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대교 나오는 한국식 SF, 로봇이 된 남자의 고군분투
[이학후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찰 로봇, 정원사 로봇, 건설용 로봇 등 다양한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화된 근 미래. 로봇 생산 업체인 K-로봇 인더스트리의 신제품 발표 현장에서 로봇 '맥스'가 오류를 일으키며 인간을 공격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로봇 관리 대원인 한태평(박성영 목소리)은 오작동 중인 맥스를 제압하던 과정에서 상처를 입으며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후 한태평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폐기 직전인 맥스에 의식이 들어간 채로 깨어난다.
한편, K-로봇 인더스트리의 사장 딸인 나나(김연우 목소리)는 오류 로봇으로 인해 아빠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사고의 배후에 회사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삼촌 강민(이호산 목소리)의 음모가 도사린 걸 알게 된다. 한태평은 강민의 경호 로봇 엔젤(안영미 목소리)의 공격을 받던 나나를 구해 함께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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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스터 로봇> 스틸 컷 |
ⓒ 이대희애니메이션스튜디오 |
<파닥파닥>이 2D를 기반으로 성인 입맛에 맞는 블랙 코미디 영화를 표방하고 <스트레스 제로>가 3D를 활용한 액션 중심의 가족 영화로 대중성을 겨냥했다면 <미스터 로봇>은 이대희 감독의 이전 작품들보다 한층 커진 스케일과 기술적인 도전을 목표로 삼은 로봇 액션물이다. 그는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스크린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공감해 주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영화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미스터 로봇>의 시간적 배경은 2055년이다. 네온 불빛으로 물든 야경, 높이 솟은 빌딩 숲 사이의 어두운 골목, 인간과 로봇이 뒤섞인 영화 속 풍경은 사이버펑크의 대명사인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의 시각적 문법을 차용한 인상이다. 그러나 한국적인 색깔도 짙다. 이대희 감독은 부산을 배경 도시의 모티프로 삼아 30년 후 변화된 도시를 상상하며 제작했다고 한다. 극 중엔 한글 간판뿐 아니라 광안대교 모습과 지명이 언급되는 등 서구의 SF 영화와 다른 한국만의 고유한 도시 풍경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한태평은 오류 로봇에 의해 딸을 잃은 인물로 자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적개심을 가득한 태도로 로봇을 대한다. 로봇을 혐오하는 한태평이 도리어 로봇이 되어버리는 상황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런 전개 속엔 몇 편의 SF 장르 걸작들의 흔적이 아른거린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놓인 측면에선 <로보캅>(1987), 로봇을 혐오하던 한태평이 맥스의 몸으로 살며 점차 로봇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는 < 디스트릭트 9 >(2009) 혹은 <아바타>(2009)를 연상케 한다.
특히 <미스터 로봇>은 <로보캅>과 여러 DNA를 공유하고 있다. <미스터 로봇>에서 맥스의 몸으로 깨어난 한태평은 나나를 구하려는 과정 속에서 딸에 대한 죄책감을 이겨낸다. <로보캅>에서 머피(피터 웰러 분)는 로보캅으로 태어나 자신이 품었던 정의를 다시금 추구한다. 두 사람 모두 원치 않는 기계 신체를 받아들이고 삶의 새로운 목표를 찾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리고 한태평-맥스와 머피-로보캅이 모두 기술을 장악한 거대 기업과 대립한다는 공통분모도 나타난다.
차이점도 분명하다. <로보캅>이 디스토피아 세계 속에서 머피-로보캅의 복수를 빌려 사회 비판의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반면에 <미스터 로봇>은 한태평-맥스와 나나가 유대 관계를 통해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따뜻한 톤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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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스터 로봇> 스틸 컷 |
ⓒ 이대희애니메이션스튜디오 |
건설용 로봇인 맥스는 네일건, 망치, 드릴, 톱 등 공사 장비를 자유롭게 활용해 싸우고 스파이더맨처럼 건물 사이를 활주하며 거대한 바퀴를 이용해 거리를 질주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스케일로 꾸며진 박진감 넘치는 격투와 추격이다.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퇴마록>과 <미스터 로봇>의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 부드러운 움직임, 화려한 이펙트로 연출한 액션 장면을 보노라면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은 부족할지언정 액션만큼은 거액을 들인 해외 애니메이션에 견줄 수준에 올라섰다고 평가한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주로 어린이를 겨냥한 '전체 관람가'의 소재와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124만 명을 모은 <사랑의 하츄핑>(2024)이 대표적인 전체 관람가 작품이다. 그런데 올해 놀라운 사건이 터졌다. '12세 관람가'인 <퇴마록>이 50만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하며 한국에서도 성인을 타깃으로 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준 것이다.
어린이가 보기엔 내용과 분위기가 어둡고 다소 잔혹한 장면도 나오는 <미스터 로봇> 역시 12세 관람가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대희 감독의 전작 <파닥파닥>은 한국 애니메이션으론 드물게 성인 취향의 블랙 코미디와 메시지를 담은 12세 관람가 영화였지만, 1만 3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실험은 성공하며 12세 관람가 시장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 것인가? 결과는 관객의 응원에 달렸다. 4월 4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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