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MZ세대, ‘한국군 학살’을 말하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경험한 피해자가 그 트라우마 때문에 한국 사람이 보이면 몸이 벌벌 떨린다며 울었다. 어떻게 이런 걸 모르고 살았나 하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한국학을 전공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직장에 다니며 11년째 한국에 사는 바오이옌(34)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옌은 호찌민대 한국학과 3학년 때 한국의 시민단체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의 ‘진료단’에 참가했다가 처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 한국 의사들이 중부지방에 가서 주민을 치료할 때 통역을 했다. 그 프로그램 중 하나로 피해자들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듣고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참배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사죄와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고자 2016년 9월 창립한 ‘한베평화재단’이 2025년 4월11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베트남’을 주제로 수다모임 ‘옥수수다’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옌과 티옌응우옛(24·서강대 석사과정), 하이미(23·서강대) 등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 명의 베트남 젊은이가 베트남과 한국 문화, 그리고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등 전쟁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출신인 미는 “할머니의 아버지가 미국과 전쟁할 때 중부지역에서 희생됐다. 아버지 없이 엄마와 외롭게 산 할머니는 국가보훈대상자로 장학금을 받아 외국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 내게 많은 응원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호찌민과 인접한 동나이성 출신의 이옌은 “남부에서 태어나 가족 중 삼촌 두 분이 남베트남군이었다. 한 분은 베트남전에서 다리를 잃었다. 우리 세대는 전쟁을 책으로 배웠고, 베트남 역사 속에서 미국·중국 등에 침략을 당해 수많은 전쟁을 겪었음을 들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청룡부대가 상륙했던 다낭 출신 응우옛은 “초등학교 때 평화기행으로 꽝남성에 가서 전쟁과 학살 관련 사진을 봤다. 나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비참하게 희생된 모습을 보며 엄청 무서웠다”고 기억했다. 꽝남성 하미마을과 퐁니·퐁넛 등 한국군의 학살이 자행된 곳도 다낭 근처다.
이들이 전쟁과 학살에 대해 말하는 동안 벽면 스크린에는 꽝응아이성 빈호아마을 학살 피해자와 주민들이 세운 ‘증오비’ 사진이 띄워졌다. 1966년 12월 이 마을에선 나흘 동안 여성 268명, 어린이 108명 등 430명이 한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보통 위령비가 학살 현장에 세워진 것과 달리 이 증오비는 참상을 널리 알리려 마을 들머리에 세워졌다.
피해가 집중된 중부지역 출신으로 피해자와 유족들을 많이 접한 응우옛에게 한국 사람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물었다. 응우옛은 “미국과 중국이 베트남을 침략해 엄청 잘못된 일을 벌였다. 사람들은 과거 일이니까 그 나라들과 교류하고 있고 미래를 향해 평화롭게 지내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만난 두 분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한국이 인정하고 사과하면 용서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사법부가 1·2심에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배상을 판결한 응우옌티탄 재판을 예로 들며 “끝까지 좋은 결과가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1968년 당시 8살이었던 응우옌티탄은 꽝남성 퐁니마을에서 한국군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쏜 총에 가족 5명을 잃고 자신도 복부에 심각한 총상을 입었다. 그는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2025년 1월17일 항소심에서도 승소했지만 한국 정부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54개 민족이 한데 어울려 살아 ‘다문화’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베트남 전후세대 청년들은 한국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미는 2024년 12월3일 밤 베트남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계엄 선포 뒤 한국군이 국회에 진입한 장면을 본 부모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고 물었지만 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무서웠다. 인생에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 일어나서 뭔지도 모르겠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며 그날 상황을 돌아봤다. 그는 이어 “베트남 사람들은 길에서 군 탱크를 보면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 탱크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어서 거부감 없이 그냥 재미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군이 민간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일, 그로 인한 두려움과 트라우마…. 이 땅에 사는 청년들이 국적과 관계없이 새롭게 공유한 전쟁 공포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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