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저수지로 물 부족과 물난리 한번에 해결한 마을

이돈삼 2025. 3. 21. 14: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골짝나라' 전남 곡성 흑석마을에 다녀오다

[이돈삼 기자]

 흑석마을 노거수 팽나무. 마을과 밭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 같다.
ⓒ 이돈삼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면입니다. 그중에서도 흑석은 정 많고 심성 고운 분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외지인들도 쉽게 받아들이고, 전혀 상업적이지 않은 곳이에요. 언제 찾아도 편안한 마을입니다."

지난 11일 찾은 전남 흑석마을. 거기서 만난 김하나 전남 곡성군 행정과 팀장의 말이다. 김 팀장은 6년 전 곡성군 입면에서 근무했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마음 편하게 해주는 흑석마을이라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담양댁 양현숙 어르신이 맞장구를 친다. 담양댁은 담양에서 시집와 지금껏 살고 있다고.

"다 좋은 곳이요. 여기서 50∼60년 살았는디. 사람 좋고, 산도 좋고, 들도 좋고. 내집도 편안허고. 광주 가깝고, 순창 남원도 가깝고. 교통도 좋은 동네여라."
 흑석저수지 둔치에서 내려다 본 흑석마을 전경. 분지로 둘러싸여 평화롭게 보인다.
ⓒ 이돈삼
 옛 담장의 추억. 담장 위에 병조각 흔적이 남아 있다.
ⓒ 이돈삼
김 팀장과 담양댁이 칭찬한 흑석마을은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에 속한다. 입면 소재지에서 가깝지만, '두메산골' '오지(奧地)'라고들 한다.

마을에 검은 돌이 있다고 '검은들' '금평(琴坪)'으로 불렸다. 금평이 '검은들'로 변하고, 검은들이 '검은돌'로 잘못 인식되면서 '흑석(黑石)'이 됐다고 전한다.

마을은 400여 년 전 옥천조씨가 들어와 살면서 이뤄졌다. 선조 때 청송심씨 심민겸이 정착하면서 자작일촌을 이뤘다. 흑석마을은 지리적으로 입면의 가운데에 자리한다. 상대적으로 넓은 들을 갖고 있다. 산골이지만 지세가 평탄한 편이다.

마을 뒤로는 해발 735m의 동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동악산은 암반과 계곡이 아름답다. 그만큼 산세가 험하다. 동악산에서 이어지는 형제봉, 서리봉, 마산봉이 병풍처럼 흑석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이 분지 형태를 보인다. 마을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주민은 50여 가구, 80여 명이 산다. 특별한 소득작목 없이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흑석저수지. 흑석마을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마을에서 본 흑석저수지 둔치. 마을이 저수지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농산촌임에도 마을이 풍요롭다. 저수지 덕분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이른바 '쌍둥이 저수지'다. 흑석저수지와 매월저수지다.

마을주민들이 농업용수로 쓰던 흑석저수지는 1945년 준공됐다. 당시엔 유효저수량이 44만 톤으로 많지 않았다. 가뭄이 들면 주민들 맘고생이 심했단다.

저수지 활용법을 고민하던 농어촌공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작은 산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흑석저수지와 매월저수지의 연결을 제안했다. 1998년 농업기반 정비사업이 추진됐다. 사업비만 수백 억 원이 투입됐다고.

사업 시작 6년 만에 두 저수지가 터널로 연결됐다. 유효저수량 총 479만 톤에 달하는 큰 저수지로 거듭났다. 당초 흑석저수지의 10배가 넘는 저수량이다. 농번기 때 물이 부족하면 섬진강 물을 끌어다 저수지를 채우는 구조도 만들었다.

엔간한 가뭄에도 끄떡없이 농사지을 수 있는 물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몸집을 키운 저수지는 홍수 조절 능력도 커졌다.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려도 마음 졸이지 않고 편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이 '쌍둥이 저수지'로부터 농업용수를 받는 수혜면적이 넓다. 둔치 아래 흑석마을과 입면은 물론 겸면, 옥과면까지 1000여㏊에 이른다.
 심형섭 흑석마을 이장이 마을 현황도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 이돈삼
"쌍둥이 저수지를 개축할 때 우리마을 사람들이 협조 많이 했습니다. 농어촌공사의 토지 매입을 적극 도왔어요. 대신, 마을을 관통하는 수로 이설을 요구했죠. 덕분에 농사용 물 걱정을 덜고, 홍수 때 물난리가 나 밤잠을 설치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상부상조한 거죠."

심형섭 흑석마을 이장의 말이다. 흑석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심 이장은 6만6000여㎡에 농사를 지으며 한우를 키우고 있단다.

저수지 주변 등산로 개설 등 수변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마을에 체육공원이 들어선 것도 그 덕분이다. 이후 전망대와 유산각이 건립되고, 재활용 쓰레기 배출장도 설치됐다.
 골목벽화가 그려진 흑석마을 풍경. 동악산과 어우러져 길손을 편안하게 맞아준다.
ⓒ 이돈삼
 담장 돌담에 그려진 꽃그림. 지나는 길손의 눈길을 끈다.
ⓒ 이돈삼
몇 년 전엔 골목 담장에 벽화도 그렸다. 옛 작두질에서부터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풍경, 말뚝박기 놀이, 참새와 허수아비 등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덧칠된 그림이 눈에 거슬린다.

"저작권 침해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처음에 미처 거기까지 살피지 못한 잘못이죠. 근데 처음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색깔을 덧입혀서 가렸습니다."

심 이장의 얘기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요즘 마구잡이로 그려지는 마을 벽화가 많은데,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마을에 특별한 문화유산이나 볼거리는 다소 적다. 수령 150년 된 팽나무가 마을과 어우러져 눈길을 끌 뿐이다. 마을 면적도 넓지 않다.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작은 행정마을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새봄을 맞은 농기계 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여기 사는 마을주민들의 자긍심도 높다. 고향을 나간 출향인들도 '살기 좋은 내고향'이라며 엄지척을 한다. 풍경과 마을, 사람과 사람들의 마음결까지 하나같이 넉넉한 산골이다.
 담장벽화. 옛 추억을 소환하는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