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시론] 편법 용인하는 재개발 사업, 이대로 괜찮을까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2025. 3. 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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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주식회사는 의사결정을 할 때 지분을 많이 가진 사람이 주도적인 결정권을 갖는다. 예를 들어 어떤 주주 한 사람이 80%의 지분율을 갖고 있다면 나머지 20%의 지분을 1000명이 나눠갖고 있더라도 의사 결정권은 80% 지분을 가진 그 한 사람이 모두 갖는다. 주식회사의 모든 결정은 재산권과 관련한 결정이므로 재산 지분이 많은 사람이 결정권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선거권은 다르다. 무조건 1인 1표다. 재산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 나라가 잘못될 경우 잃는 게 더 많으니, 또는 재산이 많은 사람은 세금도 더 많이 내므로 어떤 이유에서든 투표권을 더 많이 갖는 게 설득력이 전혀 없지는 않음에도 1인 1표의 원칙이 적용된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국방 등에서 동일한 의무를 가지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는 의무를 가지므로 재산권 뿐 아니라 생존권 또는 기본권의 권리 소유자들을 고르게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을 반영한 것이다.

ⓒ시사저널 최준필

그렇다면 아파트 단지나 동네를 모두 철거하고 아파트를 새로 지을 때는 어떻게 결정할까. 예를 들어 어떤 마을의 땅을 한 사람이 50%를 갖고 있고 나머지 50%의 땅을 50명이 나눠갖고 있다면 그 마을을 재개발할 때 의사결정권은 어떻게 배분될까. 이 경우는 독특하게도 1인 1표제의 개념과 주식회사의 지분제 원리를 적당히 섞어 놨다. 그리고 재개발 사업의 모든 잡음은 이런 모호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현행법상 재개발 사업의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전체 토지 50% 이상 지분권의 동의와 전체 토지 소유자 70% 이상의 동의가 모두 필요하다. 재개발 사업은 전적으로 재산권과 관련한 문제임에도 토지 지분의 99%가 동의하더라도 0.1%를 가진 여러 사람들이 머릿수로 뭉쳐 그 의견에 반대를 하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 구조다. 때문에 거의 모든 결정이 토지 지분율이 낮은 다수의 조합원들에게 유리하게 굴러간다. 그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개발 사업에서는 조합원의 기존 재산을 각각 평가해서 보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거기에 보너스가 하나 더 있다. 조합원에게는 아파트를 조합원 분양가로 싸게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또 주는데 그걸 나눠줄 때 토지 지분과 무관하게 무조건 1인당 1장씩 나눠준다. 이게 또 문제다.

그 분양권은 할인 분양권이므로 가치가 꽤 있다. 1장의 가치가 1억원이라면 5평의 지분을 가진 조합원이 그걸 한 장을 받을 때 10평 지분을 가진 조합원은 두 장을 받거나 한 장과 1억원을 받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냥 무조건 1인당 한 장 씩이다. 이렇게 되면 5평의 지분을 가진 조합원 2명이 받는 재산상 혜택이 10평의 지분을 가진 조합원 1명이 받는 재산상 혜택보다 훨씬 커진다.

재개발이 추진되는 동네에는 커다란 단독주택 한 채를 가진 사람이 재개발 소문을 듣고 그 집을 서둘러 철거한 후 5세대가 살 수 있는 다세대 주택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1명이 소유한 재산을  다섯으로 쪼개면 그 한 조각의 가치가 종전의 5분의 1이 아니라 3분의 1이나 2분의 1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런 지분 쪼개기가 성행하면서 재개발 사업에서 남는 이익을 나눠먹을 입이 많아지다보면 사업성이 안나오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면 그게 다 자업자득이다. 일단 쪼개면 재산 가치가 올라가는 마법이 합법적으로 가능한데 쪼개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재건축을 가로막는 쪼개기 편법은 그 쪼개는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쪼개면 가치가 올라가도록 만든 애초의 구조가 잘못됐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다. 

애초에 이런 구조를 만든 이유는 토지지분이 작은 조합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지만 인접한 큰 땅의 주인이 막무가내로 하자고 하면 끌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걱정된다면 반대하는 조합원의 보상을 현실화하면 된다. 지금은 오히려 조합원들이 무조건 1인 1장씩 할인 분양권을 나눠갖는 구조이기 때문에 재개발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은 할인 분양권을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재산권도 주거권도 침해당한다.

재개발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재산권과 관련한 의사결정임을 감안하면 철저하게 재산 지분 비율로 의사결정을 하고 사업의 결과물도 그 비율대로 나눠 갖는 게 합리적이다. 반대하는 주택 소유자든 찬성하는 조합원이든 그의 토지에서 나온 재개발 사업의 결과물을 토지 지분율 그대로 배분하면 그게 가장 합리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찬성률을 높이기 위해 찬성하는 조합원에게는 지분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반대하는 비조합원에게는 지분보다 적은 보상을 강제하면서 재개발 사업의 원칙을 흔들고 있고 그게 재개발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어떻게 고칠 지 생각을 깊이 해볼 문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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