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성게, 부드럽고 고소한 식감에 신선한 바다향 ‘물씬’

관리자 2025. 6.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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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송사 A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로스트'에는 한국인 캐릭터 권진수(대니얼 대 김)가 갓 잡은 성게를 권하자 다른 사람들이 진저리 치는 장면이 나온다.

껍데기를 까면 나오는 노란 알갱이는 보통 '성게알'로 불리지만 사실 알이 아닌 생식소다.

남해안에서는 6월경 보라성게가 제철인데, 물이 깨끗한 산지에서는 금방 잡은 성게를 바로 까서 먹기도 하고, 생미역에 싸 먹어도 색다른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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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성게
화가 ‘달리’의 예술적 영감 원천
앉은자리서 36개나 먹은 마니아
비빔밥·덮밥·미역국·젓갈로 즐겨
6월 남해안 ‘보라성게’가 제철
생미역에 싸 먹으면 색다른 별미
남해안에서는 6월경 ‘보라성게’가 제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방송사 A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로스트’에는 한국인 캐릭터 권진수(대니얼 대 김)가 갓 잡은 성게를 권하자 다른 사람들이 진저리 치는 장면이 나온다. 식재료 자체가 낯선 데다 서구에서는 해산물을 생식하는 문화가 거의 없는 탓이다.

하지만 지중해를 낀 남유럽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에는 성게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이미 수천년 전부터 진기한 식재료였던 듯 귀족의 연회에 성게가 준비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게를 해부하고 그 구조를 상세하게 관찰했다고 한다.

서양에서 유명한 성게 마니아를 꼽자면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앉은자리에서 36개나 되는 성게를 까먹을 정도로 성게를 좋아했다. 성게는 그에게 음식을 넘어서 창작의 원천이기도 했다. 보름달이 뜨기 하루이틀 전에는 성게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성게가 꿈속에서 기묘한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게알’은 알이 아니라 알을 만드는 생식소다. 게티이미지뱅크

달리는 성게의 겉모습이 마치 우주를 구성하는 듯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여겼다. 또 껍데기를 깨면 닿을 수 없던 초현실적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 실제 작품에도 성게를 자주 소재로 사용했다.

바르셀로나·말라가 등 스페인 해안 도시의 시장을 방문하면 동아시아만큼이나 다양한 해산물을 볼 수 있다. 서양인이 혐오식품으로 여긴다는 문어·오징어도 별미 식재료로 사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성게는 ‘귀한 몸’으로, 속에 품은 알을 생식하거나 파스타에 비벼 먹는다. 노른자처럼 찐득한 식감에 신선한 바다향이 식욕을 돋운다.

껍데기를 까면 나오는 노란 알갱이는 보통 ‘성게알’로 불리지만 사실 알이 아닌 생식소다. 수컷의 정소는 비교적 밝은 주황빛을 띠고 암컷의 난소는 짙은 주황색에 가깝다. 그냥 두면 녹아내리기 때문에 바로 먹는 것이 좋은데, 제품으로 포장할 경우 이전에는 보존을 위해 명반을 첨가했지만 최근 해수에 담그는 방법이 개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게알을 건조하거나 소금을 넣고 젓갈로 만들기도 한다. 다만 집에서 만든 성게 젓갈은 오래 보관이 어려워 며칠 내로 먹어야 한다. 제주에서 성게는 귀한 보양식이면서 잔치 음식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고소한 성게미역국은 산후 회복에 필요한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해서 산모들이 먹었다. 성게 철이 아닌데 잔치가 있을 경우, 미리 사들여 냉동 보관했다가 상에 올리기도 한다. 가장 간단하면서 성게 자체의 맛을 살리는 요리법은 뜨거운 밥에 소량의 참기름과 함께 넣고 비벼 먹는 것이다.

일본에서 ‘우니’라고 불리는 성게알은 최고급 식재료로 오마카세(주방 특선요리)의 단골 메뉴다. 홋카이도 등 산지에 가면 밥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덮은 사치스러운 우니 덮밥 요리도 볼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외화벌이를 위해 바다에서 잡은 성게를 거의 전량 일본에 수출했고, 시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게 유통이 늘어난 것은 값싼 중국산의 유입 때문이다. 성게를 잘 식용하지 않는 러시아나 남미·캐나다에서 온 성게도 볼 수 있게 됐다.

성게는 직접 물질로 잡아야 하는 데다 알만 골라내는 작업이 오래 걸리고 까다롭다. 남해안에서는 6월경 보라성게가 제철인데, 물이 깨끗한 산지에서는 금방 잡은 성게를 바로 까서 먹기도 하고, 생미역에 싸 먹어도 색다른 맛이 난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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