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갈 곳 없어” 치료 단절… 죽음으로 내몰리는 정신질환자들
정신질환자 자살률 OECD 최고… 이들에게 유독 가혹한 대한민국
◇정신질환자, 퇴원 후 갈 곳이 없다
전문가들은 '퇴원 후 지원 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국내 중증정신질환자 자살 문제는 퇴원 후 지원 시스템 부재에 따른 것"이라며 "외래치료지원제, 퇴원 후 사례관리 등 지속적인 치료를 돕는 정신의료서비스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복지서비스 연계도 잘 안 되고 있다"고 했다.
당사자들은 퇴원 후 전보다 더 지지할 곳이 없다고 느낀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위은솔 센터장은 "말 그대로 갈 곳이 없다"며 "학업·근로 등 이전 생활은 입원과 동시에 단절되고, 당사자 대다수 가족은 받아주지 않고, 폐쇄적인 입원 동에 있었다 보니 병원도 감시하는 곳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어 "당장 살 곳, '주거'할 곳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위은솔 센터장은 여섯 가지 정신 질환 진단을 받은 당사자다.
실제 퇴원 직후 많은 정신질환자가 자살을 시도한다. 국내 퇴원 후 1년 이내 자살률은 OECD 평균보다 약 1.8배, 아이슬란드와 비교하면 16배나 높다. 심평원이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퇴원 후 30일 내 자살한 환자 수는 일반 인구집단보다 66배나 많았다.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김연수 교수는 "퇴원 시기에 증상이 안정되면 현실감이 생기면서 사회 적응에 대한 고민이 매우 커진다"며 "학력 수준이 높았거나,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에서 환자가 퇴원 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퇴원한 정신질환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공 기관은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재활시설, 단 두 곳뿐이다. 정신재활시설은 당사자가 직접 찾아가야 하는데, 절대적인 시설 수가 부족하다. 명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는 "절반 가까이 되는 시군구에 정신재활시설이 부재할 정도로 충분한 재활시설이 없는데, 그마저도 수도권에만 집중돼 있다"고 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위은솔 센터장은 "몇 년 전 자살 충동으로 개방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니,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계돼 방문하라는 연락이 왔다"며 "막상 가보니 임시직이어서 본래 일을 맡던 사람이 오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고, 그 뒤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내가 운이 안 좋았던 걸 수도 있지만, 이 기관 말고는 다른 조치가 없다는 걸 고려하면 아쉬운 대응이었다"고 했다.
한편, 퇴원 후 지원 시스템 외에도 전문가들은 사회적 낙인 효과가 미치는 영향도 우려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특히 다른 나라보다 정신질환을 수용하지 못한다"며 "개인이 병들면 사회 전체가 병드는 것이므로, 정신질환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야 한다"고 했다. 2021년 조사에서 국민 약 60%가 '정신질환은 치료할 수 없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등 사회적 편견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치료 단절, 자살률 높여
몇 없는 정신질환자 지원도 '방치되는 사람'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적극적이어야 하고, 인권을 보장받지 못할 만큼 통제되는 삶도 감수해야 한다.
일단 지원받는 과정이 까다롭다. 정신건강복지센터든, 정신재활시설이든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직접 방문해 먹는 약 종류, 진단명, 기초수급자 유무, 장애등록 여부 등 당사자 본인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급성 정신질환 증상이 다시 나타나면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물론, 글자를 쓰고 읽는 것도 어렵지만, 도움을 받으려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통제되지 않는 사람은 방치된다. 위은솔 센터장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주거 지원 제도에 들어가면 약을 잘 먹고, 싸우지 말아야 하고, 잘 씻어야 하는 등 자기결정권이 박탈된 통제적인 관리 체계에 들어가게 된다"며 "문제 행동이 생겼을 때에는 심하면 병원으로 인계하지만, 일단 퇴소 조치해버린다"고 했다.
모든 지원이 '약물 중심'으로 진행돼, 지원받길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는 약을 처방할 때마다 수가가 생기는 의료제도라, 전반적으로 과잉 처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 당사자는 지원을 받으려면 무조건 처방받은 모든 약을 전부 제시간에 잘 먹어야 한다. 약을 먹으면 많은 환자가 입 마름, 10~20kg의 급격한 체중 증가 등 부작용을 겪는다. 위은솔 센터장은 "입이 마르면 발음이 부정확해 지속해서 물을 마시게 되고, 화장실을 자주 찾는다"며 "안절부절하는 정좌불능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런 부작용으로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운 사람은 약을 줄이거나, 간헐적으로 먹곤 한다"고 했다. 이들은 약물 부작용을 모두 감수하기 어려워, 정부 지원을 포기하는 것이다. 김현수 교수는 "약물이 아닌 회복 중심치료를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불합리한 의료 시스템으로 다양한 치료 없이 오로지 약물 중심 치료만 지원되고 있다"고 했다.
방치되는 정신질환자들은 주로 치료를 중간에 포기해 버린다. 백종우 교수는 "퇴원 1년 내 치료 중단율이 우리나라는 매우 높은 편"이라며 "지속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정신질환자 자살률을 높이는 것과도 연관된다"고 했다.
◇보건 당국, "천천히 조금씩 개선 중"
앞으로 개선될 정책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물었다. 일단 퇴원 후 시스템 개선을 위해 '병원 기반 사례 관리'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당사자가 '동의'하면 주기적으로 증상관리, 복약, 회복 등을 돕고 있는데, 앞으로는 병원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해 외래치료가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신재활시설 수도 늘어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신재활시설 전국 확대를 위해 지자체별 시설 설치를 위한 최소 기준을 마련해, 지자체에 권고했다"고 했다.
응급(자살) 상황에 빠지기 전 다른 사람 도움을 찾는 '위기' 기간이 있는데, 이때 언제든 2주간 거주할 수 있는 '동료지원쉼터'도 생겼다. 이에 대해, 위은솔 센터장은 "가장 도움 되는 정책"이라며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종일 운영되는 쉼터는 전국에 세 곳 뿐이고, 주간에만 운영되는 곳 두 곳이 있다. 올해 두 개소가 추가 공모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독립을 위한 주거 지원이 시범사업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의사결정이 어려운 정신질환자에게 보호 의무자가 없다면 공공후견인을 신청할 수 있도록 지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동료 지원인 양성 활성화, 주간 활동 서비스, 지역사회 통합 돌봄 도입 검토 등 신규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며 "한정된 예산에서 운영되는 만큼, 빠른 변화는 어렵지만 지속해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외래치료지원제
정신질환 증상으로 자·타해 행동을 해 ▲강제입원·입원했거나 ▲외래치료를 받은 사람 중 치료를 중단한 사람에게 진찰료, 약제비, 검사료 등 외래치료비를 연간 450만원까지 지원하는 제도.
☞퇴원 후 사례관리
외래방문점검, 투약관리, 가족교육 등으로 재입원을 막고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정신건강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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