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숨길 일 아니다, 낳아준 부모 따로 있다고 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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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인식 개선 앞장, 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
“예전엔 이 건물에서 수업을 받았어요. 한글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었죠. 한때는 700명 넘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함께 살았으니 작은 학교나 다름없었어요. 그중 50여 명은 저처럼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었고요.”
지난 13일 경기도 고양시 홀트일산복지타운 기념관에서 만난 스티브 모리슨(69)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가 60여 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 앓던 병으로 한쪽 다리가 굽은 그는 여섯 살 때 보육원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걸을 순 있게 됐지만 다리를 저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장애가 있는 그를 입양하겠다는 양부모는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8년간 보육원을 전전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양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없이 배웅하는 것뿐이었다. ‘내게도 가족을 보내 달라’던 간절한 소원이 이뤄진 건 1970년 14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서였다. 그렇게 극적으로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그는 ‘최석춘’이란 이름이 아닌 ‘스티브 모리슨’으로 살게 됐다.
공부를 곧잘 했던 그는 퍼듀대 우주항공과를 졸업한 뒤 미 항공우주국(NASA) 위성항법시스템(GPS) 개발 분야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등 42년간 우주산업 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는 “부유하진 않았지만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학비를 지원해준 아버지 덕분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며 “입양을 통해 기회를 얻고 꿈을 이뤘지만 끝내 입양 가정을 찾지 못한 친구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취직 후 월급의 일정액을 꾸준히 후원하자 홀트아동복지회 미국지부에서 그에게 이사 자리를 제안해 왔다.
그렇게 그는 홀트 보육원생으로 한국을 떠난 지 13년 만인 1983년 이사가 돼서 다시 돌아왔다. 이후 1999년 미국 내 한인 입양 가족 모임을 만든 데 이어 그해 11월엔 사재를 털어 한국입양홍보회(MPAK)를 설립했다. 그는 “음지에 머물러 있던 한국의 입양 문화를 양지로 끌어내고 싶었다”며 “현재 한국 28개 지부, 미국 6개 지부에서 2000여 가정이 참여해 활동 중”이라고 소개했다.
Q : 공개 입양을 강조하고 있는데.
A : “입양을 숨기면 자칫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양이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인식 말이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특히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에게 ‘왜 속였느냐’며 반감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성인이 돼 입양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그는 “그런 이유로 우리 홍보회원들은 모두 공개 입양을 원칙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정기적으로 부모 교육도 받고 아이들과 모임도 갖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너를 낳아준 부모가 따로 있다’고 알려준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궁금해하면 시기에 맞게 알려주면 된다. 홍보회 설립 초기에 입양된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됐는데, 대개의 자녀들이 그러하듯 대부분 부모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한다.”
Q : 다섯 자녀 중 두 자녀는 입양했다.
A : “입양은 내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아이들에게 늘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첫째 아들은 세 살 때, 둘째 아들은 열네 살 때 입양했다. 첫째는 어려서 저항이 없었는데 사춘기에 데려온 둘째는 처음엔 좀 골치가 아팠다. 보육원에 살면서 양부모에 대한 환상을 키웠는데, 미국으로 간다기에 내심 부유한 가정을 기대했다더라(웃음). 막상 우리 집에 와보니 아주 평범한 중산층인 걸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나도 같은 나이에 미국에 왔지만 그때는 먹고 입을 걱정을 안 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는데…. 격세지감을 느꼈다.”
Q : 적응 과정이 쉽진 않았을 듯싶은데.
A : “둘째가 한창 말썽을 부릴 때 저희 딸이 그러더라. ‘아빠, 그래도 동생을 사랑해요?’라고. ‘물론’이라고 답했다. 사랑은 곧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사랑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변화할 거라고 믿었다. 질풍노도를 겪은 아들이 5년 뒤 일리노이주립대에 합격했다. 본인이 스스로 진로를 정해 꿈을 실현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기숙사로 데려다주던 날, 차 안에서 아들이 나와 아내에게 ‘이렇게 큰 사랑과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정말로 감격스러웠다. 나 또한 50여 년 전 내 양부모에게 똑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수치로 양부모 심사하는 국내법 의문
그는 홍보회 설립 초기 “더는 해외 입양을 보낼 아이들이 없을 때까지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공개 입양이 활성화되고 입양 가정에 대한 편견이 줄어 더 많은 아이가 한국 내에서 좋은 가정을 찾길 바라서였다. “2007년 국내 입양 비율이 해외 입양을 역전했을 때만 해도 희망적이었죠. 그런데 입양되는 아이들이 느는 게 아니라 저출산 여파로 태어나는 아이들 수가 크게 줄어든 거였어요.”
Q :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A : “15년 전만 해도 1500건에 달했던 국내 입양이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후 절반으로 줄었다. 당시 성인이 된 해외 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았는데 출생 기록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았다. 정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생 정보를 강화한 게 문제가 됐다. 그 전엔 미혼모가 입양 기관을 찾아 친권 포기 각서를 쓰면 바로 입양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양특례법 이후 친생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입양을 보낼 수 없게 되면서 아이를 유기하거나 낙태하는 사례가 늘었다.”
Q : 양부모에 대한 심사가 강화된 건 아이 입장에선 좋은 일 아닌가.
A : “좋은 부모의 조건을 수치만으로 따질 순 없다. 연봉 5000만원 부모보다 연봉 2000만원 부모가 얼마든지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다. ‘정인이 사건’의 양부모도 조건만 따지면 거의 완벽했다. 양부모가 되는 요건을 너무 까다롭게 하면 자칫 아이들이 가정에서 자랄 기회를 앗아갈 수 있다. 아이 입장에선 시설에서 자라는 리스크가 훨씬 크다. 가정에서보다 더 많이 상처받고, 교육받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홍보회는 지난해부터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내 5개 보육원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멘토가 될 과외 교사를 채용해 아이들을 일대일로 가르칠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전국 보육원을 다니며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낮다는 것이었다”며 “교육받지 못해 자립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제가 보육원에서 지낼 때 ‘수포자’였거든요. 기초가 부족한데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해도 해도 안 되더라고요. 일반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만 보육원에선 ‘온전한 내 것’이란 게 없어요. 그런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믿고 지켜봐 줘도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그래서 결심했죠. 모든 아이의 부모가 돼줄 순 없지만, 좋은 어른은 되어주고 싶다고요.”
■ 입양아 수 작년 사상 최저…정부, 7월부터 공적입양 체계 시행
입양 기관 관계자들은 이 같은 감소세의 배경으로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을 꼽고 있다. 개정법은 친생모가 아이를 입양 시설에 맡기기 전 출생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친생모 입장에선 출생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입양을 선택한 친생 부모의 81%는 미혼 상태로 출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신고제가 허가제로 전환되면서 양부모 심사 조건 또한 한층 까다로워졌다.
이에 더해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등 저출산 기조가 오랫동안 이어진 데다 2020년엔 양모가 생후 16개월 된 입양 아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것도 입양이 줄어드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당장 지난해 공적 입양 체계 도입이 예고된 뒤 입양 감소 추세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입양 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입양을 주도해온 민간단체들 업무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입양 신청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보육시설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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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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