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훔쳐놓고’…윤 대통령 ‘체포 촉구’했던 시위자가 ‘STOP THE STEAL’ 외쳤다고?
북저암 출판사가 발간한 <혁명과 반혁명>(장영관 저)이 이정헌 작가(49)가 그린 그림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일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의 천승훈 비서관(29)은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한 권의 책 표지 사진과 함께 “국회도서관에서 제 그림이 윤석열 책에 쓰인 걸 봤다. 너무 불쾌하다. 진짜 스틸(steal)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추라)”이라고 썼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 작가의 그림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이 작가는 천 비서관이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촉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은박 보온포를 두르고 밤샘 농성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혁명과 반혁명>의 주요 내용은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부정하는 ‘탄핵 반대’다. 교보문고의 도서 설명란에는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은 없다. 반국가 세력과 종합범죄자 이재명이 손을 잡고 자유민주 정부의 권력을 강탈하기 위한 반역이 있을 뿐이다”라고 적혀있다. 그 아래에는 “이 책의 인세는 전액 ‘대통령 국민변호인단’에 기부된다”고도 나와 있다.
천 비서관은 2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어제 오후쯤 갑자기 당원분에게 연락 와서 국회도서관에 이런 게 있다고 알게 됐다”며 “많은 시민이 공감했던 그림인데, 내가 왜 저 사람들(윤석열 지지자들)의 희망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남동에서 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운 모습을 그린 건데, 내란 세력들이 자기들의 철학으로 이것을 쓴다는 게 불쾌하고 혐오스럽다”고 말했다.
이 작가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작가는 2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처음에는 그냥 전단인 줄 알았는데, ISBN(국제표준도서번호)도 받은 책이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시위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 윤석열을 칭송하는 데 사용되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원본 그림의 문구도 무단으로 변경했다. 원본 그림에는 그림 제목과 같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는데 이 도서의 뒤표지에는 그림과 함께 ‘한남동에서 그를 기다린다/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땅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차라리 얼어 죽는 길을 택하겠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 작가는 “제가 쓴 대사도 자기들 것으로 바꿨다”며 “제대로 만든 책이라면 정식으로 작가를 섭외해서 의미 있는 이미지를 써야지 이런 식으로 왜곡해서 쓰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도용은 그날 밤을 지새운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이런 식으로 그날 한남동 체포 촉구 집회에 나선 사람들의 마음이 오도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진보당과 이 만화가는 도서의 표지 무단 도용과 관련해 사과 요구와 함께 법적인 조치도 취할 예정이다. 이 만화가는 “진보당과 함께 공동으로 대응하자고 이야기를 했다”며 “변호사와 협의해서 차분히 대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북저암 출판사 대표라고 밝힌 장 작가는 22일 오전 기자와 통화하면서 “온라인에서 많이 떠돌아 다닌 그림을 탄핵 반대 집회쪽에서 쓰는 그림으로 착각했다”며 “고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해당 책에 대해서는 “오는 월요일(24일) 아침부터 전부 다 회수 후 폐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71536001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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