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외교장관 16개월 만에 회담…‘트럼프 대응’ 결속 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본격화하자 한국·중국·일본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식 관세 전쟁 영향으로 국제질서가 흔들리자 동아시아 주요 3국 사이에 ‘기묘한 안정감’이 연출되고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한·중·일이 발빠르게 손을 맞잡는 모습은 지난 21∼22일 일본 도쿄에서 조태열 외교장관,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이 잇따라 개최한 양자, 3자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 장관은 22일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세 나라가 협력을 제도화하고, 각국 국민들이 체감하도록 일상과 연계된 사업에 초점을 맞춰 실질 협력을 심화해 나가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한·일·중 정상회의가 정례 개최돼 협력의 흐름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불법적 러·북 군사협력이 즉각 중단돼야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과정에 북한이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 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왕이 부장은 불안한 국제 정세를 언급하며 지역 정세 안정을 위해 세 나라간 협력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 국제 구도가 급변하고 세계 경제회복이 부진한 가운데 3국의 소통 강화, 신뢰 증진, 협력 심화를 통해 지역 평화와 발전에 더 많은 안정적 요소를 제공할 필요와 책임이 있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며 “역내 경제 통합을 추진하는 것에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와야 일본 외무상은 일본이 올해 개최를 추진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 “가능한 한 빠르고 적절한 시기에 개최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기로 의견 일치를 봤다”며 “북한과 관련해서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비핵화가 세 나라의 공통 목표인 만큼 이를 완전하게 이행하도록 긴밀히 소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은 지난 2023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1년4개월만에 한·중·일 외교장관들이 만나 통상적 협력 필요성 등을 확인했지만, 이들을 불러모은 것은 관세를 무기로 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중·일 세 나라가 각각 양자간 무역으로 단단히 묶인 상황에 미국이 보호주의를 전면에 내걸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결속 강화가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3일 “한·중·일이 서로 접근하는 배경에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 사회에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이 있다”고 풀이했다. 특히 중국 쪽은 미국의 ‘관세 전쟁’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한·미·일 결속을 느슨하게 만들고, 한·중·일 관계는 개선할 기회로 보고 있다. 실제 왕이 부장은 지난 22일 이와야 외무상과 만난 자리에서 “세계 경제 구도가 일국주의와 자국보호주의가 만연하면서 심각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며 사실상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공동 대응을 강조했다.
일본과 한국이 나란히 국내 정세에 어려움을 겪고, 미국과 동맹 문제에도 불안을 느끼면서 ‘중국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것도 세 나라의 결속 강화 요인으로 꼽힌다. 조태열 장관은 지난 21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중국은 한·일·중 협력이 미중 경쟁의 충격을 완화하고 한·미·일 협력과 균형을 맞추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한·일 양국이 중국과 대화와 협력을 통해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국 역할을 견인해 나가는 게 동맹국인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한·중·일 세 나라는 여러 현안에서 각각 갈등을 겪고 있다. 중·일 사이에는 센카쿠 열도(중국이름 다오위다오) 영토분쟁, 후쿠시마 제 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문제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왕이 부장은 이번 정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올해는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전쟁(2차 대전) 승리 80주년으로 역사를 점검하고 반성해 유익한 경험과 교훈을 받아들이는 해”라며 일본 정부를 자극할 만한 발언을 했다. 한·중 사이에도 중국의 서해 잠정조치수역 철골 구조물 무단 설치,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한한령’(한류 금지령)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세 나라가 트럼프 정부로부터 대미 무역흑자 축소 압력 등 동병상련을 겪으면서 협력의 필요성을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아사히신문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로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미국을 대신할 지도력을 보여주려는 중국을 한·일 두 나라는 경계하고 있다”며 “세 나라의 의도가 엇갈리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미묘한 ‘안정’이 연출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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