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우의 스톡피시] 계엄으로 날린 4개월, 청구서가 날아온다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5. 4. 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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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비상계엄 후 지금까지
추정 경제손실 100조원 넘어
탄핵 사태 책임있는 정치인에
비용 청구할 방법 있었으면

경제는 정치보다 속도가 좀 느리다. 그 대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부터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이르기까지 지난 넉 달 동안 우리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었다.

대통령 파면으로 정치적 해법의 실마리는 찾았다. 반면 탄핵사태로 인한 '경제 청구서'는 지금부터 날아온다. 우리가 치를 비용은 얼마나 될까.

탄핵사태 기간 중 우리 경제는 쪼그라들었다. 미래가 불안하고 불확실하면 개인은 소비를,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면 생산이 줄어들고 성장률은 추락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월 들어 우리나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6%포인트 떨어뜨렸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전망치를 0.8%포인트 줄여 하락 폭이 더 클 것으로 봤다. 계엄 전에는 성장률이 1.7~2.0%로 예상됐지만 탄핵사태를 겪으면서 1%도 안 될 것으로 보는 기관들이 늘고 있다. 하락 폭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보다도 훨씬 크다.

통화 가치도 급락했다. 달러당 원화값은 계엄 직전 1400원에서 4월 6일에는 1461원을 기록하며 4.1%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일본(2.7%), 유럽(4.7%), 영국(3%) 등은 통화 가치가 올랐다. 달러인덱스로 계산한 미국 달러 가치는 3.3% 떨어졌다. 달러값이 하락하면 다른 나라 통화 가치가 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원화는 유독 반대로 움직였다.

한국의 통화 가치 하락률은 아시아 국가인 대만(-1.6%), 베트남(-1.8%), 인도(-0.8%)보다도 훨씬 높다. 우리나라의 연간 GDP는 2300조원 정도다. 탄핵사태로 성장률과 통화 가치가 떨어진 것을 감안해 평가한 경제손실은 100조원이 넘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발생한 손실도 청구서에 포함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한미 간 정상 외교는 실종됐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대행이든, '대행의 대행'이든 그 누구도 트럼프와 직접 소통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 정상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트럼프와 만나고 통화한 것과 대조된다. 그 대가는 가혹할 정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책 청사진을 내놓는 가장 중요한 자리인 의회 연설에서 '한국의 관세율은 미국의 4배'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미국에 관세를 거의 물리지 않는다. 트럼프가 한국을 상대로 가짜뉴스까지 동원해 압박해도 우리의 경제·외교라인은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우방이자 동맹인 미국에 객관적인 사실조차 전달되지 않을 만큼 정부의 행정력은 형편없었다. 이는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 중 가장 높은 상호관세를 물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향후 주한미군 및 방위비 문제, 북한 핵문제 등 우리나라의 명운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패싱'이 발생할 것이라는 걱정이 커진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상실감,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의지의 퇴보, 불확실성에 따른 두려움 등으로 야기될 비용도 만만찮다. 모두가 앞으로 들이닥칠 청구서에 포함된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 사람들은 청구서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탄핵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사법적·정치적 책임을 질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막대한 경제적 비용은 탄핵사태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없는 국민들에게 떨어진다.

올 들어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부도 기업이 속출하면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지 예측조차 어렵다. 잘못된 정치로 발생한 '경제적 비용'을 문제를 야기한 정치인 또는 정치 세력이 지도록 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래야 정치가 정신을 차릴 것 같다.

[노영우 부국장·매경아카데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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