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상호관세 뒤 양자협상"… 한미FTA 격랑속으로

장우진 2025. 3. 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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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새 협정' 전략 제시
대행체제 대응 한계… 공론장 시급

미국 정부가 16일(이하 현지시간) 상호관세, 양자간 협상, 새 무역협정으로 이어지는 통상전략을 대외에 공개적으로 제시하면서,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한국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 정부는 소고기 수입제한 폐지, 스크린 쿼터제, 온라인 플랫폼 기업 독과점 규제 해소 등을 내세우며 상호관세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예상대로면 현재 '대행의 대행' 체제로는 대응하기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소고기 수입제한 폐지나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자칫 한미 관계 악화와 극심한 국론 분열, 사회혼란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CBS 방송 인터뷰에서 "공정성과 상호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바탕으로, 양측 모두에 이익이 되는 새로운 무역 협정을 위해 전 세계 국가들과 양자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거세게 비판해온 유럽연합(EU)에 대해 "30∼40년간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불공정하게 대하는 것을 허용해왔다. 대부분은 냉전 시대였는데 이유는 그들이 부유하고 번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변해야 한다. EU의 경제 규모는 우리와 거의 비슷하고 저임금 경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원하는 것은 무역의 '새로운 현 상태'(new status quo)를 설정하는 것라며, 상대국이 원할 경우 '상호관세' 이후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표일로 예고한 4월 2일에 선제공격하고, 이를 기반으로 무역 상대국과 협상을 거쳐 새로운 무역협정을 맺어 무역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루비오 장관은 해당 인터뷰에서 캐나다와 멕시코, EU 등을 주로 언급했고, 한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무역적자국 가운데 한국이 8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만큼, 미국 정부가 한국에 대해서도 강한 상호관세 압박을 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무역상대국의 '부당한 관세'를 주장하면서 부가가치세를 언급한 바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부가가치세를 비롯한 조세제도 개정도 미국의 요구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며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아주 많은 다른 방식으로 아주 많이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정부는 "한미 수입품에 대한 우리나라 관세율은 사실상 0% 수준"이라며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미국 정부는 반응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관세 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여러 규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하며 전방위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국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해온 온라인 플랫폼 기업 독과점 규제로 구글 등 자국 기업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을 좌우하는 소수 거대 플랫폼 기업의 부당행위를 금지한다는 게 관련 규제의 취지이지만, 미국상공회의소를 비롯한 미국 재계는 중국 기업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미국 기업에만 부담을 주는 규제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해왔다.

최근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3월 내놓는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 보고서 작성을 위해 미국 산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취합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한국이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30개월 연령 제한'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미국 철강회사 클리블랜드-클리프스는 한국 철강업체들이 보조금을 받아 생산한 제품을 미국 시장에 반복해서 덤핑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또 생명공학혁신기구(BIO)는 한국 정부의 "가격통제" 때문에 미국 제약사들이 개발한 혁신적인 제품이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하고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외국 콘텐츠에 대한 스크린 쿼터제 축소·철폐, 생명공학 기술로 개발한 작물에 대한 절차 개선, 블루베리 시장 개방 등의 의견도 나왔다. USTR은 관련 내용을 취합해 이달 말 쯤 국가별 NTE 보고서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4월 2일 상호관세에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 통상 당국은 미 측과의 지속적인 접촉과 대화를 통해 정확한 의도와 요구사항을 파악해 협상에 대비하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 통상 당국은 미국 측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설득할 논리와 근거를 마련해, 향후 한국이 무역에서 부당하게 혹은 과도하게 피해를 보는 상황을 차단하고 최소화 하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국은 2018년 트럼프 1기 정부가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발표하자, 곧바로 미국과의 협상을 거쳐 별도 합의를 도출한 뒤 그동안 대미 철강 수출에서 263만톤 물량에 대한 '무(無)관세'를 이끌어낸 바 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4일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상호관세 부과까지 20여일 남은 상황에서 기회 닿는 대로 저뿐만 아니라 실무자들이 워싱턴을 방문해 우리 입장을 지속해서 전달할 것"이라며 "우리가 기대하는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고 무차별적인 관세 정책이 부메랑이 돼서 미국 경제에도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미국과의 '통상 줄다리기'에서 한국이 무작정 수세적 입장을 취하면서 서둘러 불리한 협상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등을 앞세워 우리나라를 압박할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응할 전략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미 경제·안보 공조 강화를 골자로 한 치밀한 전략을 세울 공론장이 범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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