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하자전쟁] ⑤·끝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반복되는 문제.. "중대 하자가 뭔지 기준도 없어"
건설사와 입주자간의 하자보수 갈등은 케케묵은 갈등이다. 논란이 된 것도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이 갈등은 왜 반복되는 걸까. 입주자들이 하자보수로 피해를 겪어야 하지만 그 피해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곳이 없어서 그렇다. 건설사도, 준공승인 거부 카드를 쥐고 있는 시·군·구청도, 국토교통부도 하자보수 문제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건설사·시·구청·국토교통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2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는 잔금 처리가 정상적으로 된 경우, 법적 하자보수 기간만 무사히 지나면 된다. 하자보수 이행률이라는 지표를 관리하지만, 지표와 입주자들이 느끼는 하자보수 완료 사이의 간극은 크다. 실상 하자보수 발생 건설사라는 낙인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공사를 수주하는 부서와 하자를 관리하는 부서가 다른 탓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수주를 따는 영업팀과 현장건설을 관리감독하는 현장팀, 그리고 원가관리를 담당하는 팀이 모두 다르다"면서 "‘하이엔드급 아파트’라고 홍보하고 수주를 따는 영업팀과 현장에서 숙련공부터 비수련공을 아울러 공사기간에 맞춰 관리해야 하는 현장팀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했다.
사전점검일에 통상 발생하는 하자보수에 대한 지적에 1차적인 관리·감독권이 있는 시·군·구청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중대한 하자가 있을 경우 준공승인을 미룰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이를 행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입주자들이 준공승인 거부 움직임을 보였던 과천푸르지오써밋을 담당했던 시청 관계자는 "준공승인 거부를 해서 건설사가 막대한 지체배상금을 내게됐을 때의 상황에 엮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시·군·구청 관계자가 입주하자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 통상 담당자가 1~2명 뿐이다. 준공승인과 관련된 일만 하는 것도 아니라, 건설사가 잘 만들어간 서류에 준공승인을 찍어주는 것 정도로도 벅차다. 한 시청 관계자는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오고, 한 가구당 30건만 하자보수를 신청해도 총 3만건이다. 중대하자인지 아닌지, 시찰을 나가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하자보수 갈등을 잘 알고 있는 국토교통부도 뒷짐을 지고 있긴 마찬가지다. 하자보수 갈등과 분쟁을 관리하는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하자분쟁위)를 만들어 놨지만, 인원은 100명이 채 안 된다. 각종 서류 작업 등을 담당하는 사무국은 34명, 하자심사 업무와 조정 업무 판정을 내리는 위원이 각각 20명 수준이다. 지난해 하자보수 분쟁 수는 4284건. 단순하게 나눠봐도 한 사람당 50건씩 하자분쟁 사례를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자보수위 관계자는 "34명의 조사관이 4284건의 조사를 나가야 하니 실제론 1인당 126건을 육박한다"면서 "조사를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든 수준"이라고 했다.
하자보수 분쟁을 다뤄본 법조계 한 관계자는 "국토부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2010년에 하자분쟁위를 만들었지만, 그 때보다 지금 하자분쟁 수가 60배 늘었다. 지금 조직은 하자 갈등이 이렇게 커질 줄 모르고 만든 조직"이라면서 "예산과 인력은 큰 변화가 없으니 실상은 위원회 하나 만들어놓고 뒷짐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하자보수 대안 마련했지만…여전히 구멍 숭숭
국토부는 오는 10월부터 ‘중대하자’는 아파트 사용검사 전 보수를 완료하도록 할 계획이다. 그런데 중대하자의 기준은 아직도 모호하다. 건설사들은 균열·누수·결로 등을 주장하지만, 입주자들의 눈높이는 다르다. 하자 보수를 받으면, 실거주자가 불편해진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모두 중대하자로 봐야한다는 뜻이다. 기존에 언급되는 중대하자를 ‘주요하자’ 정도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의는 건설사의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된다는 논리에 막혀 논의가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중대하자가 모두 완료됐는지에 대한 판단과 조사 업무는 누가 해야하느냐는 문제도 있다. 지난해 5월 국토부가 중대하자 수리 여부를 확인하게끔 하는 대책을 꾸리겠다고 발표하자 시·군·구청 관계자들은 당장 ‘중대하자 완료 여부 업무가 이리로 오면 업무가 과도해진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고 하자분쟁위에 위탁하자니 이곳도 업무초과 상황이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는 하자분쟁위의 하자분쟁 접수 건의 70%가 4개월 안에 처리되지 않아 입주자들의 애만 태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자분쟁이 접수되면 하자분쟁위는 90~120일(3~4개월) 안에 이를 처리해야 한다. 하자분쟁위 관계자는 "최근 하자 건수가 워낙 급증해 지금 인원 수로는 업무를 도저히 기간 내 마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역설적으로 하자분쟁위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입주자들의 하자보수 요구에 대해 일단 하자가 아니라고 하고,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의 하자 판정을 받아오라는 식으로 시간을 늘리는 것이 요긴하기 때문이다. 하자심사분쟁 소송에 다수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하자위 업무 처리기간이 워낙 오래 걸리니까 그냥 포기하게 하는 한 가지 전략으로 쓰는 셈"이라고 했다.
또다른 하자 분쟁 전문 변호사는 "하자분쟁위의 존재가 건설사 편의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라면서 "국토부가 실효성이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면 이 일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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