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의 맛, 미국이라는 꿈
에드워드 리 지음
박아람 옮김
위즈덤하우스
윌리엄 포크너의 중편소설 『곰』에는 “신이 미국을 만든 것은 인간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자랑스러워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노예제와 내전으로 파괴된 미국, 특히 남부의 현실은 그 기회를 철저히 망친 모습에 가까웠다. 구대륙과 달라야 했던 미국은 결국 다르게 되지 못했고 더 낫지도 않았다. 포크너가 보기에 인간은, 또는 미국은 아까운 기회를 써버렸다. 적어도 미국 본래의 이상에 비추어보면 말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비관주의와 무관하게 이 “두 번째 기회로서의 미국”이라는 이념은 전혀 소멸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이민자들의 물결은 지금도 넘친다. 미국의 꿈은 기이하게도 외국인들이, 특히 바닥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할 각오가 된 이민자들이 지탱하는 것 같다.
뉴욕에 식당을 열었는데 9·11 테러를 만났다. 그는 연고도 없는 남부로 갔고, 그곳 요리에 매료되었고 켄터키주에서 식당 주인이 되었다. 그곳 여성과 결혼도 했다. ‘출생지로는 브루클린인, 핏줄로는 한국인, 본인의 선택으로는 남부인’이 된 것이다. 그 사이에 세 권의 책을 쓰고 미국 TV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리다가, 2024년 ‘흑백요리사’ 출연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졌다.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2018년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 『스모크&피클스』가 미국 남부 요리법에 관한 것이고, 세 번째 책 『버번 랜드』는 켄터키 위스키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은 이민자 식당을 탐험하는 내용이다. 미국 전역을 돌며 캄보디아, 페루, 모로코, 스웨덴,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차려내는 음식을 맛보고, 홀과 주방의 모습을 관찰한다. 그리고 주인장의 얘기를 듣는다. “훌륭한 요리를 발견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알아보는 일이 내겐 더 흥미롭다.”
각 장 끝에 레시피가 나온다. 사진은 실려 있지 않다. 저자는 사진이 없을 때 더 자유롭고 요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어판은 요리 사진이 없는 김에 아예 흑백으로 가기로 했는지, 원서의 저자 사진도 흑백으로 바꾸었고 본문 바탕에는 회색 톤을 살짝 깔아 놓았다.
왜 이민자 요리를 탐구하는가? 거기에는 “내가 요리에서 찾는 요소들, 즉 단순함과 융통성, 절약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무엇을 찾아다니고 있는지 독자도 알고, 본인도 안다. 이것은 세계 음식 기행이 아니다. 다른 전통에서 온 낯선 음식과 식당을 보면서, 미국은 자신이 이민자의 나라임을 깨닫고 있을까?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하는 땅이라는 자신의 이념을 기억하고 있을까? 즉 저자는 자신이 정말 미국인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다. 소년 시절 한 클럽에서 그는 생각했다. 여기는 진짜가 아냐. 나 같은 사람을 들여보냈잖아.
서먹했던 아버지의 임종을 하는 장면이 책에 나온다. 드라마틱한 감정 폭발 없이 담담하게 묘사되다가 예상 못 한 곳에서 갑자기 끝난다. 여기에 쓰지 않겠지만 중간에 너무나 현실적으로 코믹한 대사도 나온다. 확실히 저자는 요리를 택하지 않았다면 문학가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요리를 택했을까? 이런 의문도 이 책을 읽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면 저자가 곳곳에 남긴 단서가 보인다.
앨라배마의 한국 식당 주인에게 저자는 묻는다. 자녀들도 한국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 줄 아나요. 주인은 대답한다. 그건 아니지만 괜찮다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에 왔으니 아이들에게는 이 기회를 맘껏 누리게 해주고 싶다고. 그 계산은 결국 맞을까. 하지만 묻지 않는다. “우리 어머니와 똑같다. 더 물어볼 필요가 없다.” 저자는 쓴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까.”
김영준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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