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 칼럼] 국민의힘 자해 경선 쇼
사상전·체제전쟁 주장하는 후보들
윤 어게인 당· 전광훈 출마 자승자박
사과하고 쇄신하는 정공법이 살 길
국민의힘은 반공 군사독재 시절까지 후퇴한 듯하다.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이철우 후보는 미군 여중생 압사, 사드, 광우병 관련 시위가 모두 “반미(反美) 때문”이고 “이번 탄핵도 사상전(思想戰)에 말려든 탓”이라며 당의 이념 무장, 사상을 수사할 방첩청 설치를 주장했다. 나경원 후보는 “이재명의 민주당 일부 세력은 친북세력”이고 “친북세력의 헌법가치를 뛰어넘는 갈등”이 문제라며 “체제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안철수 후보를 빼곤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 못 박은 계엄조차 선 긋지 못했다. “계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정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김문수) “2시간의 해프닝”(홍준표) “내란몰이 탄핵 선동이 이 지경을 만들었다”(나경원) “탄핵소추 안 했으면 헌법재판 안 받았을 것”(이철우)이라는 책임회피와 헛소리가 난무했다.
보수 정당은 느닷없이 퇴행한 게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제대로 혁신하지 못한 결과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시절의 짧은 쇄신 시도, 이준석 대표의 약자 혐오를 개혁으로 착각한 시기가 있었을 뿐, TK 표에 안주한 수구정당으로 주저앉은 지 오래다. 인물과 비전이 없어 자질을 따지지도 않고 갖다 쓴 것이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었고 한덕수 대망론이다. 수도권 지지도, 시대에 조응하는 리더도, 인재 충원도 안 보이는 정치적 폐허다.
그러니 윤 대통령 변호인들이 ‘윤 어게인’ 창당을 들쑤신 것도, 내란 선동 혐의로 수사받는 전광훈 목사가 국회 해산, 헌재 해체를 내걸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도, 결국 국민의힘이 던진 부메랑이다. 의원들은 “같이 망하자는 얘기” “당에는 완전히 마이너스”라 했다는데, 그걸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온갖 궤변으로 계엄을 정당화하고 탄핵 가결 의원들을 내쫓으려 할 때 모두가 예상했다. 막말 목사든 부정선거론자 유튜버든 표가 된다며 넙죽 엎드린 그들이 제 무덤을 팠다. 그뿐인가. 선거를 관리해야 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며 출마 연기를 피우고 “권한대행과 선출된 대통령 간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에 차이가 없다”며 막 나갈 태세다. 국회 몫 헌법재판관을 임명 않고 버티다 대통령 몫 재판관은 불시에 지명해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은 그의 추태가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어쩔 것인가. 대선은 포기했다 치고 총선에선 자리 보전이 가능한가. 보수 개신교와 유튜버에게 잘 보여 정치생명을 부지하려는가. 닥치고 당권에 매진해 공천권을 꽉 쥐고 연명할 심산인가. 양꼬치 거리에서 혐중 난동을 벌인 청년들을 당의 미래로 삼으려는가.
결과가 짐작되는 대선이라 해서 선거가 무의미한 건 아니다. 대선 기간은 시대정신이라는 공동체의 과제를, 국가적 비전을 상상하고 토론하는 시간이다. 합리적 보수층, 상식적 유권자가 원하는 게 뭔지를 고민해야 한다. 청년층 구미에 맞추겠다고 밸런스 게임이나 하고 키 높이 신발, 보정속옷 같은 인신공격으로 시간 때울 만큼 한가하지 않다.
국민의힘은 건강한 보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정당 해산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더 위험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을 부를 뿐이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기자 손목을 끌어 쥐고 답을 피한 그 질문을 다시 던진다. 국민의힘은 도대체 무엇을 사과한 것인가. 반성할 마음이 있기는 한가. 집권에 눈멀어 부적격자를 대통령으로 만든 잘못,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못하고 체리따봉에 감읍한 책임, 헌정을 파괴한 대통령을 두둔하며 극우 세력을 키운 죄, 유권자가 준 표만큼의 의석도 못 챙기면서 선거법 개정에 번번이 반대했던 태만, 비전과 정책보다 반감과 공격으로 쉽게 이기려 한 욕심, 이 모든 것을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당연한 이 길이 가야 할 길이다.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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