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풍랑 뚫고 ‘편안하게, 천천히’ … 1200명 타는 배, 울릉의 설경 열다[박경일기자의 여행]
멀고 험해 밥먹듯 끊기던 뱃길
2만t 육박 뉴씨다오펄號 운항
자정 출발·오전 6시30분 도착
연간 적설량 절반 채우는 2월
산에 둘러싸인 나리분지 장관
노인봉·송곳봉 해안경관 압권
‘울라 웰컴하우스’ 관광카드엔
현지인들만 아는 ‘찐 맛집’ 등
정보 가득해 일정 잡기도 쉬워
천혜절경과 어우러진 건축물
‘힐링스테이 코스모스’도 눈길
山형상 닮은 고릴라 캐릭터도
울릉도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울릉도의 겨울을 여행한다는 것
겨울, 울릉도에 가서 이런 것들을 보고 왔다. 으르렁거리며 기암의 해안도로를 삼킬 듯 넘실거리는 집채만 한 파도, 폭설로 세상의 경계가 아득해진 나리분지, 해안가에서 몸을 세우지 못할 정도로 몰아치는 거친 바람, 푸른 날이 선 칼 같은 형상으로 솟은 바위, 화선지에 진한 먹을 찍어 그린 것 같은 산…. 겨울 울릉도의 경관은 비장하고도 장엄했다.
울릉도 겨울 여행은 그동안 불가능에 가까웠다. 멀기도 하거니와 뱃길도 험해 겨울이면 배가 끊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멀쩡하던 바다가 갑자기 거칠어지면 꼼짝없이 섬 안에서 발이 묶이곤 했다. 폭풍주의보와 높은 파고로 일주일씩 갇히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래서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들은, 11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를 ‘비운항 기간’으로 정하고 아예 운항을 중단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겨울에 섬 주민마저 육지로 나왔을까. 겨울이면 도동과 저동의 식당과 가게 중 태반이 ‘육지 출타 중’이란 종이 한 장 써 붙이고 문을 닫았다. 지독한 멀미, 혹은 뜻밖의 고립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갈 수 없었으니 여행자들은 좀처럼 울릉도의 겨울을 볼 수 없었다. 해안을 덮치는 높은 겨울 파도도, 나리분지의 기록적인 폭설도 그저 전설처럼 전해 들은 이야기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배 두 척이 연이어 울릉도 항로에 취항하면서 접근성이 확 달라진 거다. 두 척의 배가 울릉도 여행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얘기다. 한 척의 배가 ‘국내에서 가장 크고 편안한 배’였다면, 다른 한 척의 배는 ‘가장 빠른 배’다.
본격적인 배 얘기 전에 질문 먼저. 울릉도 여행의 접근성을 높이려면, 과연 어떤 교통수단을 투입해야 했을까. 빠른 배? 아니면 편안한 배? 여행자들은 울릉도를 빨리 가고 싶었을까, 아니면 편안하게 가고 싶었을까. 당연히 ‘빠른 배’일 거라 생각했는데, 틀렸다. 울릉도 여행을 바꾼 건 빠른 배가 아니라 ‘느리지만 크고 편안한 배’였다.
# 느린 배가 울릉도를 바꿔 놓다
2021년 9월 16일. 대형 카페리 ‘뉴씨다오펄(新石島明珠)’호가 포항 영일만~울릉 사동항 구간 운항을 시작했다. 한 번에 1200명이 타는 1만9988t급 배다. 배는 2017년에 진수된 중고인 데다 시속 20.5노트로 느리다. 본래 군산항에서 중국 웨이하이(威海)시 스다오(石島)항까지 국제노선을 운항하던 중국해운회사 배였는데, 코로나19로 운항이 전면 중단돼 정박한 채 녹슬어 가던 것을, 울릉도에서 호박엿공장으로 돈을 번 울릉도 출신 사업가가 빌려와서 포항~울릉도 구간에 투입한 것이다.
뉴씨다오펄의 울릉도 취항이 혁신이었던 건 엄청난 ‘덩치’ 때문이었다. 2만t에 육박하는 9층짜리 거대한 배는 웬만한 파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울릉도를 오가는 배들은 파고가 높거나 바람이 불면 밥 먹듯 결항했다. 연간 결항 일수가 100일가량 됐다. 사흘에 한 번꼴로 발이 묶인 셈이었다. 한번 갇히면 언제 뱃길이 풀릴지 기약도 없었다. 그런데 뉴씨다오펄은 웬만한 풍랑에도 출항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친 바다 위를 늠름하게 항해했다. 파도로 인한 배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주는 첨단 스태빌라이저 장치 덕분에 멀미도 크게 줄었다.
뉴씨다오펄은 1박 2일이 소요되는 국제항로에 취항하던 선박이니만큼 모든 좌석이 침대, 혹은 침상이다. 2인실과 4인실, 6인실은 침대가 있고, 8인실과 10인실은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이불을 덮는다. 배의 항해속력은 시속 38㎞. 돌아올 배편의 운항시간은 낮이지만, 갈 때는 포항에서 자정 무렵 타서 울릉도에 오전 6시 30분쯤 내린다. ‘자면서’ 가는 느린 뱃길이 얼마나 안락한지는 경험해보면 안다.
큰 배는 보통 페리와 크루즈로 구분한다. 페리는 교통수단으로써의 배를 뜻하는 여객선이고, 크루즈는 다양한 부대시설을 두고 선실을 호텔로 쓰는 유람선을 말한다. 식당도, 매점도, 노래방도, 카페도 있긴 하지만 이런 구분법에 따르면 뉴씨다오펄은 명백하게 페리다. 선사도 페리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내심 ‘사실상의 크루즈’라 주장하고 싶은 듯하다. 선사 이름을 ‘울릉크루즈’로 지은 것에서 그런 마음이 읽힌다.
선사가 내세우는 구호는 ‘2만t급 카페리로 열어가는 울릉크루즈’다. 앞뒤가 안 맞는다. ‘카페리’로 ‘크루즈’를 열어가다니…. 하지만 배를 한 번 타보면 이런 어정쩡한 구호가 이해된다. 크루즈라기에는 모자란 게 많지만, 그렇다고 그냥 ‘페리’라 부르기에는 아무래도 억울한 게 많을 듯해서다.
# 겨울,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것들
뉴씨다오펄호 운항이 바꿔놓은 건 두 가지. 하나는 울릉도 겨울 여행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달라지겠지만, 아직 울릉도는 자주 가게 되는 여행지는 아니다. 일생에 한 번, 많아도 두세 번이나 될까. 딱 한 번 울릉도에 갈 기회가 있다면 봄이나 여름을 추천한다. 가을 울릉도도 나무랄 데 없다. 그런데 한 번 더 가게 된다면, 두말할 것 없이 겨울이다.
울릉도의 겨울은, 다른 여행지와 다른 계절로는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겨울 중에서도 2월을 고르는 게 좋겠다. 눈 많기로 이름난 울릉도에서 가장 눈이 많은 때가 2월이니까.
울릉도의 연평균 적설량은 267.5㎝. 국내 최대 적설량과 1일 최대 적설량 1위부터 3위까지의 기록은 모조리 울릉도 차지다. 울릉도 평균 적설량의 절반 이상이 2월에 내린다. 이 무렵에는 하루 동안 내린 눈이 1m가 넘게 쌓이는 일쯤은 예사다. 그야말로 ‘눈 폭탄’이다.
울릉도에서 눈은 ‘낭만’과 ‘재난’ 사이에 있다. 폭설이 세상을 다 지운 설경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눈이 폭탄이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재난이 되기도 한다. 1934년 1월. 4m가 넘는 폭설로 울릉도 주민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 내수전 용암골에서 일가족 다섯이 폭설에 무너진 집에 깔려 숨졌다. 이들이 어려운 형편에 내다 팔기 위해 만든 숯을, 화장하는 데 썼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잊히지 않고 전해지는 건, 애처로워하는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겨울 울릉도는 바람이 거세고 파도도 거칠다. 1976년 1월 17일, 울릉도에 폭설이 쏟아졌다. 울릉도는 폭설이 내리면 길이 다 끊긴다. 길이 끊기면 이동수단은 배밖에 없다. 6t짜리 작은 배, 만덕호가 그날 도동마을에서 천부마을로 운항했던 건 그래서다. 오후 4시쯤 철근과 쌀 등을 싣고 천부마을 선창으로 들어오다 기관고장을 일으킨 만덕호는 밀어닥친 파도로 그만 전복되고 말았다. 해안에서 고작 20m 떨어진 바다에서 배가 뒤집혀 37명이 죽은 참사였다.
폭설이 내리고 나면 농작물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먹을 게 없던 울릉도 주민들은 명이나물과 부지깽이 등의 산나물로 춘궁기를 겨우 건넜다. 지금이야 별미로 찾는 음식이지만, 명이란 이름은 ‘목숨을 이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고, 부지깽이란 이름도 ‘기근을 잊게 했다’는 부지기근초(不知饑饉草)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겨울 울릉도는 날씨도, 자연도, 그리고 사는 형편도 다 거칠고, 황량했다.
# 울릉도에서는 웰컴하우스부터
뉴씨다오펄호 운항이 바꿔 놓은 다른 하나는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의 연령층이다. 그동안 울릉도는 주로 중년층 이상의 여행지였다. 그중에서도 은퇴한 노인이나 출근 걱정이 없는 부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건, 전적으로 잦은 결항 때문이었다. 은퇴한 이들이라면 좀 불편한 정도겠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은 결항이란 위험 부담은 감수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웬만한 바람과 파도에는 끄떡없는 뉴씨다오펄호가 운항하면서부터 관광객의 연령층이 크게 젊어졌다.
관광객이 젊어지면서 울릉도는 지금 변모하는 중이다. 항구에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관광안내소가 지어졌고, 특산물로 개발한 디저트 메뉴를 앞세운 카페가 들어섰으며, 울릉도산 수제 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까지 생겼다. 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저동항에 들어선 여행자센터 ‘울라 웰컴하우스’였다. 감각적인 외부 디자인과 세련된 내부도 인상적이었지만, 압권은 풍부한 관광안내 자료와 세련된 기념품이었다.
사실 울릉도는 여행계획을 짜기가 쉽지 않다. 제주도처럼 여러 번 다녀오는 곳도 아니니 다녀온 이들도 적고, 여행 관련 정보도 그리 많지 않다. 누구나 울릉도에 닿으면 막막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그런데, 웰컴하우스에 들어서면 아무런 준비 없는 여행자라도 짧은 시간 안에 충실하게 울릉도 여행일정을 짤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 비결이 엽서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관광안내 카드에 있다. 웰컴하우스에는 울릉도의 여러 명소를 각각 한 장의 카드에 지도며 특징, 짧은 안내 등을 적어놓고는 이를 ‘보다(구경할 것)’ ‘놀다(해볼 것)’ ‘먹다(먹을 것)’로 나눠 걸어놓았다.
살펴보니 추천하는 이유와 내용이 대충 뭉뚱그린 게 아니라 정교하고 구체적이다. 마음을 다해 추천한다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현지인만 아는 찐 울릉도 맛집’이란 제목의 카드를 보자. 이 카드가 추천하는 식당은 서면 남양3길의 ‘돼지식당’이다. 그곳을 추천하는 이유가 이렇다. “허름한 전경이 맛집임을 증명한다. 돼지식당이지만, 오리 주물럭과 김치찌개도 맛나다. 울릉도 음식이 물리는 장기 여행자나 얼큰하게 술 한잔 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가보지 않고서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모든 카드가 이런 식이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가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음식 등을 적은 카드를 뽑아 비치해 둔 ‘여행일정 봉투’에 담아 가져가면 그걸로 여행일정 짜기는 끝이다. 남은 일은 각각의 종이를 지역별로 추려서 갈 곳의 순서를 정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울릉도의 명소를 일일이 소개하지 않기로 한 것도, 실은 웰컴하우스에서 더 많은 울릉도 여행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하룻밤에 3600만 원짜리 객실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울라 웰컴하우스에서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카드로 식당을 추천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지방자치단체나 공무원이 식당 한 곳을 추천하면, 이웃 식당의 항의와 비난이 폭주한다. 민간에서도 어렵다. 시장 상인을 회원으로 가진 상인회가 특정 업소를 추천할 수는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울라 웰컴하우스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울라 웰컴하우스의 뒤에는, 아니 울릉도의 변모 뒤에는 뜻밖에 대기업이 있다. 코오롱그룹이다. 국내 재계 순위 39위의 기업규모를 생각하면, 이 작은 섬에 무슨 볼일이 있을까 싶지만, 코오롱그룹은 울릉도에 관한 한 요샛말로 ‘진심’이다. 배가 닿는 사동항이나 저동항의 반대쪽, 그러니까 울릉도 북쪽의 추산(송곳산) 아래에 코오롱글로텍이 운영하는 리조트 ‘힐링스테이 코스모스’가 있다.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과 독특한 형태의 건축디자인으로 명성 높은 건축가 김찬중이 설계했다. 애초에 이 리조트가 관심을 끈 건 깜짝 놀랄 만큼 비싼 숙박비 때문이었다.
힐링스테이 코스모스는 두 개 동으로 나뉜다. 하나는 소용돌이치며 도는 물을 형상화한 나선형 건축물인 ‘빌라 코스모스’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펜션형 건축물인 ‘빌라 테레’다. 빌라 코스모스는 ‘초럭셔리 리조트’다. 객실이 4개 있는데, 하룻밤 숙박요금이 1000만 원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다. 사실 빌라 코스모스는 한 건축물에 4개의 객실이 거실과 주방, 사우나 등을 함께 공유해, 객실을 하나하나 내주지 않고 통째로 판다. 그러니 1박 숙박 요금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비싼 3600만 원이다. 집에서부터 벤츠승합차로 모셔서 울릉크루즈 최상급 객실을 이용하는 이른바 ‘도어 투 도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웬만한 재력으로는 엄두도 못 내는 가격이다. 그나마 접근성이 나은 빌라 테레도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숙박비가 40만 원쯤이니 웬만한 리조트와 별반 차이가 없다.
# 기업이 ‘좋아해서’ 달라진 울릉도
비싼 숙박요금에도 불구하고 코오롱이 리조트 운영으로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는 건, 뻔한 얘기다. 달랑 12개 객실로는 시설비는 물론이고 인건비도 건지기 어렵다. 맞은편에 비슷한 규모의 리조트를 하나 더 짓고 있지만, 그걸 다 짓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관광업에 투자한다고 해도, 울릉도는 대기업이 투자할 만한 대형리조트가 들어설 조건이 안 된다. 그렇다면 왜 코오롱은 울릉도에 진심인 걸까.
추정하는 이유는 최고경영자가 ‘울릉도를 좋아해서’다. 그냥 좋아하는 것, 그것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웰컴하우스의 이름이 ‘울라’다. 울라는 고릴라 캐릭터다. 힐링스테이 코스모스 구내에도 고릴라 조형물이 있고, 눈축제가 열리고 있는 나리분지에도 17m가 넘는 초대형 울라 캐릭터 인형이 있다. 울릉도의 적잖은 렌터카의 외부도 울라 캐릭터로 래핑을 했다. 울라는 코오롱이 만든 캐릭터다. 리조트 뒤편 송곳산의 형상이 딱 고릴라 모습이어서, 고릴라 캐릭터를 만들고 ‘울릉도 고릴라’를 줄여 ‘울라’라고 이름 붙였다.
울릉도의 울라는, 일본 구마모토의 인기 곰 캐릭터 ‘쿠마’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다른 건 일본의 쿠마는 구마모토현에서 만든 것이고, 울릉도의 울라는 지자체가 아니라 민간기업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민간기업이 이런 것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다니…. 지자체가 나서면 속도가 느리고 구태의연하고, 민간이 나선다 해도 잡음이 끊이질 않는데, 기업이 나서니 정교하고도 빠르다. 게다가 이런 게 ‘돈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주민들도 알기에, 기업과 지역 주민들 사이도 좋다.
기업이 ‘한눈파는 일’ 정도로 간주한다면 주주 입장에서야 못마땅할 수 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쯤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런 식의 기업의 기부적 참여가 관광지 개발의 또 다른 모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 나리분지의 설국과 해안도로
다른 계절도 그렇지만 겨울 울릉도에서 먼저 가봐야 할 곳은 나리분지다.
나리분지는 내린 눈으로 이미 설국의 풍경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섬의 분지. 경계가 사라진 눈밭에 서면 알싸한 박하향이 느껴지는 듯하다. 광활한 눈밭에 발자국을 내며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집채만 한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안도로도 겨울 울릉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울릉도를 대표하는 경관 명소가 차례로 등장한다. 첫손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대풍감’이다. 태하 해변에서 관광 모노레일을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른 뒤 10분쯤 산책로를 걸으면 이내 대풍감 전망대다.
대풍감은 ‘바람을 기다리는 구덩이’라는 뜻. 울릉도에서 새 배를 만든 뒤 대풍감 바위에 닻줄을 묶고 바람을 기다렸다가 세찬 바람이 불면 닻줄을 끊고 그 기세로 육지까지 항해를 했단다. 겨울 이면 대풍감에는 돛을 찢어버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강풍이 분다.
대풍감 아래 깎아지른 주상절리의 석벽과 그 아래 푸른 물빛이 인상적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풍감의 경관도 좋지만, 고개를 돌려 반대쪽 해안 절벽과 노인봉과 송곳봉이 줄줄이 이어지는 남성미 넘치는 해안 경관도 장엄하다. 해안일주도로는 현포항과 송곳봉, 천부항을 지나 울릉도 해안 경관의 결정판인 삼선암에 닿게 된다. 바다에 솟은 세 개의 바위기둥을 일컫는 삼선암은 울릉도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히는 명소다. 여행명소 얘기는 이쯤으로 줄인다. 울릉도에 가거든 울라 웰컴하우스에서 더 찾아보시길….
■ 국내서 가장 빠른 배
포항~울릉도 구간에는 국내에서 가장 빠른 배도 다닌다. 지난해 7월부터 운항을 시작한 3000t급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다. 호주의 조선업체 인캣이 건조한 이 배의 최고속도는 50.2노트(시속 93㎞)다. 부산~일본 하카타(博多)를 운항하는 쾌속선 퀸비틀호가 시속 67.6㎞이고, ‘초쾌속선’이라는 인천~백령도의 코리아프라이드호 최고시속이 74㎞이니, 시속 93㎞의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는 ‘초초쾌속선’이라 불러야 하겠다. 이 배는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2시간 50분에 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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