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훔쳐놓고’…윤 대통령 ‘체포 촉구’했던 시위자가 ‘STOP THE STEAL’ 외쳤다고?

오동욱·강한들 기자 2025. 3.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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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훈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수행비서관이 지난 20일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올린 <혁명과 반혁명> 앞뒤 표지. 천승훈 비서관 X 계정 갈무리

북저암 출판사가 발간한 <혁명과 반혁명>(장영관 저)이 이정헌 작가(49)가 그린 그림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일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의 천승훈 비서관(29)은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한 권의 책 표지 사진과 함께 “국회도서관에서 제 그림이 윤석열 책에 쓰인 걸 봤다. 너무 불쾌하다. 진짜 스틸(steal)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추라)”이라고 썼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 작가의 그림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이 작가는 천 비서관이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촉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은박 보온포를 두르고 밤샘 농성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혁명과 반혁명>의 주요 내용은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부정하는 ‘탄핵 반대’다. 교보문고의 도서 설명란에는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은 없다. 반국가 세력과 종합범죄자 이재명이 손을 잡고 자유민주 정부의 권력을 강탈하기 위한 반역이 있을 뿐이다”라고 적혀있다. 그 아래에는 “이 책의 인세는 전액 ‘대통령 국민변호인단’에 기부된다”고도 나와 있다.

천 비서관은 2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어제 오후쯤 갑자기 당원분에게 연락 와서 국회도서관에 이런 게 있다고 알게 됐다”며 “많은 시민이 공감했던 그림인데, 내가 왜 저 사람들(윤석열 지지자들)의 희망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남동에서 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운 모습을 그린 건데, 내란 세력들이 자기들의 철학으로 이것을 쓴다는 게 불쾌하고 혐오스럽다”고 말했다.

이정헌 만화가의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의 원본 그림. 지난 1월 천승훈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수행비서관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를 촉구하며 집회장에 있던 모습을 그렸다. 이정헌 만화가 제공

이 작가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작가는 2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처음에는 그냥 전단인 줄 알았는데, ISBN(국제표준도서번호)도 받은 책이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시위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 윤석열을 칭송하는 데 사용되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원본 그림의 문구도 무단으로 변경했다. 원본 그림에는 그림 제목과 같은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는데 이 도서의 뒤표지에는 그림과 함께 ‘한남동에서 그를 기다린다/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땅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차라리 얼어 죽는 길을 택하겠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 작가는 “제가 쓴 대사도 자기들 것으로 바꿨다”며 “제대로 만든 책이라면 정식으로 작가를 섭외해서 의미 있는 이미지를 써야지 이런 식으로 왜곡해서 쓰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도용은 그날 밤을 지새운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이런 식으로 그날 한남동 체포 촉구 집회에 나선 사람들의 마음이 오도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진보당과 이 만화가는 도서의 표지 무단 도용과 관련해 사과 요구와 함께 법적인 조치도 취할 예정이다. 이 만화가는 “진보당과 함께 공동으로 대응하자고 이야기를 했다”며 “변호사와 협의해서 차분히 대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북저암 출판사 대표라고 밝힌 장 작가는 22일 오전 기자와 통화하면서 “온라인에서 많이 떠돌아 다닌 그림을 탄핵 반대 집회쪽에서 쓰는 그림으로 착각했다”며 “고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해당 책에 대해서는 “오는 월요일(24일) 아침부터 전부 다 회수 후 폐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 “수고했어요. 고맙습니다”…온기와 용기로 버틴 관저 앞 3박4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71536001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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