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생이란 긴 게임서 진정한 챔피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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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경기에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거나 올림픽 대회에 크게 기여한 이들에게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한다.
위원회는 이 메달을 올림픽 최고의 상으로 여긴다.
언론에서도 이 메달의 수상 등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메달을 땄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해 9위를 기록하자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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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메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언론에서도 이 메달의 수상 등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메달을 “아무도 자랑하지 않는 메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은 올림픽 정신이 깃든 ‘승패보다는 참가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는 말에 대다수가 동의한다. 하지만 정작 운동 경기장은 물론 직장이나 교육, 비즈니스 현장 등에선 거의 모두가 승자와 패자, 성공과 실패에 집착한다. 신간 ‘롱 윈(The Long Win)’은 이런 현대인들에게 “승리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일깨우는 책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조정 은메달리스트이자 영국 외교부에서 외교관으로도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오래 지속되는 승리(롱 윈)”를 부르짖으며 “승리 집착과 승부욕이 도리어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영 케임브리지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자 등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진행하며, 세계적인 리더들에게 승리 문화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너는 챔피언이냐, 루저냐?” “넌 아직 부족해!”
저자가 올림픽 선수 시절에 매일 코치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는 늘 승부욕에 불타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받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메달을 땄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해 9위를 기록하자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4년 뒤 저자가 아테네 올림픽에 도전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의 실력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금메달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온전히 기뻐해도 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심지어 저자의 동료 중 한 명은 마치 “가족을 떠나보낸 것처럼” 슬퍼하기도 했다.
승부에 인생의 모든 걸 걸었던 경험. 이후 저자는 경쟁사회와 ‘승리 도취 문화’에 문제의식을 품게 됐다. 그리고 외교부에서 12년 동안 근무하며 승리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들도 있음을 깨달았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들, 테러 희생자, 기후 난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이 더 흥미로운 건, “승리를 향한 집착이 문화 속에 어떻게 깊이 침투해 있는지”를 짚은 후반부 대목이다. ‘성공 명언’이나 ‘부자 되는 법’ ‘승리 요정’ ‘압도적 승리’ 등과 승리에 관한 사회적 담론은 드라마나 일상 대화에서 단골 소재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영국과 미국에선 수많은 교사들이 경쟁에 치중한 교육 시스템에 지쳐 교단을 떠나고 있다. 예체능 수업은 갈수록 축소되고, 주요 과목들은 시험에 필요한 테크닉만이 중시된다. 한국의 교실 풍경은 이보다 더할 테니, 국내 독자들도 공감할 지점이 상당하다.
저자가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그 대신 △개인이 원하는 성공의 모습과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라 △쉽게 바뀌는 숫자와 당장의 결과에 목매지 마라 △결과가 어떻든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집중하라 등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한다.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에 비해 결론이 다소 교과서적이어서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승리라는 환상이 너무도 당연한 것인 양 도취돼 있는 현대인에게, 다른 시선의 화두를 던지는 측면만 따져봐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를 지닌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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