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작지만 알차다’…단맛과 부드러운 식감 어우러진 ‘알배추’
노란색 속잎, 당·단백질 함량↑
식이섬유 풍부, 칼륨·철분 많아
살짝 덜 익힌듯 가볍게 조리해
아삭하면서 단맛·감칠맛 살려
소스 곁들인 구이요리 최근 인기

배추는 인간의 입맛이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지중해 연안의 야생 유채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파됐고 순무가 가장 먼저 탄생했다. 배추는 기원전 5∼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시기 배추는 자라면서 잎이 바깥으로 퍼지고 대부분 초록색을 띠어 청경채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우리에게 김장 배추로 익숙한 결구배추는 오늘날 배추의 대표 품종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비결구배추가 그보다 먼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배추 잎이 바깥으로 퍼지는 비결구형에서 안쪽에서 속이 차는 결구형으로 변화한 이유에 대해서는 두가지 추측이 있다. 하나는 결구배추가 저장성과 운반성이 뛰어나 상품성이 높았기에 집중적으로 개량됐다는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추운 북방지역에서 배추를 재배하면서 생장점을 보호하려는 생존 전략으로 잎이 안쪽에서부터 자라게 됐다는 진화적 해석이다. 두 가설을 종합하면 지금 우리가 먹는 배추는 수천년에 걸친 인간의 선택과 자연환경에 따른 적응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이렇게 탄생한 배추는 저칼로리 고영양 채소의 대표 주자다. 100g당 열량은 15㎉에 불과하지만 비타민C와 비타민K, 엽산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또한 배추에는 브로콜리·갓·콜리플라워 같은 다른 배추과 식물과 마찬가지로 알싸한 맛을 내는 글루코시놀레이트라는 황화합물이 들어 있다. 글루코시놀레이트는 항산화·항염증·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추에는 또한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높은 칼륨 함량에 칼슘과 철분도 상당량 함유돼 있다.

배추 맛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층위의 복합적인 맛을 낸다. 생배추는 시원하고 아삭한 식감에 은은한 단맛과 약간의 쌉싸름한 맛, 살짝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다. 조리된 배추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익는 과정에서 세포벽이 부드러워지고 당분이 농축되면서 감칠맛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부위에 따른 맛의 차이도 뚜렷하다. 당·단백질·섬유질 함량에 따라 배추의 식감이 달라지는데, 바깥쪽 잎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당과 단백질 함량은 높아지고 섬유질 함량은 낮아진다. 배추의 겉잎을 제거한 배춧속이 달고 부드러운 이유다. 이 부분을 가리켜 알배추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는 ‘노랑쌈’과 같은 쌈 전용 소형 배추를 재배해 알배추로 내놓기도 한다. 노랑쌈은 속잎 색깔이 진한 노란색에 수분함량이 적으며 고소해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요리에 활용하기도 좋다.
알배추나 배추 잎을 요리할 때는 너무 오래 익히지 않아야 한다. 장시간 조리할수록 황화합물에서 유래한 냄새가 불쾌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살짝 덜 익힌 듯 가볍게 조리해야 아삭하면서도 단맛과 감칠맛의 균형을 잘 살릴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역 부근의 작은 식당 ‘에디페브’에서는 젊은 조리사 한명이 세심하게 시간을 맞춰 요리한 구운 알배추를 맛볼 수 있다. 시저드레싱, 크루통(식빵 가장자리를 잘게 잘라 구운 것), 바삭한 베이컨을 올리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듬뿍 뿌려낸다. 씹을 때마다 아삭하면서도 마치 스펀지 속으로 흡수된 소스가 터져나오듯 감칠맛이 폭발한다. 먹다보면 왜 요즘 서울의 레스토랑에서 알배추 구이가 자주 눈에 띄는지 실감하게 된다.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맛이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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