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플레이·시네마틱오페라…대중의 문턱 넘는 오페라 시장

박정선 2025. 4. 1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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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메러디스' '세미야의 이발사' 등 장르융합 공연 잇따라

오페라는 오랜 역사와 예술성을 겸비한 무대 예술이지만,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낮은 장르로 인식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오페라 시장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기 위한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장르의 융합’이다.

서울시오페라단 '파우스트'에 출연한 배우 정동환 ⓒ세종문화회관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아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공연한 서울시오페라단 ‘파우스트’는 샤를 구노가 괴테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1859년 완성한 작품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기존 오페라에 연극을 결합한 ‘오플레이’ 형식으로 작품을 올렸다. 30주년 무대에 올린 후 10년만의 재공연이다.

2020년 1인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무대에 올린 바 있는 원로 배우 정동환을 노년의 파우스트로 투입시켜 1막 파우스트의 독백 및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대화에서 레치타티보(대화 부분을 간소한 반주와 함께 음악적으로 처리하는 것)를 줄이고 정동환이 대사로 연기한다.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해 오페라가 다양한 관객층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연극과의 결합은 오페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이며,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실험”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4일부터 오픈런 형식으로 인터파크 유니플렉스에서 공연하고 있는 ‘세비야의 이발사’도 ‘오페라 연극’이라는 장르를 내세우고 있다. 앞서 2023년 성남아트리움에서 첫선을 보인 후 2024년 부산 영화의전당, 성남 아트센터에서 공연되며 큰 호평을 얻었다. 작품은 조아키노 로시니의 대표적인 코믹 오페라를 기존 오페라와 달리 한국어로 번안된 대사, 뮤지컬 배우들이 함께 출연해 연극적 요소를 강화한 점이 특징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정원 60명의 화물선에 1만4000명의 피란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야기도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의 장르는 영화적 리얼리즘과 오페라, 연극적 표현이 결합된 ‘시네마틱 오페라’로 정의됐다. 배우 박호산이 외신기자이자 한 가족의 가장인 윤봉식으로 출연해 노래가 아닌, 대사를 통해 연기적 부분을 담당한다. 또 라루 선장 역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과 ‘스윙 데이즈’. 드라마 ‘스토브리그’와 ‘펜트하우스’ 등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하도권이 캐스팅 돼 첫 오페라 도전에 나선다.

ⓒ비다엠엔터테인먼트, 오픈씨어터

이들 공연은 ‘오플레이’ ‘오페라 연극’ ‘시네마틱 오페라’ 등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오페라’와 ‘연극’ 혹은 ‘영화’ 등의 핵심 요소를 융합해 시너지를 낸다는 공통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즉, 오페라의 정수로 불리는 아리아와 음악을 유지하면서도, 연극적 대사와 연기, 극적 구성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스토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감정적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메러디스’ 이용주 작곡가는 “대중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표현들이 오페라 속에서 연출된다. 오페라를 감상할 때 대중들이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관객이 집중만 하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혜경 연출가도 “‘심청’ ‘춘향’ 등이 서양 무용인 발레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오페라도 하나의 장르일 뿐 어느 나라 언어라도 접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음악적 요소 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장르 융합 전략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연극 및 방송 배우들의 캐스팅이다. ‘파우스트’에서는 관록 있는 배우 정동환이, ‘메러디스’에서는 박호산, 하도권 등 연기력과 대중적 인기를 겸비한 배우들이 참여하여 공연 전부터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단순히 스타 마케팅을 넘어, 오페라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 기준 전체 공연 시장에서 서양음악(클래식)은 6% 안팎의 점유율을 보인다. 여기엔 사실상 기악 분야의 판매액이 크게 영향을 미쳤고, 성악 및 오페라의 점유율은 전체 공연 시장에서 불과 2%내외에 머문다. 오죽하면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24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 판매 현황’ 보고에서 서양음악(클래식)의 상위 10개 공연에 ‘라보엠’ ‘토스카’와 같은 오페라 작품 2건이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장르의 융합 시도는 기존 오페라 관객에게는 신선함을 제공하고, 오페라를 낯설게 느끼던 잠재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연극과의 결합, 그리고 이를 매개로 한 유명 배우들의 오페라 진출은 오페라가 더 이상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열린 예술 장르로 나아가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물론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오페라 고유의 예술성이나 정체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시도는 작품의 ‘정체성’을 잘 지킬 때 비로소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그렇지 못할 경우 연극과 오페라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완성도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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