한 입주시기 조정이 불가피하므로 갭투자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전세 보증금 승계 매입은 투자자에게는 레버리지 수단이기도 하고 입주를 원하는 실수요자에게도 때로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도 했다. 주택금융이 미천했던 과거에는 전세가 사적 주택금융의 역할을 담당했으나 지금은 집값을 올리는 레버리지로 인식돼 정부의 규제 대상이 되어버렸다.

매매 시장은 투자시장이므로 거품이 생기기도 하고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도 가격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전세는 실수요 시장이다. 임차인들이 몰리는 지역에 전셋집이 부족하거나 세금 증가 및 금리 인상 등 제도 및 정책의 변화에 따른 임대인의 환경 변화는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세 물량이 많아 임대인의 일방통행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라면 몰라도 입지 여건이 우수한 곳은 전세 물량이 부족해 지금까지 결국 피해자는 임차인이었다.

매매가 상승은 전세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전세가가 오르면 매매가에 영향을 준다. 자금줄을 조이는 것이 수요를 억제하여 가격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주택시장이 비교적 탄력적이고 합리적 경쟁이 가능한 시장일 때의 논리다. 전세 공급이 충분치 않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정부 규제의 칼날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지 좀 더 면밀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안명숙 |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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