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산다더니 `뻥`이었네"… 허술한 공시규정 논란

김남석 2025. 4. 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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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12곳 실제 한 주도 안사
개인 투자자 피해 가능성 지적
거래소 "일일물량 제재 어려워"
[챗GPT 생성 이미지]

최근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 등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자사주 매입을 신청해 놓고 실제로는 한 주도 사들이지 않는 기업도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 공시를 믿고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12개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신고한 뒤 실제로는 한 주도 사지 않은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거래소는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하는 경우 직전 거래일에 신청 물량을 집계해 공개하고, 매입일 당일에는 실제 체결 물량을 공시한다.

한일철강은 지난 1일부터 이틀 연속 1만5000주 매입을 신청했지만, 매입 물량은 한 주도 없었다. 대교는 지난 7일부터 12거래일 연속 1만5000주 매입을 신청했지만, 한 주도 사들이지 않았다. 이달 대교가 매입을 신청한 22만5000주 중 실제 매입 물량은 8206건에 그쳤다. 체결률은 3.6%에 불과했다.

지난 4일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SG세계물산의 체결률은 3.4%로 대교보다도 낮았다. 80만주 매입을 신청했지만, 실제 매수한 물량은 2만7624주였다. 오는 10월 3일까지 651만4658주를 매입하겠다고 공시했지만 현재 수준으로는 예정 물량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SG세계물산의 자사주 매입을 위탁 받은 증권사 관계자는 "매입 전날 신청한 물량은 해당 일에 모두 매수 주문을 내지만, 주가 변동에 따라서 체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을 신청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주가 변동에도 신청 물량을 모두 사들이거나, 주가 변동분을 감안해 다소 물량을 줄이더라도 예정된 매입 금액을 채우는 것과 달리 신청만 해놓고 한 주도 사지 않는 것은 시장의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신청물량을 미리 공시하도록 규정해 놓은 것은 결국 시장에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공시 자체의 의미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들어 일일뿐 아니라 취득 기간 내 예정된 물량을 모두 채우지 못한 기업도 5곳 있엇다. 삼화왕관은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지난달 12일까지 자사주 2만주를 사들이겠다 공시했지만, 실제 사들인 물량은 6236건에 그쳐 예정물량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서부T&D도 예정물량 331만주 중 82만7000주만 사들였고, 문배철강도 93만주 중 58만여주를 매입하는데 그쳤다.

한국거래소가 자기주식 매입을 공시한 뒤 취득 예정기간 내 신고한 주식을 모두 사들이지 못한 경우 이를 공시변경으로 보고 불성실공시로 인한 처분이 가능하지만, 일일 신고 물량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또 실제로 기업이 실제로 매수 주문을 냈지만 주가 변동 등으로 장내 매수 체결이 불발됐다면 귀책사유로 보기 어려워 실질적인 처분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실제 올해 예정된 자사주를 사들이지 못한 기업 모두 이를 채우지 못한 이유를 '주가 변동'으로 적었다. 주가 변동 등으로 예정된 물량을 모두 사들이지 못하더라도 당초 예정된 매입 예정금액을 채우는 방법도 있지만, 해당 기업들은 매입을 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기업이 하루 전 신청한 물량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여러 거래일동안 이어지면 별도로 연락하거나 시장감시위원회 등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 매입 물량인 만큼 일일 물량을 기준으로 제재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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