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식어가는 ‘철의 도시’… “40년 일한 공장까지 문닫아”

포항=김재형 기자 2025. 4. 24. 03: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외환위기도 무사히 넘겼는데, 공장이 문을 닫았다는 게 아직도 실감 나질 않습니다."

한때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은 차갑게 식은 채 적막감만 감돌았다.

타이어 코드(보강재) 등에 필요한 선재코일을 연간 70만 t 생산하던 이 공장은 지난해 11월 마지막 코일 생산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차갑게 식어가는 건 '철의 도시' 포항만이 아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퍼스트 스톰’ 현장 르포
경기침체-中저가 공세-美관세 겹쳐… 철강-석유화학-배터리 산업 휘청
작년 영업이익 1년새 66% 급감… 포항-여수 산단 지역경제도 위기
폐쇄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 9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 안은 해체된 설비들만 가득할 뿐 특유의 열기를 잃은 채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선재코일을 연간 70만 t 생산하던 이 공장은 경기 침체, 중국발 저가 공세 등으로 지난해 11월 폐쇄됐다. 포항=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외환위기도 무사히 넘겼는데, 공장이 문을 닫았다는 게 아직도 실감 나질 않습니다.”

한때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은 차갑게 식은 채 적막감만 감돌았다. 40년 넘게 이곳에서 일했다는 A 씨(60)는 최근 본보 기자와 만나 마지막 출하 제품이 걸려 있던 자리를 직접 보여줬다. 연말 은퇴를 앞둔 그는 2t짜리 선재코일로 가득했던 텅 빈 공간을 한참 바라봤다.

타이어 코드(보강재) 등에 필요한 선재코일을 연간 70만 t 생산하던 이 공장은 지난해 11월 마지막 코일 생산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1968년 포스코 창립 이래 경영난 등으로 공장이 폐쇄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차갑게 식어가는 건 ‘철의 도시’ 포항만이 아니다. 국내 제조업 3대 근간(根幹) 산업으로 분류되는 배터리, 석유화학, 철강 업종 모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이들 업종은 전방산업과 상호의존성이 매우 높아 ‘산업의 뿌리’로 불린다. 지난해까지 이어진 고금리와 경기 침체, 중국발 저가 공세 등으로 역대급 불황을 맞은 3개 업종은 올해 미국발 관세 폭탄까지 얻어맞으며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23일 본보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자산 기준 100대 제조사의 2024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3개 업종의 평균 영업이익은 약 2500억 원으로 전년(7197억 원) 대비 66% 급감했다. 업종별로는 배터리(5곳)가 97.5%, 석유화학(14곳)이 64.5%, 철강(6곳)이 46.4% 줄어들며 영업이익 감소율 ‘톱3’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100대 제조사 평균 영업이익이 79.1% 급증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3개 업종이 위기에 빠지면서 포항과 전남 여수 산단의 지역 경제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기업의 수익 창출력을 보여주는 자기자본이익률(ROE)도 악화 일로다. 역시 석유화학(―8.5%포인트), 배터리(―6.2%포인트), 철강(―4.9%포인트)의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자본집약적 산업에서 ROE가 장기간 감소한다는 것은 추가 투자 유치의 어려움과 수익성 악화의 악순환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호정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계 각국이 각자 제조업을 살리겠다고 지원을 늘리고 불공정 게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기업들만 고군분투하는 중”이라며 “한국도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정치권에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여수=한종호 기자 hjh@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