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통령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네이선 밀러 지음, 김형곤 옮김
페이퍼로드, 512쪽, 2만2000원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45명이다. 책은 이 중 10명을 ‘최악의 대통령’으로 선정했다. 저자는 “순전히 주관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신중하게” 선택했음을 알게 되고, 선정된 이유에 고개를 끄덕여지게 된다. 15년 이상 정치 기자로 활동하고 상원의원 보좌관 경험을 한 저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전기까지 집필한 미국 역사에 해박한 정치 전문가다. 당파적 편견이 개입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듯, 저자는 자신의 투표 경험을 밝힌다. “13번의 대통령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중 민주당 후보에게 7회, 공화당 후보에게 4회, 소수당 후보에게 2회 투표했다. 필자가 투표해 대통령으로 당선까지 된 인물 중 2명이 이 책에서 필자가 선정한 최악의 대통령 명단에 포함돼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최악의 대통령은 지미 카터(재임 기간, 1977~1981)다. 다소 의외다. 카터는 퇴임 이후 ‘카터 재단’을 설립하고 다양한 인도주의적 활동을 펼치며 가장 ‘모범적인’ 전직 대통령으로 각인돼 있다. 전 세계를 두루 다니며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한 카터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전직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이 그가 대통령으로서 저지른 수많은 실수와 결핍을 결코 메우거나 변명해 줄 수는 없다”면서 카터에 대해 “국정 경험의 부족과 독선적인 도덕주의로 국민과 유리된 미숙한 대통령”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 카터는 “정치의 진지한 의무는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라는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말을 자신의 정치적 신념으로 삼았다. 카터 행정부의 최우선 정책은 인권, 환경, 핵무기 감축, 평화와 정의의 추구 등이었다. 저자는 현실 정치를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이상주의’로 바꿨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카터가 “소련의 궁극적인 의도가 위협적이고 적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카터에게) 미국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일반적인 폭력이었다”고 말한다. 저자에게 카터는 ‘숲을 보는 사람’이나 ‘숲속의 나무를 보는 사람’은 커녕 ‘하나의 나뭇잎을 보는 사람’이었다.
책에는 카터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너무나 사소한 문제에 골몰하는 사례도 나온다. 백악관 테니스 코트 예약이나 매일 듣는 고전음악 레코드 목록을 작성하는 일 따위 말이다. 카터에 대한 저자의 최종적 평가는 이렇다. “카터는 지적이고, 정직하고 봉사를 생활화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너무 독선적으로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만 믿었다. 카터는 자신이 추진한 프로그램과 정책에 대해 근면하고 성실한 태도로 임했다. 그러나 실천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데 실패했다.”
최악의 대통령들에게는 ‘자신감 결여, 불량한 성격, 타협과는 거리가 먼 형편없는 정치력과 무능, 비전의 결핍,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태도, 의사소통의 단절’ 등의 공통점이 있다. 윌리엄 태프트(1909~1913)는 진보의 시대에 보수주의를 고집한 시대착오적인 사람이었고, 벤저민 해리슨(1889~1893)은 냉담한 성격과 사교성 부재로 국정 파탄을 방관했다. 캘빈 쿨리지(1923~1929)는 최고의 자리에서 국가의 위기를 외면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무위도식한 대통령이었고, 앤드루 존슨(1865~1869)은 고집스럽고 독선적인 태도로 타협과 합의를 거부했다. 저자는 또 리처드 닉슨(1969~1974)에 대해서는 “국민을 기만하고 헌법을 위반하고도 반성조차 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대통령”으로 정의한다.
책은 각 인물의 개인적인 성장 과정과 정치 역정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룬다.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나름의 연유를 추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앤드루 존슨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가난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독선적인 성격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해방 노예’의 인권을 지지하는 북부 주 다수의 의견을 무시했고, 남북 전쟁 이후 미국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야당과 협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존슨 이후 1세기 동안 이어진 흑인 인종 차별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저자는 부록 성격의 에필로그에서 가장 과대 평가된 두 명의 대통령을 제시한다. 토머스 제퍼슨(1801~1809)과 존 F. 케네디(1961~1963)다. 제퍼슨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으로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자유를 ‘떠드는’ 동안 흑인 노예들의 땀과 피로, 그의 ‘몬티첼로’ 농장을 건설했다”면서 “그가 평생 수백 명의 노예를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노예를 해방한 적도 없었고,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최소한 8명 이상의 노예를 추가로 ‘구매’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케네디에 대해서는 “그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해 말솜씨와 재치, 매력, 젊음, 스타적 자질이 부각됐다”면서 “케네디는 미국을 베트남이라는 늪으로 이끈 냉전의 전사요, 1960년대 민권 운동 초창기에 사회 개혁의 열망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위정자였다”고 평가했다. 책이 나온 것은 1998년이다. 출간된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미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대통령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소망은 유효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과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사자성어에 어울리는 책이다
·최악의 대통령을 통해 미국사 전반을 훑어볼 수 있다
·훌륭한 대통령은 바라지도 않는다. 최악만 아니라면 다행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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