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퍼스펙티브] 미국도 한국이 필요해…‘관세 폭탄’에도 기회는 있다

2025. 3. 1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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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이론으로 보는 트럼프


이광형 KAIST 총장·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물리학에 카오스(Chaos) 이론이 있다. 혼돈 현상이 있어도 그 속에 존재하는 규칙(질서)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혼돈 속에 존재하는 규칙을 끌개(attractor)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날씨를 생각해 보자. 날씨는 종잡을 수 없이 바뀐다. 그러나 지금의 현대인들은 날씨 변화를 예측하면서 살아간다. 날씨 변화라는 혼돈(카오스) 속에서 끌개(규칙)는 일조시간의 변화와 기온 변화, 기압 변화에 따른 대류 등이 있다. 우리 현대인은 이들 끌개들을 이용해 날씨를 예측한다.

「 우방도 안 봐주는 트럼프, 혼돈 속 규칙은 ‘눈앞의 이익’과 ‘중국 견제’
미국의 중국 견제에 한국은 유용한 국가, 지정학적 위치도 전략 자산
한국은 조선·원전·배터리 등 기술 경쟁력 보유, ‘기정학’에서도 강점
트럼프 ‘관세 폭탄’에 담대하게 대응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야

도널드 트럼프의 재등장은 전 세계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느낌이다. 관세와 중국 압박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나 인접 우방국에 관세 폭탄을 때리고 우크라이나로 가는 전쟁 물자 수송선을 되돌려 세우는 일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이를 중재하려는 영국과 프랑스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현재 국제사회는 혼돈 상태다. 여기에 카오스 이론을 적용해 보면 어떻게 될까? 규칙에 해당하는 끌개를 찾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트럼프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트럼프를 읽는 두 개의 키워드
트럼프의 행동을 분석해 보면 두 개의 키워드가 보인다. 첫째는 ‘눈앞의 이익’이고 둘째는 ‘중국 견제’다. 단기적인 시야로 이익을 추구하는 그의 행동은 쉽게 눈에 띈다. 우방국과 연대해 세계 경영을 하는 전통적인 전략도 눈앞의 이익 앞에는 가치를 상실한다. 모든 관계를 돈거래의 관점에서 본다. 우방국과의 연대를 위해 지출되는 비용은 낭비로 본다.

트럼프의 두 번째 키워드는 중국 견제다. 기존 관세 15~30%에다 추가로 20%포인트를 부과해 결국 35~50%의 관세 폭탄을 때리고 있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에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지은 책 『거대한 체스판』을 보면 강대국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역사 속에서 강대국이 어떻게 경쟁국을 견제했는지 보면 현재 트럼프의 행동이 이해 간다.

세계는 거대한 체스판
제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는 이념으로 갈라져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자유민주 진영은 미국을 중심으로 뭉쳤고 공산주의는 소련이 중심이 됐다. 소련의 약화를 꿈꾸는 미국은 소련과 중국의 분리를 기획했다.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1971년 중국을 방문해 물꼬를 트고 그다음 해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정식 수교의 길을 열었다. 그 후 1973년 파리협정을 통해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를 약속했다.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던 베트남은 1975년 완전 공산화됐다.

1980년대에 접어들자 공산주의 체제의 한계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1989년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개혁과 자유화 물결이 일었다. 서독과 동독으로 갈라져 있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독 시민들도 들고일어나 개혁 개방을 외쳤다. 통일의 기회라고 생각한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소련과 미국·동독을 분주하게 오가며 통일의 정지 작업을 했다.

독일의 통일을 지지하는 나라는 유럽에 거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도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싸웠지만, 눈앞의 더 큰 적인 소련을 견제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미국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강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일 통일을 지원했다.

역시 세계는 거대한 체스판이다. 체스판으로 바라보면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도 가닥이 보인다. 미국의 최대 과제는 중국의 견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은 무엇이든 한다.

트럼프의 우선순위는 중국 견제

지난 1월 21일 시진핑(오른쪽) 중국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화상으로 회담을 갖고 외부 불확실성에 공동 대응을 협의했다고 양국 관영 매체가 보도했다. CC-TV 캡처

현재 미국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이다.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다면 미국에는 아주 좋은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의 환심을 사고 친하게 지낸다. 그러면서 이권을 챙긴다. 이 이권은 우크라이나 광물자원이 될 수도 있고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 노드스트롬 2가 될 수도 있다. 전쟁 중에 파괴됐던 가스관 노드스트롬 2를 미국이 개입해 재개한다는 소문이 있다. 이 체스판에서 영국·프랑스 등의 우방국은 안중에 없다.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 필자는 미국이 러시아에 이익을 제공해준다면 상당 부분 성공할 것이라 본다. 반면에 중국이 러시아에 해 줄 것은 별로 없다. 가치 외교보다 실리 외교가 우선이다.

혼란스럽던 트럼프도 카오스 이론으로 보니 정리가 된다. 트럼프 카오스의 끌개(규칙)는 눈앞의 이익과 중국 견제다. 그럼 트럼프의 두 가지 끌개 중에 어느 것이 더 강력한가? 필자의 눈에는 중국 견제가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트럼프가 세계 여러 나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읽힌다.

한국·대만이 다른 대접 받는 이유
트럼프가 세계 많은 국가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이 인접 국가 캐나다와 멕시코, 강한 동맹국인 유럽까지 펼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오는 물건에는 무조건 강한 관세를 매긴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인도·태평양 국가들에는 심하게 하지 않고 있다. 인도·일본·한국·베트남·대만·호주 등이 여기 해당한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포위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중국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에 관세를 매긴다는 말은 없다. 이들 국가에 대해 품목별 관세는 있지만, 국가별 관세는 높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눈에는 세상의 나라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중국 견제에 ‘유용한 국가’와 이와 ‘무관한 국가’다. 만약 캐나다가 중국의 인접 국가였다면 현재의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는 자주 대만과 한국이 반도체를 싹쓸이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국가별 관세 폭탄을 날리지는 않고 있다. 다만 미국 내에서 생산하라고 압박하는 수준이다. 사실 미국에 들어와 생산하라고 종용받는 것도 귀한 대접이다. 이런 대접을 받는 나라는 대만과 한국 외에 별로 없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에 아쉬운 조선업과 원자력 건설업, 배터리가 막강하다. 한국은 지정학(地政學)뿐 아니라 기정학(技政學)에서도 강점이 있다는 증거다.

세계 체스판 위에서 보면 한반도의 지정학 위치는 그야말로 절묘하다.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베이징의 1000㎞ 거리에 미군 2만5000명이 주둔하고, 중국을 들여다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가 있다. 중국 입장에는 목에 걸린 가시와 같은 형국이다. 방위비 인상 요구가 오면 한반도가 북한 억제 역할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렇게 좋은 전략 자산을 포기할 수 없다.

한국의 강점 활용한 전략 필요
한국의 전략은 명확해진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에 적극 협조한다. 현재 한국인의 감정은 친미와 반중 정서라 말할 수 있다. 중국 견제 정책을 펼치기에 적합한 여론이다. 그러나 국민 정서는 항상 변할 수 있다. 국민 정서가 바뀌면 국가 정책도 영향을 받게 된다. 미국이 한국을 다른 나라에 하듯 거칠게 대하면 국민감정은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이 이 상황을 모를 리 없다.

한국 여권 소지자의 중국 무비자 방문이 가능해진 지난해 11월 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중국행 항공편 카운터가 여행객 등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의 눈에는 이미 중국이 한국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고 본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8일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정책을 시행했다. 지난해 11월 5일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사흘 만이다. 또한 지난 7일 중국 전역에서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17’이 개봉됐다. 한한령(限韓令)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필자에게는 이것들이 우연의 일치로 보이지 않는다. 이에 미국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어떻든 한국도 특정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 폭탄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제품에 통째로 받는 나라에 비하면 훨씬 가볍다. 한국의 수출 중에서 미국 비중은 18.3%(2023년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외의 세상도 넓다. 국가별 관세 폭탄으로 더 심한 타격을 입고 있는 나라가 많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다. 이들 나라와 교역하면 비교 우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지정학·기정학 장점을 활용해 담대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 혼돈의 트럼프 상황도 카오스 이론을 적용해 보니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보인다.

이광형 KAIST 총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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