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 해제 ‘실책’ 수습될까···“오락가락 정책에 시장 혼란만 커질 것”
정부와 서울시가 지난달 단행한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해제가 최근 집값 급등세의 원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강남 3구와 용산구 아파트 전체를 토허구역으로 확대 지정하며 수습에 나섰다. 당장의 집값 과열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일 수 있지만 한 달여 만에 뒤집힌 ‘오락가락 정책’이 시장 혼란만 키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9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 브리핑에서 “지난달 12일 토허구역 해제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성급한 토허제 해제 결정이 ‘실책’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국토교통부도 브리핑에서 토허구역에서 해제된 강남·송파구 일부 주택에서 집값 과열 조짐이 시작됐으며 특히 강남 3구를 중심으로 갭 투자 수요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강남 3구의 갭 투자 비율은 43.6%로 전달보다 8.4%포인트 뛰었고, 지난해 7월 이후 꾸준히 하락하던 외지인 주택 매수 비율도 지난달 62.4%로 한 달 새 7.1%포인트 급반등했다. 그 사이 최대 수혜 단지로 꼽히는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30억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지난달 서울시는 “부동산 시장이 하락 안정화되고 있다”며 토허구역 해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연초부터 이미 꿈틀거리던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0.20% 올랐고, 강남 3구가 포함된 동남권은 0.40%로 상승 폭이 더 컸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지난달 토허구역 해제를 금융당국과 협의하지 않았다. 오 시장은 이날 “(지난달 토허구역 해제 전) 정부기관에서는 국토부와만 사전에 논의했다”고 말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 통화량 확대” 등을 향후 우려되는 시장 과열 요인이라고 설명했는데 지난달 토허구역 해제 사전 논의 과정에선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서울 전체의 27% 달하는 광범위한 면적을 토허구역으로 묶는 초강수를 낸 것은 지난달 말부터 서울 대부분의 자치구로 과열 양상이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좁은 지역만 ‘핀셋 규제’하면 인접 지역에 수요가 쏠리는 풍선효과가 반복되다 보니, 광범위한 규제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 상승세에 완전히 불이 붙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가격 하락까진 어려워도 시장 안정화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토허구역 확대 지정으로 당장 규제지역의 거래량은 감소하겠지만 강남권을 포함한 서울의 집값 상승세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서울 분양시장의 낮은 공급 진도율, 내년 서울 준공물량 감소, 전·월세 가격 상승 등이 이어진다면 강남권 등의 매매가격이 하향 조정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규제에 포함되지 않은 상급지로 투자 세력이 분명히 유입될 것”이라며 “해당 지역까지 규제가 확대된다면 수도권까지 상승세가 퍼져나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가 당초 취지와 달리 정부의 가격 통제 수단으로 남용되면서 훼손된 정책 신뢰가 시장을 오히려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이미 토허제 해제로 인한 폭등을 목격한 집주인들은 가격을 내리기보다는 기다리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토허제는 투기 수요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지연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전·월세 시장의 가격 상승도 우려된다. 장소희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토허구역에서의 갭 투자 금지는 전·월세 물건의 감소를 초래하고 결국은 전·월세를 상승시키는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토허구역 확대 지정이 오는 24일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주말까지 강남 3구·용산구에서의 거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인만 소장은 “규제 지역에서 전세를 낀 갭 투자로 이미 집을 산 집주인들이 급하게 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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