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놓고 ‘윤’ 지키려다 ‘자멸’ 꼴을 못 면한다

한겨레21 2025. 4. 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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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윤석열 집사’ 지명…국민의힘은 아직도 ‘윤석열 식민지’
이완규 법제처장이 2025년 4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석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피청구인 윤석열’은 파면됐다. 이 당연한 결말을 내는 데 다들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이제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제안할 때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두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하면서, 아직 헌정 유린 사태는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됐다. 역시, 한국 사회는 한 치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한덕수, 위헌적·자의적 ‘월권’

한덕수 권한대행의 행위는 위헌적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소극적 권한 행사만 가능하다는 게 헌법학계 다수의 해석이다. 그런 면에서 한덕수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월권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이런저런 논리를 유포하고 있다.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과 후의 권한 행사 범위는 다를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스탠스의 헌법 전문가들조차 이런 해석은 자의적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파면됐다면 그 이후 권한대행의 역할은 대선 관리에 그쳐야 하기에, 파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권한 행사는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리해서 임명을 강행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중 한 명이 이완규 법제처장이라는 사실은 일이 이렇게 된 배경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전 대통령 윤석열의 법률적 집사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인 2024년 12월4일 밤 이른바 ‘안가 회동’에 참여한 당사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회동에 참여한 이들은 저녁 식사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안가를 바(Bar)로 개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있었지만, 어쨌든 안가는 식당이 아니다. 윤석열의 관여 없이는 이용이 어렵다.

이날은 윤석열 입장에선 인생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 실패한 다음날이다. 정권의 법률 전문가들을 모아 식사나 하도록 했을 리가 없다. 이완규 법제처장이 이 시기 이후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그래서다. 증거인멸 등의 뒷수습에 관여했던 것이 아닌가? 실제 그는 이런 의혹의 대상이 돼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이런 인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전례가 있는가?

보도에 따르면 이완규 법제처장은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 체제에서 여러 중요한 법률적 조언을 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완규 법제처장은 권한대행들에게 위헌적 행위를 할 것을 제안해온 셈이 된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헌정을 수호할 의지가 전혀 없는 인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다.

이완규, 계엄 선포 다음날 ‘안가 회동’

이런 무리수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일까? 대통령 선거는 2025년 6월3일 치른다. 차기 대통령 임기 만료 전에 교체 대상이 되는 재판관으로는 정형식·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이 있다. 보수 진영 입장에서 볼 때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을 한덕수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을 경우 최대 5명이 ‘상대 진영’ 재판관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계산했을 수 있다. 이런 계산이 합리적인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왜 하필 부적격자인 이완규 법제처장인가? 보도로는 한덕수 권한대행은 자신에 대한 탄핵 기각 직후 이미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 필요성을 주변에 주장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조짐은 이미 있었다. 2025년 3월 말, 더불어민주당이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에 문제 제기를 계속하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을 추진하면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 임명 문제를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탄핵과 헌법재판관 후임 임명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시기 윤석열, 한덕수 권한대행, 국민의힘 지도부 사이에 헌법재판관 후임 임명과 관련한 모종의 논의와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이완규 헌법재판관 후보자’라는 아이디어는 윤석열로부터 왔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됐고, 그것만으로도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 인식에 힘이 실리게 됐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선을 치러야 하는 국민의힘은 이제라도 윤석열과 명확히 선을 긋고 유권자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여전히 윤석열의 식민지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윤석열이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식의 의지를 불태우며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지지층을 겨냥한 편향된 메시지를 내놓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을 불러 담소를 나눈 건 그런 신호다.

국민의힘의 이상한 상태는 개헌에 대해 주장한 바에서도 드러난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월7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며 “제왕적 국회의 출현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제왕적 국회’라고 부르는 상황은 국민의힘이 선거에 크게 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국회 고유의 권한이 과도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제왕적 국회’ 주장은 필연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1987년 체제의 극복이나 분권 논의와 맞지 않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심지어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을 부여하는 방안까지 검토한다고 하는데, 이는 내각제에서 의회의 총리 불신임권에 대응할 수 있도록 총리에게 부여하는 권한이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 의문인 것은 국민의힘은 정권을 잃을 확률이 높은데도, 다음 대통령의 권한을 사실상 강화하자는 주장에 꽂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여전히 ‘윤석열은 억울하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의 전횡에 당했다’는 주장의 잔상이 남아 있기 때문 아닌가?

‘윤석열 동맹’이 87 체제 수호하는 역설

이렇게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한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윤석열은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심판의 모든 과정에 헌법과 법률을 자의적으로 비틀어 해석했다. 한덕수 권한대행도, 이완규 법제처장도 법에 쓰여 있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법을 자기편에 유리한 대로 해석해 써먹는 데 익숙해 보인다.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윤석열 동맹’이 한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이들이 지키려는 것은 자신들이 이런 식으로 헌정을 유린해도 되는 체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그러니 ‘윤석열 동맹’에 반대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헌정을 수호하자는 깃발 아래 모일 수밖에 없다. 이런 구도 속에서 1987년 체제의 한계를 말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가 된다. ‘윤석열 동맹’이 1987년 체제의 산소호흡기가 된 셈인데, 이것도 역설이라면 역설일까.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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