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69] 음식, 생존을 넘어 맛과 멋으로
높은 촛대, 노란 장미, 반짝이는 은식기들, 한 사람 앞에 세 개씩 놓인 포도주잔. 특히 나의 구미를 당기는 건 주방에서 희미하게 풍겨 나오는 고기 굽는 냄새였다. 식사는 버터로 바삭바삭하게 구운 뱅어 요리에 모젤 백포도주를 곁들여 시작됐다. 생선 요리를 다 먹자, 곧 두 번째 요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큼지막한 로스트비프였다. 그녀가 고기를 마이크 앞에 놓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칼로 얇게 잘라 하녀가 모두에게 돌릴 수 있도록 접시 위에 담았다.
- 로알드 달 ‘맛’ 중에서
주식중개인 마이크가 만찬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돈만 좇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에도 조예가 깊은 교양인임을 알리고 싶었다. 화려한 식탁을 자랑하며 포도주에 대한 지식도 늘어놓았다. 특별한 와인을 선보이며 손님들이 그 가치를 알아주길 기대했다.
리처드는 포도주의 생산 연도와 재배지를 알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미식가다. 쉰 살쯤 된 그는 사실 마이크의 18세 딸 로즈에게 빠져있다. 그는 집 두 채를 걸 테니 어떤 포도주인지를 알아맞히면 로즈와 결혼하게 해달라며 내기를 제안한다. 그를 싫어하는 딸은 기겁하지만 절대 맞히지 못할 거라 자만한 마이크는 내기에 응한다.
“아주 상냥한 와인이군. 첫맛은 새침하게 수줍어하지만, 두 번째 맛은 아주 우아해.” 현란한 수사를 늘어놓으며 포도주를 평한 리처드는 아주 쉽게 원산지와 재배 연도를 알아맞힌다. 마이크와 로즈는 절망에 빠지고 리처드는 의기양양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반전의 대가인 로알드 달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낼 리 없다. 이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뒤집힐까?
눈으로 먹고 귀로 맛을 보는 요리 프로그램이 화제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하는 철학적 농담은 배고프던 시절의 허세였을 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나 유명 맛집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미각의 만족을 넘어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시즌이 끝난 후 대중의 관심은 방송에 출연했던 요리사들의 사생활과 숨겨진 과거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요리는 생존 수단을 넘어 우리의 삶과 가치관을 담아낸다. 아름답게 장식된 음식을 소셜 미디어에 자랑하는 것이 대세라 해도, 더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소박한 밥상 앞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수저를 든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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