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언니, 코치, 전현무 삼촌까지…‘역도 요정’ 박혜정에게 힘을 준 사람들[파리올림픽]
박혜정(21·고양시청)의 어머니는 지난 4월, 약 8년간의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박혜정은 고인을 떠나보낸 직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큰일을 치른 그는 비통한 마음을 가슴에 묻고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파리행을 확정했다. 박혜정은 올림픽을 준비하며 머릿속에서 ‘엄마 생각’을 지우려고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관련 언급을 최대한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제가 더 힘들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나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박혜정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 6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역도 여자 81㎏ 이상급 경기에 출전했다. 몸을 풀기 위해 워밍업을 하는 데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엄마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느낀 것일까. 박혜정은 이날 인상 131㎏, 용상 168㎏, 합계 한국 신기록인 299㎏을 들어 중국 리원원(309㎏)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박혜정은 한국 역도에 8년 만의 올림픽 메달을 안겼고, 장미란 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이후 12년 만에 여자 역도 최중량급 메달리스트가 됐다.
기쁨의 순간, 박혜정은 애써 잊고 지낸 엄마를 생각하며 시상대 위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박혜정은 “엄마가 살아계신다면, 아마 이곳에 아빠, 언니와 함께 계셨을 것”이라며 “제게 바로 와서 안아주셨을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따금 엄마가 꿈에 나오면 박혜정은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그래도 갓 스물을 넘긴 역사(力士)는 꿋꿋하게 버텼다. 박혜정은 “아직 엄마 얘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는데, 계속 울 순 없다”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한다”고 이야기했다.
박혜정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힘든 순간을 이겨냈다. 그는 “아빠와 언니가 저를 많이 지지해줬다”며 “박종화 코치님도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방으로 불러 위로해주셨다”고 감사해했다. 박혜정은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응원과 받았다. 방송을 통해 인연을 맺은 전 KBS 아나운서 전현무씨가 파리 현장에서 박혜정의 역도 경기를 직접 중계하는 등 지상파 3사가 모두 박혜정의 경기를 관심 있게 다뤘다.
박혜정의 얼굴을 직접 보려고 공동취재구역에 내려온 전현무씨는 “혜정이의 가족이 돼 중계했다”며 “기회가 된다면 LA 올림픽에서도 혜정이의 경기를 중계하고 싶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박혜정은 “역도가 비인기 종목인데 큰 방송사 세 곳에서 중계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윤진희 언니(리우 동메달리스트), 이배영 코치님, 전현무 삼촌께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혜정은 ‘역도 요정’으로 불리며 큰 관심을 받는 것에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그 별명이 이제 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 대회 최선을 다하는, 공정하고 깨끗한 스포츠를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파리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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