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유명한 ‘동부의 페블비치’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 니클라우스·파머·다이가 힘을 합쳐 만든 걸작
미 PGA 투어의 시그니처 이벤트 중 하나인 RBC 헤리티지가 열리는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골프 코스다.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찰스 프레이저(Charles Fraser)는 챔피언십 대회를 개최할 코스를 대서양의 섬 위에 건설하고 싶어했다. 1968년 7월에 착공했으면서 1969년 11월에 대회를 개최하기로 PGA 투어와 덜컥 합의해 버렸다. 따라서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1년 5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완성된 코스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잭 니클라우스가 골프 설계로 돈을 번 최초의 코스다. 땅을 소유하고 있던 프레이저는 골프 코스에 명망가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했다. 당시 28세 나이에 이미 메이저 7승을 갖고 있었던 잭 니클라우스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니클라우스는 코스 설계를, 당시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피트 다이에게 맡겼다. 니클라우스가 다이를 추천하자 프레이저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하면서 놀랐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피트 다이가 설계를 책임지고 잭 니클라우스가 자문을 제공하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를 통해 골프 코스 설계에 입문한 니클라우스는 다이와 협업하면서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1973년에 골프코스 설계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다이는 하버타운을 발판삼아 명망있는 골프 코스 설계가로 자리잡았다. 이후 140개가 넘는 골프 코스를 설계했다.
다이는 당대의 대세 골프 코스 설계가였던 로버트 존스와 반대로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를 설계했다. 길다란 하나의 티잉구역보다는 작은 여러 개의 다양한 티잉구역을 만들었다. 좁은 페어웨이, 스코틀랜드 스타일의 작고 깊은 포트 벙커, 크지 않은 그린을 조성했다. 전장이 길지 않아도(설계 당시에는 6800야드) 변별력있는 코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장타보다는 정확성을 요구하는 코스로 설계되었다. 그 중심에는 짧지만 전략적으로 플레이해야 하는 13번(파4) 홀이 자리잡고 있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의 시그니처 홀인 13번 홀은 짧은 파4 홀이다. 약간 왼쪽으로 휘는 도그레그 홀로 373야드로 세팅되었다. 원 온이 안 되는 짧은 파4 홀로서는 으뜸으로 꼽히는 홀들 중 하나이다. 13번 홀의 티샷은 드라이버보다는 짧은 우드나 긴 아이언 클럽으로 해야 한다. 티잉구역과 페어웨이 양쪽은 나무들이 복도(corridor) 모양으로 늘어서서 시야를 좁힌다. 티샷은 페어웨이 왼쪽 230야드 지점에 조성된 벙커를 넘겨서 페어웨이 중앙에서 오른 쪽에 안착시키면 완벽하다. 이 지점에서는 시야의 방해없이 퍼팅그린을 공략할 수 있다.
13번 홀의 퍼팅그린은 부메랑 모양(T자 모양 혹은 자전거 안장 모양이라고도 부름)으로 조성되었다. 그린 전장은 27야드 밖에 안 된다. 부메랑의 손잡이 부분은 앞에서 12야드까지 좌우 폭이 10야드도 안 되어 핀이 이 부근에 설정되면 아주 어려운 홀이 된다. 그린 뒤 쪽은 좌우 폭이 20야드 정도는 되어서 다소 여유로운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13번 홀의 작은 그린을 공략할 때는 그린의 중앙을 노리게 된다. 그린 앞 쪽에 핀이 있더라도 두 번째 샷을 그린 중앙에서 뒤 쪽을 노려서 두 번의 퍼트로 홀 아웃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의 모든 퍼팅그린들이 그러하듯이, 13번 홀의 퍼팅그린도 작은데다가 빠르고 단단한 편이다. 퍼팅그린의 좌우 러프에 공이 잠기면 보기 가능성도 높아진다. 18홀 중 중간 이하의 난도를 기록하고 있다.
13번 홀의 퍼팅그린은 피트 다이의 아내 앨리스 다이의 작품이다. 어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소그래스 17번 홀의 아일랜드 그린처럼 앨리스 다이가 냅킨을 꺼내어 즉석에서 홀을 그렸다고 한다. 피트 다이는 저서 ‘나를 포트 벙커에 묻어라·Bury Me in a Pot Bunker’에서 소그래스 17번의 그린이나 하버타운 13번 홀의 그린이 앨리스 다이 작품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다. 다만 냅킨 위에 그렸다는 점은 서술하고 있지 않다. 코스 건설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마다 아내 앨리스 다이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곤 했다고 거듭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앨리스 다이는 여성 최초로 골프코스 설계가 협회(ASGCS)의 회장을 남편에 이어 역임한 바 있다. 걸출한 여걸로 골프계의 신망이 높았다.
13번 홀의 벙커도 앨리스 다이 작품이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의 등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18번 홀에 버금갈 정도로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의 상징적인 홀이 바로 13번 홀이다. 13번 홀의 벙커는 모래로 된 호수(lake of sand)처럼 퍼팅그린 앞 부근의 왼쪽부터 오른쪽까지를 둘러싸며 보호하고 있다. 아메바 모양(말발굽 모양이라고도 부름)으로 조성된 벙커에 빠지면 보기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벙커의 벽은 삼나무 각목으로 지탱되고 있어서 볼이 그 벽 가까이에 정지하면 2024 RBC 헤리티지 1라운드의 조단 스피스처럼 손목 부상을 각오해야 한다. 또한 벙커에 빠진 볼을 쳤는데 삼나무벽을 맞고 튕겨 다시 벙커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를 설계한 피트 다이는 “골프는 공평한 게임(a fair game)이 아니다. 내가 왜 골프 코스를 공평하게 만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정확한 각도로 요구되는 자리에 볼을 안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샷을 쳐야하는 코스다. 즉, 정확하지 않은 샷은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만들어진 코스다.
1969년 1회 대회 1라운드에서 39명의 선수가 80타 이상을 쳤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를 만들면서 20회 이상 현장을 방문하며 조언을 했던 니클라우스도 1회 대회에서는 한 번도 언더 파 스코어를 기록하지 못했다(71-71-71-75타로 6위 기록). 6800야드, 파71로 세팅된 짧은 코스였지만 자니치게 어렵다는 선수들 불만이 많았다. 이런 원성을 잠재운 선수가 바로 아널드 파머였다. 당시 40세의 파머가 1회 대회에서 유일한 언더 파 스코어(-1)를 기록하며 1년여 만에 우승했다. 니클라우스가 만든 코스에서 최고 인기 스타였던 파머가 우승하면서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PGA 투어 개최 코스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50년 이상 같은 코스에서 PGA 투어 대회를 개최하는 코스 중 하나이다. 미국의 서부 해안, 태평양을 끼고 있는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는 1947년부터 PGA 투어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는 미국의 동부 해안 대서양을 끼고 있어서 동부의 페블비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개발자 프레이저의 혜안, 잭 니클라우스와 피트 다이의 합작, 아놀드 파머의 우승이 기여한 바 크다. 더불어 앨리스 다이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만든 13번 홀의 그린과 벙커도 빼놓을 수 없는 하버타운 골프 링크스의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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