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경운기…무상수리로 ‘희망’ 재시동

조영창 기자 2025. 4.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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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불탔는데 농기계 살필 정신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니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죠."

불탄 경운기·관리기·동력운반차 등 농기계 주인들은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들을까 봐 농기계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수리기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의 '산불 피해 농기계 순회수리 봉사단' 9명은 석보면 답곡리 피해 마을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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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농기계 수리현장 가보니
범농협 ‘순회봉사단’ 적극 나서
마을 곳곳 찾아다니며 점검
대동 등 업체소속 기사도 참여
농가들 “기운 난다” 고마움 표시
대형 산불로 피해를 본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마을 공동 농기계 창고에서 전북농협농기계기술자협의회 소속 ‘순회봉사단’이 경운기를 수리하고 있다.

“집이 불탔는데 농기계 살필 정신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니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죠.”

16일 찾은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의 한 마을 농기계 창고. 농가들이 공동으로 쓰던 이곳은 이전의 형태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곳곳이 까맣게 그을렸다. 반쯤 타다 만 농기계 부품들은 전쟁터 잔해처럼 여전히 나뒹굴고 있었다.

전등마저 전소돼 어두컴컴한 이곳에서 농기계 수리기사들은 입구에 비치는 햇빛을 조명 삼아 바삐 움직였다. 손에 드라이버와 스패너(볼트·너트를 죄거나 푸는 공구)를 쥐고 손상된 경운기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이들의 얼굴은 흡사 응급 수술에 들어간 의사처럼 비장했다.

불탄 경운기·관리기·동력운반차 등 농기계 주인들은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들을까 봐 농기계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수리기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경운기·양수기가 산불에 그을렸다는 김명숙씨(66)는 “차가 없다보니 공지된 수리 장소까지 농기계를 운반할 수 없어 수리를 못 받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마을로 와주니 경운기가 당장이라도 살아나 바로 내일부터 고추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든다”며 고마워했다.

이날 마을을 찾은 수리기사들은 전북농협농기계기술자협의회 ‘순회봉사단’ 소속 10명. 농협은 9일부터 산불 특별재난지역을 대상으로 농기계 무상 순회수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의 방문은 그중 하나다. 평상시 농기계 수리 봉사는 특정한 공간에서 농가들이 몰고온 농기계를 고쳐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3월 산불로 집과 차가 타버려 일상생활조차 버거운 농가가 많은 까닭에 마을까지 찾아가 수리를 한 것이다.

농협과 업계 간 협업도 빛났다. 공동 수리 장소인 남영양농협 석보지점주유소에는 농협경제지주가 운영하는 ‘NH농기계이동수리센터’ 기사 9명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의 ‘산불 피해 농기계 순회수리 봉사단’ 9명은 석보면 답곡리 피해 마을을 맡았다. 이들은 대동·TYM·LS엠트론·아세아텍 등 주요 농기계업체 소속 기사들이다.

수리기사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얼굴에 묻은 기름때 하나 닦을 새 없이 손상 부위를 고치고 부품을 갈아 끼웠다. 수리 봉사에 참여한 허재용 전북 정읍농협 농기계서비스센터 과장은 “화재로 손상된 농기계는 수리가 가능한지 엔진·미션·전기 배선 등을 우선 확인하고 수리를 시작한다”며 “다만 부품이나 타이어는 규격이 제각각이어서 교체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전소된 농기계는 부품 교체비가 더 많이 발생하기도 해서 전문가의 점검을 받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영양군은 1일부터 군비 4억원을 투입해 한시적으로 산불 피해농가에 임대농기계를 무상 대여하고 있다. 농가는 피해사실확인서를 제출하면 임차사용료와 운반대행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집 앞 창고와 고추건조기가 잿더미로 변했다는 농민 우병노씨(80)는 “혼자 살다보니 산불이 났을 때 창고에 있었던 비료 10포대와 나락(벼) 15가마(35kg들이)를 미처 챙기지 못하고 대피해 모두 화염 속에 사라졌다”며 “당장 생계가 어려워져 농기계 수리를 받을 여력이 없었는데 무료로 고쳐주고 빌려줘 다시 기운을 차리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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