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자란 이유로 침묵해온 70년, 마침내 금기를 깨다

김상목 2025. 3. 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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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목소리들>

[김상목 기자]

 <목소리들> 스틸
ⓒ 미디어나무(주)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은 문학적 형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적 참사와 국가폭력 어둠이 짙게 드리운 탓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생각이 자연 떠오르는 '4.19'의 희생, 우리가 압축 성장 과정에 놓친 것들의 업보 같은 '4.16'의 기억이 쌓여 있다. 여기에 하나가 추가된다. '4.3'이다. 하지만 외딴 섬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학살은 30여 년 후 신군부의 음모로 고립된 광주의 5월처럼 참상의 규모와 비교하면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4.3을 처음 접한 건 1990년대 초 방영된 MBC 미니시리즈 <여명의 눈동자>였다. 중립적으로 간략하게 다뤘지만, 그곳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이후 검열 논란이 격하게 발생한 조성봉 감독의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를 겪었고, 제주 출신 오멸 감독의 <지슬>은 세상이 그래도 변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위주로 영상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절대량은 사건 규모와 파급력에 비해 미미했다.

한국 사회는 늘 그랬다. 언제나 가장 변방의, 소외된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나 몰라라 했다. 시대에 따라 양상은 변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제주는 중세부터 착취와 수난의 땅이다. 몽골 침략자에 넘겨져 거대한 목장이 되고, 반원 투쟁 과정에서 가장 거대한 희생을 불러온 목호의 난으로 쑥대밭이 된다. 조선 왕조의 공납에선 제주에서만 나는 귤과 해산물 공출에 허덕였다. 참다못해 귤나무를 베어도 처벌을 받았다. 구한말 외세와의 충돌에서도 '이재수의 난' 같은 갈등은 거듭된다. 그 정점은 7년 7개월 이어진 4.3 사건이다.

이제 몇 세대가 지나 과거의 상흔은 희미해졌을 것이라 쉽게 치부하는 육지 사람들의 속 편한 생각과 달리 제주에 드리운 4.3의 기억은 쉽게 지워질 성격이 아니다. 게다가 여전히 이 섬이 처한 변방의 만만한 희생양 성격은 하등 변한 게 없다. 동아시아 군사 대립의 갈등 핵심으로 떠오른 제주 해군기지 건립 갈등, 식민지처럼 몰려드는 부동산 난개발 등 여전히 제주도는 수난과 착취의 한복판에 있다. 오키나와가, 아일랜드가, 타이완이 그랬던 것처럼. 도돌이표 찍는 것처럼 이 '섬'들의 근현대 역사는 닮은꼴이다.

여성인권 잔혹사로 조명한 제주 4.3의 기억
 <목소리들> 스틸
ⓒ 미디어나무(주)
<목소리들>은 4.3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생존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런 접근법도 21세기 들어서 독립 다큐멘터리를 찾는 이들에겐 그리 낯선 건 아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국가폭력의 전모를 드러내는 데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증거물이 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방법론은 예전에 접한 작업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뭔가 조금 다르다. 이유가 뭘까?

증언에 나선 이들은 거의 대다수가 고령의 여성이다. 생존자라면 당연히 고령일 수밖에 없다. 이제 기본이 80·90대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다음이 포인트다. 왜 4.3 증언자는 거의 태반이 여성인 걸까? 우리는 정작 이 당연한 특징에 대해 별로 의문을 품지 않았다. 너무 당연하게만 받아들인 것이다. 듣고 보니 이상하네 하고 갸우뚱할 만하다. 물론 수많은 4.3 피해 남성이 <목소리들>에 등장한다. 단, 유해로서다.

최소 3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는 4.3 민간인 희생자 중 공식 조사서 상에 남녀 성비는 8:2 비율이다. 즉 학살로 인한 사망의 8할이 중장년 남자라는 뜻이다. 18-40세 연령대, 군경 통제 아래 해안 지대를 제외한 중산간 지역 제주 남성의 씨가 마를 지경으로 학살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전쟁 직후 제주의 성년 남녀 성비는 2:1에 치달을 정도로 극단적 불균형이 벌어졌다. 2차 세계대전으로 2천만 넘게 사망한 소련의 성비 불균형보다 훨씬 격심한 것이다. 그렇게 4.3은 대체 몇 명이나 죽었고 당시 제주 인구의 몇 할이 사라졌는지 위주로 각인돼 왔다.

<목소리들>은 방법론을 달리 삼았다. 4.3을 이야기할 때 숫자로 환산하는 희생자만이 피해 전부가 될 리 없다. 사망자는 물론, 실종자, 이산자, 영구장애를 입은 이들이 가득하다. 살아남았다고 해서 과연 온전하게 끔찍한 과거를 지우고 인간이 살 수 있을까?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20년 넘게 생존자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연구자의 발걸음을 뒤따른 카메라는 연구자가 발견한 어떤 단서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2할의 여성 희생자는 수치로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연구자의 조사 결과 묘한 점이 포착된다. 유독 젊은 여성의 희생 비율이 가파르다는 점이다. 남성도 청년층이 많이 죽임을 당했으니 그게 대수냐 하겠지만, 구체적인 증언을 조합하니 석연찮은 게 추가로 더 드러난다.

빨치산 가담을 막기 위해 즉결처분이 횡행하던 당시에 기이하게도 한 마을에서 붙잡혀도 남성은 곧바로 학살을 당했지만, 젊은 여성은 타 연령대 여성과도 다르게 일정 기간을 지나서 대게 처형당한 것이다. 그것도 개별이 아니라 늘 소집단으로 말이다.

물론 처음엔 심증에 불과했다. 그러나 끈덕지고 차분하게 생존 여성들과 대화를 진행한 연구자의 분투 덕분에 구체적 증언이 나오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당했던, 혹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봉인했던 이들의 '목소리'는 한 번 둑이 뚫리자 봇물 넘치듯 순식간에 '목소리들'의 파도로 휘몰아쳤다. 그 결과는 현대사에서 우리가 목격한 숱한 '제노사이드'의 총결산 같은 가공할 공포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꼭꼭 감춰온 사연
 <목소리들> 스틸
ⓒ 미디어나무(주)
1934년생 김은순은 토산리 '달빛 사건'의 웅일한 생존자다. 언니와 함께 군경 소집에 끌려갔지만 홀로 살아 돌아왔다. 동네 인물 고운 언니들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후로 김은순은 견디기 위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로 긴 세월을 살아도 산 게 아닌 목숨을 부지해 왔다. 결혼하고 자식도 낳았지만, 그의 삶은 늘 공허하고 약과 치료에 의해 간신히 정신줄 한 가닥 유지하는 데 그쳤다. 이걸 살아서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김은순은 구사일생으로 겨우 생존했으나 죄인이 됐다. 홀로 살았기에 언니에게 미안하고, 동네 자매들에게 면목이 없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원하지 않은 결혼을 했고, 자식들에게 전력을 다하지 못해 그 역시 미안하다. 정작 그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건만 김은순은 자신이 직접 듣고 본 참극의 무게를 나눌 엄두도 못내고 오직 자신만이 떠안은 채 질긴 생을 이어온 것이다

1942년생 김용일은 아버지가 도피자로 분류돼 연좌제에 모진 수난을 온 가족이 시달려야 했다. 멸시와 차별은 기본이지만, 여기에서 또 4.3의 어두운 면이 추가로 드러난다. 군경 편에 선 이웃과 (서북청년단 등) 외지인들은 부역자 가족이라 분류된 이들의 재산을 빼앗고 수탈을 감행했다. 그렇게 사실상 약탈이 일상에서 자행된 것이다. 그렇게 일족이 패가망신한 이들 vs. 학살극 와중에 한몫 단단히 챙긴 이들의 대립 구도가 형성된다. 물론 후자는 지금도 제주에서 유지로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와중에도 김용일 가족은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지만, 인간으로서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진압군은 자신들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 본보기를 보이고자 강제 소집에 뒤늦은 임산부를 주민 앞에서 총검으로 찔러 죽인 '비학동산 임산부 살해 사건'을 눈으로 목격하고 만 게다. 그런 참극을 보고 어찌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가족을 위해 김용일은 견뎠다. 잠가 놓듯 가슴 한구석에 봉인한 채로 말이다. 연구자 조정희의 마이크가 그에게 닿기 전까지는.

1932년생 고정자 역시 도피자 가족으로 몰린 탓에 할머니와 언니가 학살당하고 어린 동생들과 함께 남았다.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 찍힌 설움과 천대는 물론, 남은 가족 부양을 위해 공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일화에서 가해자 대 피해자의 이분법은 균열이 두드러진다. 자신도 표적이 될까 두렵고, 군경의 편이라는 과시를 위해, 혹은 알량한 우월감과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이웃들이 돌변한 것이다. 그런 삭힐 수 없는 한을 담담하게 토로하는 걸 보고 있자면 보살은 멀리 있지 않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개척한 새로운 단계
 <목소리들> 스틸
ⓒ 미디어나무(주)
<목소리들>이 재조명한 4.3은 민간인 학살 과정에서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념 및 인종청소의 거의 모든 사례가 망라된다. 즉슨, 우리가 규탄하고 분노하는 일본제국이나 나치독일, 세르비아계 군벌의 제노사이드와 4.3이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의미이다. 남의 반인륜범죄엔 단죄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우리가 벌인 죄악은 모르쇠와 합리화로 부정하는 꼴이다.

끔찍한 진실, 젊은 여성에 대한 집단적 강간과 입막음을 위한 학살, 죽이진 않더라도 마치 IS가 중동에서 저지른 것처럼 약탈혼 강제결혼 사례를 찾아보면 곳곳에서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튀어나온다. 그런 만행은 어느 하나 단죄된 바 없다. 제주의 상흔은 현재진행중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를 맨정신으로 관람하는 건 자기학대에 가까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다. 고단하고 가난한 삶이었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낸 생존 여성들의 삶의 의지는 무형의 '저항'으로 변환한다. 1931년생 홍순공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관광객의 시선에서 제주를 표상하는 이미지 중 하나, '해녀'로 억척같이 살아내며 온 가족을 건사한 그의 회고담과 함께 화면에 펼쳐진 제주 해녀들의 물질은 현대판 '이어도 신화'를 연상케 충분하다.

영화는 취지에 걸맞게 4.3에 맞춰 개봉을 잡았다. 마음 편히 택하기 힘든 소재, 다큐멘터리의 생소함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이들은 '4·3기억영화제'란 형태로 100개의 극장을 대기업 복합상영관의 선처를 기다리는 대신에 자력으로 꾸리고 작품의 의의를 극대화하려 기획 중이다. 여성 서사로 새롭게 전유한 <목소리들>은 우리가 외면해온 국가폭력의 본질에 도달하는 새로운 경로로 쓰임을 기다린다.
 <목소리들> 포스터
ⓒ 미디어나무(주)
[작품정보]

목소리들
VOICES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5.04.02. 개봉|89분|12세 관람가
감독 지혜원
프로듀서 김옥영
출연 김은순, 김용열, 고정자, 홍순공, 조정희
제작/공동배급 ㈜스토리온
배급 미디어나무(주)

2024 25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2024 21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관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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