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와 기후변화 예측한다더니… 사상 최대 양자기술 사기 집단소송

이재명 2025. 4. 2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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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퀀텀컴퓨팅 기술사기 역대급 소송
"NASA 계약, 양자컴 성능 허위 발표"
주가 2800% 폭등한 뒤 4분의 1 토막
기술 정보 불균형 '묻지마 투자' 주의
미국 양자기술 기업 퀀텀컴퓨팅의 3세대 양자컴퓨터 '디랙-3(Dirac-3)'. 퀀텀컴퓨팅 홈페이지 캡처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양자기술 기업 '퀀텀컴퓨팅'의 주가가 지난해 12월 18일 하루 만에 33% 치솟았다. 이 회사 주가는 2024년 한 해에만 2,800% 급등해 시가총액이 30억5,000만 달러(약 4조3,500억 원)로 불어났다. 주가를 끌어올린 건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계약을 맺고 우주 데이터를 최첨단 양자기술로 재구성해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한다는 발표였다. 퀀텀컴퓨팅은 그간 5번이나 나사와 과제 계약을 체결하며 이름을 알렸고, 양자기술 테마주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올해 1월 한 투자기관이 퀀텀컴퓨팅에 대해 "만연한 사기"라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기업가치가 4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칠쳤다. 매출과 제품, 계약 관계를 과장하고 조작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과거 줄기세포부터 초전도체,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비전문가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과학과 테크 분야의 투자 리스크가 양자기술 분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 단위' 손실에 미국 투자자들 소송

그래픽=송정근 기자

20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이달 초 퀀텀컴퓨팅을 상대로 다수의 미국 로펌들이 뉴저지 연방지방법원에 증권법 위반 혐의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로펌은 오는 28일까지 소송에 참여할 투자자들을 모집 중이다. 주가 급락으로 수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 가운데, 혐의가 입증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더해 전체 소송 규모는 테크 분야 최고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펌과 소송 참여자들은 지난 5년여간 퀀텀컴퓨팅이 자체 기술과 제품의 성능에 대해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나사와의 계약 내용뿐 아니라 자체 개발 기기의 사업 규모도 과장했다는 것이다. 퀀텀컴퓨팅의 지난해 매출은 37만3,000달러(약 5억3,000만 원) 수준이다. 전년 대비 4.2% 늘긴 했으나 순손실이 6,850만 달러(약 976억 원)에 달해, 잇따른 나사 과제 수주 발표를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실적이란 평가다. 결국 지난 16일(현지시간) 윌리엄 맥건 퀀텀컴퓨팅 최고경영자(CEO)는 다음 달 12일부로 퇴임하겠다고 발표했다.

5월 12일 퇴임하겠다고 밝힌 윌리엄 맥건 퀀텀컴퓨팅 최고경영자(CEO). 퀀텀컴퓨팅 홈페이지 캡처

기술도 시장도 아직 무르익지 않은 탓에 양자 분야는 기업가치가 큰 변동 폭을 보인다. 미국 기업 리게티 컴퓨팅 주가는 지난해 초 1.5달러대에서 올 초 21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8달러대로 주저앉았다. 캐나다의 디웨이브 퀀텀은 작년 초 2달러 이하였는데, 올 들어 한때 12달러에 육박했다 지금은 6달러대로 내려왔다. 그런데도 기술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커 투자는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고, 그만큼 분쟁도 늘고 있다.

미국 아이온큐는 지난해 초 10달러 안팎이었던 주가가 최고 54달러대로 5배 이상 치솟았다. 이온트랩 방식의 양자컴퓨터 첫 상용화에 다가서면서 미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의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매출도 지난해 4,307만 달러(약 613억 원)로,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하지만 2021년 다른 테크기업과 합병을 시도하다 기술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집단소송을 당했다. 2023년 메릴랜드 지방법원에서 소송이 기각되긴 했으나, 투자자들은 설명이 불충분했던 건지, 기술이 정말 허위였는지를 분명히 구분하기 힘들었다.


빅테크 투자 경쟁 속 '옥석 가리기' 필수

최상목(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12일 대전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열린 양자전략위원회 1차 회의 참석 후 초전도 양자컴퓨터 연구실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역시 분위기가 비슷하다. 양자기술 소재·부품·장비, 양자암호 기업에 주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모인다. 우리로, 우리넷, 쏠리드, 아이씨티케이, 드림시큐리티, 케이씨스, 한국첨단소재, 코위버, 엑스게이트 등이 지난 연말께 25~70%가량 주가가 뛰었다가 현재는 상승분을 절반 이상 반납한 상태다. 중장기 테마주라며 투자자들이 몰렸다가 실제 성과가 지연되자 빠져나갔다.

한상욱 한국양자정보학회장은 "양자산업은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해 아직 산업계보다 학계를 중심으로 연구가 공유되며 기술이 성장하고 있다"면서 "논문과 특허 같은 이력 없이 갑자기 신기술을 내놓을 순 없기에 섣부른 성과 발표에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양자기술도 이젠 '파이 키우기'와 함께 '옥석 가리기'가 필요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책자금을 활용한 투자가 확대되기 시작한 상황이라, 내실 없는 정부 과제용 기술 개발이 만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의 '2024년 양자기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까지 양자산업 공공부문 투자 규모는 중국이 153억 달러로 압도적 1위였다. 독일(52억 달러)과 영국(43억 달러), 미국(38억 달러)이 뒤를 이었고, 한국은 24억 달러로 5위였다.

전문가들은 기술가치 판단을 뒷받침할 지식재산권, 계약 프로그램, 인증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양자기술 정보 불균형을 이용한 투자 사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기술 관련 정보공개 의무를 확대하고, 기술 투자 사기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면서 투자자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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