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상인 “관세폭탄에 발주 뚝”… 美수출 막힌 곰인형, 중국옷 갈아입어[Global Focus]

박세희 특파원 2025. 4. 2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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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美의 對中관세 145% 보름째… 물류수도 ‘린이’ 市 가보니
2600여업체 입점한 최대시장
무역전쟁 이어 불황까지 겹쳐
가게마다 장난감 재고품 수북
내수용 바꾸고 진열해 보지만
온라인쇼핑몰·초저가에 밀려
中, 전세계 장난감 점유율 70%
美 수입완구 80% 中서 생산돼
“장난감, 美가정서 사치품 될것”
22일 중국 산둥성 린이 완구 도매시장 내 봉제인형 매장에 수북이 쌓여 있던 곰돌이 인형들. 미국으로 수출돼 큰 인기를 얻었다는 갈색 옷의 곰돌이 인형(오른쪽 작은 사진)은 이제 내수 시장을 겨냥하며 중국 경찰관, 중국 소방관의 복장을 본뜬 옷으로 갈아입었다.

린이=글·사진 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무려 145%에 달하는 대중 관세 부과를 시행한 지 24일로 보름을 맞았다. 미·중 양국 간 협상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채 미국은 대중 관세 145%, 중국은 대미 관세 125%를 고수하며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14억 내수 시장의 힘으로 이번 무역 전쟁의 파고를 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에 부과된 폭탄 관세로 중국 물건들의 미국행이 막힌 데 따른 영향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업체들은 내수에 집중하며 버티기에 나서고 있지만 불황에 접어든 경기로 인해 속앓이하는 업주들이 적지 않다. 국제 무역 도시이자 물류 수도, 유통 중심지로 불리며 내수 시장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중국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시는 이러한 모습이 교차되는 대표적인 도시였다.

22일 중국 산둥성 린이 소상품성 전경.

◇수출에서 내수로… 중국옷으로 갈아입은 곰돌이 인형 =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폭탄관세 부과 이후 CNN, BBC 등 언론에서는 “저렴했던 장난감이 이제 각 미국 가정에 ‘사치품’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완구 산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 약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실제 미국 가정이 느낄 여파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터나 해변에서 필수인 모래놀이 장난감, 플라스틱 장난감 총 등 미국에서 수입하는 장난감 중 80%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22일 기자가 찾은 린이시는 플라스틱 장난감의 주요 생산지로 연간 수백만 개의 장난감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해외직구기업협회 중국본사 신재호 회장은 광둥(廣東)성, 저장(浙江)성보다 산둥성 린이의 인건비가 저렴해 더욱 큰 가격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장난감 주요 생산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무용품과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2600여 도매점이 입점해 있는 린이 소상품성(小商品城)과 장난감 전문 도매시장인 린이 완구 도매시장에는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장난감 총과 모래 놀이 세트 등이 가득했다. 린이 완구 도매시장에서 만난 한 봉제인형 가게 주인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으로 수출되던 인형들이 있었지만 올해부터 발주가 끊겼다”면서 한 종류의 곰인형을 가리키며 “미국에서 인기가 좋았던 제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영어가 적힌 옷을 입은 해당 곰인형 주위에는 중국 경찰, 중국 소방관의 옷을 입은 곰인형들이 수북했다. 수출용 제품이었다가 옷을 갈아입고 내수용으로 바뀐 것들이다.

미국 수출 비중이 컸던 업체들은 이번 관세 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린이시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가구 제조업체나 버들가지 공예품 수출 업체들은 타격이 크다”며 “한 가구 제조업체 대표는 한국을 대미 수출 우회 경로로 삼는 방안까지 타진했다”고 귀띔했다.

이들과 달리 내수에 집중해온 업체들은 아직 견딜만하다는 분위기였다. 플라스틱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뤼쥐(綠聚)생활물품관의 마둥친(馬東芹) 대표는 “우리 회사의 경우 내수가 90%여서 큰 영향은 없다. 중·미 무역 전쟁도 나 같은 일반인들은 잘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소상품성에서 플라스틱 장난감을 주로 취급하는 상인은 “미국 관세에 따른 영향은 거의 없다. 피해는 오히려 미국의 몫”이라며 “저렴하고 질 좋은 중국산 장난감, 인형이 터무니없이 비싸질 미국이 더 문제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다른 봉제인형 제조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하고 있어 미국 관세의 영향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소상품성 내 액세서리 매장에서 직원이 물건들을 정리하는 모습.

◇문제는 내수…“경제 상황 안 좋아도 안 좋다고 말도 못 해” =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은 산둥성 린이시는 이우(義烏) 시장으로 유명한 저장성 이우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물류 중심지다. 중국 수도권인 베이징(北京)-톈진(天津)-탕산(唐山) 경제권과 상하이(上海)시가 포함된 창장삼각주(長江三角洲) 경제권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어 일찍부터 물류가 발달했으며 중국 전역으로 가는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 39개의 대규모 물류 단지와 총 136개의 도매시장이 위치해 있어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물류센터이자 도매시장으로 느껴진다. 이 때문에 중국 내수시장의 가늠자 역할도 한다.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전쟁 상황에서 내수 활성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국 경제가 불황이라는 사실은 린이시를 둘러본 동안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미국발 무역 전쟁의 여파를 묻는 질문에 담담한 반응을 보였던 상인들은 수출이 아닌 내수 문제에 대한 질문엔 일제히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상품성에서 장난감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 묻자 “안 좋아도 안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지 않느냐. 그저 그런 정도”라고 말하며 눈짓을 했다. 그에게 한국 기자라고 소개하자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린이의 소상품성이 아주 북적북적하고 활기 차다고 보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해당 매장을 방문한 한 도매업자는 말랑이 장난감을 한 박스만 주문했다. 더 많이 필요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더 많이는 필요 없다”고 답했다.

소상품성에 물건을 떼러 온 사람들은 별로 없고 분위기는 다소 썰렁했는데, 최근 대다수의 도매 주문이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 등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상인들의 분위기 역시 가라앉아 있었다. 린이에서 재작년까지 화장품 사업을 했다는 한 택시기사는 “재작년부터 경제가 안 좋아져 화장품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며 “월 매출이 10분의 4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최근 린이에선 ‘다이소’와 같은 초저가 제품 판매 업체들은 활황이다. 제품 한 개당 가격이 2위안인 ‘2위안숍’, 5위안인 ‘5위안숍’ 등 초저가 제품들만 판매하는 도매업체들이 몰려있는 구역 주차장은 이곳을 찾은 상인들로 가득했다.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100위안(약 2만 원)짜리 샴푸를 샀다면 이젠 20위안짜리 샴푸도 괜찮다며 쓰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니 초저가 제품 판매 업체들로만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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