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銀 전·현직 직원들끼리 짜고, 7년간 785억 부당 대출

곽창렬 기자 2025. 3. 26. 00: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 넘은 은행들의 도덕 불감증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서 한 전직 직원이 현직 임직원들에게 골프 접대 등 향응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785억원에 달하는 부당 대출을 받은 사실이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적발됐다.

지난해 730억원에 달하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사건이 알려진 지 반년여 만에 또다시 은행권에서 700억원이 넘는 부당 대출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은행의 도덕 불감증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모임·골프 접대 동원한 785억원 대출 사기

25일 금감원에 따르면 기업은행에서 14년 동안 근무하다 퇴직한 전직 직원 A씨는 본인과 가족 등의 명의로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업은행 전현직 임직원이 참여하는 사모임 5곳에 가입하고, 입행 동기인 현직 간부 등 임직원들과 친분을 쌓았다. A씨는 이들에게 평소 골프 접대를 하고, 일부 직원의 배우자를 자신의 법인 직원으로 채용하는 식으로 금품도 줬다.

A씨는 이렇게 다진 인맥을 부당 대출받는 데 활용했다. 금감원 검사 결과, A씨는 자기 돈이 없는데도 토지를 사들이기 위해 지난 2018년 9~11월 허위 증빙 서류를 이용해 자신의 법인 명의로 약 64억원의 부당 대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의 아내이자 현직 기업은행 대출심사센터 직원인 B씨가 심사역으로 일하는 인천 지역 지점에사 대출 신청을 했다. 대출 신청을 받아든 B씨와 B씨의 동료들은 허위 증빙이 제출된 사실을 알면서도 대출을 승인해줬다.

또 A씨는 부동산 개발사와 함께 미분양 상가에 대한 부당 대출을 알선했다. 이 과정에서는 A씨는 자신의 입행 동기들이 지점장으로 있는 서울의 지점 세 곳에 대출 신청을 했다. 대출을 승인한 서울 지역 한 심사센터장도 A씨의 입행 동기였다. 그 대가로 A씨는 12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A씨는 2017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총 51건, 785억원의 부당 대출을 받았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금감원은 A씨를 비롯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직원들을 검찰에 통보했다.

그래픽=백형선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행 직원들은 금감원 검사를 방해하기 위해 문서와 사내 기록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검사 과정에서 당사자뿐 아니라 (기업)은행 차원의 은폐 시도가 있었다. 심각한 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도 넘은 ‘제 식구 감싸기 문화’

최근 국내 은행에서 수백억 원대의 금융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들이 우리은행에서 부당 대출을 받은 사실이 금감원 검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잇따른 은행 금융 사고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들의 제 식구 감싸기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있을 때 징계 기준을 대폭 완화했는데, 이로 인해 사고에 연루된 은행원 중 상당수가 경징계에 그쳤다는 것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끼리끼리 문화 탓에 제대로 된 징계가 없었다”며 “이번 기업은행이 사건을 은폐한 것도 제 식구 감싸기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금융 당국의 느슨해진 감독 지침이 사고를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 당국은 과거 은행별 종합 검사를 할 때 부당 대출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400조원에 이르는 대출 중 몇 개를 표본으로 뽑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그러다 2015년 ‘사사건건 금융사 경영에 관여하는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며 이 같은 방식을 폐지했다. 대신 은행 스스로 내부 통제를 잘하는지를 검사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이른바 ‘컨설팅’ 검사로 대체했다. 한 전직 금감원 고위 임원은 “그때부터 검사 기법도 무뎌지고, 은행들도 긴장이 풀어지면서 부당 대출을 감시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금융 당국 지침에 따라 올해 1월부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해 ‘책무 구조도(금융 사고 때 최고경영자 등 임원별 책임 등을 명확히 한 문서)’를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은행의 온정주의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감사는 “은행 구조상 사고를 낸 직원들이 서로 입을 맞추면 알기가 어렵다”며 “사전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철저히 예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