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 떠났지만, 내년 봄배구 주연은 정관장”
“선수 시절에 그렇게 우승을 많이 해도 눈물이 나지 않던데, 인생 참 모르겠네요.”
딸을 머나먼 타국으로 유학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이었을까. 사령탑은 출국장으로 향하는 외국인 제자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선수는 그런 감독에게 “울지 마세요”라며 다독였다.
한 시즌을 마감한 프로배구 여자부 정관장 고희진(45) 감독을 지난 16일 만났다.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2승3패로 아쉽게 준우승한 그는 “쓰린 속을 달래느라 힘들다”며 웃은 뒤 “정말 치열한 승부 아니었나. 챔피언결정전다웠기에 (졌지만) 가슴이 후련했다. 빨리 선수 영입을 마치고 제대로 푹 쉬고 싶다”고 했다.
정관장의 봄 배구는 눈물의 드라마였다. 허리가 좋지 않은 리베로 노란은 현대건설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 도중 극심한 통증에 눈물을 흘렸다. 세터 염혜선은 이 경기를 힘겹게 이긴 뒤 감격의 울음을 터뜨렸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아포짓 스파이커 메가는 벼랑 끝에서 치른 4차전을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로 장식한 뒤 눈시울을 붉혔다. 투혼을 발휘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고희진 감독도 팬들 몰래 몇 번이고 눈물을 훔쳤다.
삼성화재 선수 시절 숱하게 우승을 맛봤지만, 고 감독이 사령탑으로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관장으로선 13년 만의 챔피언결정전이었다. 어렵게 올라온 만큼 제대로 싸워보고 싶었다”고 언급한 그는 “하지만 아픈 선수들이 워낙 많았다. 주위에서 모두 흥국생명의 우위를 점쳐 분위기도 가라앉았다”고 했다. 이어 “1차전과 2차전을 먼저 내준 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딱 한 경기만 잡자’는 각오로 3차전을 이겼고, 같은 마음으로 4차전까지 가져왔다. 모든 게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 덕분이다. 그래서 그간 흘린 눈물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덧붙였다.
정관장의 봄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단연 ‘인도네시아 특급’ 메가다. 챔피언결정전 5경기에서 평균 30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 비록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진 못 했어도 ‘배구 여제’ 김연경에 맞서 만만찮은 존재감을 뽐냈다. 이별 과정도 아름다웠다. V리그를 떠나기로 결정한 메가는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는데 직접 배웅 나간 고희진 감독이 눈물을 펑펑 흘려 큰 화제가 됐다.
고 감독은 “누군가가 소감을 물었는데, 그 순간 메가와의 첫 만남부터 챔피언결정전 준우승까지 지난 2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감정이 확 올라왔다. 그 정도로 서로 애틋했다”면서 “메가가 ‘울지 마세요(Don’t cry)’라며 나를 달랬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다시 만나 함께 우승을 일궈보자는 약속을 나눴다”고 했다.
모든 것을 쏟아낸 정관장은 새출발에 가까운 각오로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다. 메가의 빈자리는 지난 2년간 현대건설에서 뛴 아웃사이드 히터 위파위가 대신한다. 부키리치의 공백은 5월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을 통해 메울 예정이다. 내부적으로는 FA 자격을 얻은 아웃사이드 히터 표승주를 잡아야 한다. 고 감독은 “정관장의 배구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면서 “챔피언결정전에서 느낀 긴장감과 설렘이 여전하다. 남은 기간 잘 정비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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