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 무죄면, 윤 대통령은 유죄다 [김형남의 갑을,병정]
[김형남 기자]
▲ 지난 21일 오후 서울 용산 중앙지역군사법원 앞에서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이날 열리는 자신의 결심 공판 출석에 앞서 시민들과 해병대 전우들 앞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
ⓒ 권우성 |
이날 방청석에는 약 200~300여 명의 시민들이 꽉 들어찼다. 좌석이 부족해 앉지 못한 사람을 군사법원 측에서 법정 밖으로 내보내려하자 방청객들이 이에 항의하고 바닥에 앉아 방청을 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항명 혐의' 재판 쟁점은?
이날 군검찰 구형에 앞서 박정훈 대령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있었다. 항명죄 사건의 경우 크게 두 가지 쟁점으로 압축된다. 첫째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박정훈 대령에게 이첩 보류 명령을 하였는가?'다.
수사결과에 대한 언론 및 국회 브리핑이 취소된 2023년 7월 31일부터 해병대수사단이 경상북도경찰청에 수사 기록을 이첩한 8월 2일에 이르기까지, 군검찰은 2박 3일 간 해병대사령관이 반복적으로 이첩 보류 명령을 했음에도 박정훈 대령이 이를 계속 거부하였다고 주장한다. 박 대령 측은 해병대사령관은 그러한 명령을 한 사실이 없으며, 오히려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명령을 내릴 시 향후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 8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 남소연 |
만약 김 사령관이 8월 2일 이전에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군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에 반해 이첩을 강행한 박 대령의 보고를 받고도 1시간 가까이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김 사령관이 수사 개입에 따른 직권남용 책임도 피하고, 한편으로는 대통령실과 국방부로부터 항명의 문책을 받지 않기 위해 박 대령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두 번째 쟁점은 '이첩 보류 명령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해당 명령이 합법적인 명령인가'다. 군형법상 항명죄는 정당한 명령을 위반한 군인을 처벌하는 법이다. 명령이 위법하면 항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간 군검찰은 지휘관에게는 군사경찰에 대한 포괄적 지휘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박 대령에게 내려진 명령은 '이첩을 보류'하라는 것뿐이지 그밖에 혐의자를 빼라는 등 위법한 명령은 없었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박 대령 측은 현행 법령에 따라 지휘관은 군사경찰의 일반 사무를 지휘할 수 있지만 개별 사건 수사에는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대령이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나눈 대화와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간의 대화 내용 등으로 볼 때, 이첩 보류 명령의 실체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지휘책임자를 혐의자에서 배제하라는 명백한 위법 명령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쟁점은 항명죄 사건 선고의 여파를 결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만약 박정훈 대령에게 무죄가 선고될 시, 이는 역으로 이첩 보류 명령이 위법한 수사 개입이었다는 점이 인정되는 격이 된다. 위법 명령은 '직권남용'이다. 따라서 박정훈 대령의 무죄 선고는 곧 '이첩 보류 명령' 발령자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는 결과로 나아간다.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는가?'로 알려진 소위 '대통령 격노설'에 따르면 위법 행위의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까지도 이를 수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박 대령은 이날 답변 과정에서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로 인해 재판 내내 '수사 외압'의 사실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 등에서 다수 관계자가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9차 공판에서는 증인으로 출석한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이 '본인이 형사소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관련한 증언을 거부한 바도 있다.
피고인 신문 후 군검찰은 박정훈 대령이 군의 기강을 무너뜨린 중범죄자라 주장하며 항명죄, 상관명예훼손죄의 법정최고형인 징역 3년을 구형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고로 높은 형량을 구형한 것이다.
박정훈 대령 사건의 결심과 선고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사건의 결과는 그 자체로 수사외압의 실재 여부를 판가름하게 되기 때문이다. 박 대령이 무죄라면 반대로 외압을 가하거나 동조한 사람들은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고, 나아가 법원, 국회 등에서의 위증죄도 성립할 수 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세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 도입의 중요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특검 등의 수사 결과 대통령의 격노와 수사 개입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이는 대통령의 직무상 위법행위에 해당하여 탄핵 사유도 될 수 있다.
박 대령은 최후 진술에서 "이번 재판은 단순히 저 한 사람의 항명죄를 다투는 재판이 아닙니다. 본 사건은 이미 국가적인 사안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 보이지는 않지만 함께하고 있는 고 채수근 해병에게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게 하겠다'라고 한 저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로 진술을 마무리하며 목이 멘 목소리로 흐느끼기도 했다.
재판과는 별개로 국회에서는 장기간 미뤄온 국정조사도 추진될 예정이다. 지난 22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 사망 사건에 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채 상병 사망 이후 1년 4개월간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사건이 중요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군인권센터가 11월 21일부터 진행 중인 '박정훈 대령 무죄 탄원 온라인 서명 운동'은 시작 3일 만에 참여자 8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박정훈 대령 무죄 탄원 온라인 서명 운동) 서명은 1월 3일 자정까지 6주 간 받는다.
선고 기일은 2025년 1월 9일 오전 10시, 항소가 있을 시 항소심은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군사법원이 아닌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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