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109년 된 호텔이 사라진 이유

신현종 기자 2024. 10. 31.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말 문을 닫은 대전 유성호텔 전경. 유성호텔은 109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로 철거가 진행 될 예정이다. /신현종 기자

‘노잼 도시’

국토의 심장 대전의 또 다른 별칭이다. 대전이 이런 이름으로 통용되는 건 다른 도시들에 비해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즐길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노잼의 도시가 한 때는 매일 밤 재미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넘쳐나던 때가 있었다.

대전의 대표 온천관광지로 유명세를 누렸던 유성은 1994년 설악과 경주, 해운대, 제주와 함께 최초의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관광특구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 등 관광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시행된 정책이다. 당시는 영업시간 제한조치가 시행 중이어서 관광특구를 제외한 지역은 밤 12시면 모든 유흥업소의 영업을 끝내야만 했다. 관광특구는 말 그대로 영업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특별한 구역’이었다. 온천을 즐기러 오는 관광객은 물론 타 지역에서 일명 ‘총알택시’를 타고 늦은 밤까지 여흥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까지, 유성온천의 밤은 늘 불빛과 소란으로 가득했다.

지난 3월 말 문을 닫은 대전 유성호텔 전경. 호텔 앞에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놓여 있다. /신현종 기자

유성 온천은 기본적으로 온천수의 수질이 뛰어나고 역사적 의미도 깊어 관광지로서의 자질을 잘 갖춘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394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도안으로 가던 중 유성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며, 조선 태종 이방원도 왕자이던 1393년, 유성온천에서 목욕을 한 뒤 병사들이 군사훈련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는 기록이 있다.

유성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부터다. 1907년 유성에 정착한 일본인 스즈키 마쓰요시가 봉명동 유성천 남측 개발을 시작하며 상업화가 시작된 후 줄곧 상승세를 이어왔다.

이런 유성온천의 번영기는 1999년 전국적으로 야간 영업시간 제한이 폐지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유성 일대에 있던 유흥업소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급격한 쇠락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렇듯 경쟁력이 사라지자 유성온천을 찾는 사람들이 줄게 되고 연쇄 작용으로 호텔 등 인근의 숙박 업소는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철거된 옛 호텔리베라 유성 부지 모습. /신현종 기자

그 결과 유성온천 경제의 중심 축이였던 호텔들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5성급 호텔이었던 리베라 유성이 2017년 12월 31일 폐업을 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인근의 아드리아 호텔이 2018년, 레전드호텔이 2021년 영업을 중단했으며, 1915년 문을 열어 109년 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성호텔 또한 올해 3월 말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1915년 자연 용출 온천이 개발되면서 시작한 유성호텔은 1966년에 유성온천지구 최초로 관광호텔로 신축 개관하며 현대적인 온천관광단지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5층 건물에 6인승 엘리베이터와 현대식 사우나 시설을 갖춰 현대식 건물로 사랑을 받았다. 유성호텔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찾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폐업한 유성호텔 자리에는 2028년 하반기까지 호텔 1개 동, 주상복합 2개 동 등 대규모의 신축 관광호텔이 들어설 전망이다. 유구한 역사의 유성호텔 마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하며 한때 한해 방문객 1000만 명 기록하던 유성온천의 황금기는 이제 옛 이야기로만 남게 됐다.

문을 닫은 대전 아드리아호텔 모습. /신현종 기자

관광특구는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가 10만 명을 넘고 관광 안내 및 공공 편익시설, 기반시설(숙박) 등을 충족해야 하는 요건이 있다. 여기에 정부는 관광특구의 관리를 위해 매년 30억 원 규모의 예산을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34곳에 이르고 있는 관광특구 중 기본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관광특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관광특구가 가져야 할 고유의 기능이 상실된 것이다.

전국의 모든 관광특구들이 일제히 부진을 면치 못한다는 건 유성온천 관광특구의 위기가 단순히 제도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온천관광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관광산업은 분명 예전과는 다른 형태로 변모했다. 관광특구가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최신 관광 트렌드 분석이 필수적이다. 온천수를 찾아 신혼여행도 가능했던 그 시절과 현재의 관광은 많은 차이가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