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전설 만든 반도체 구루, 삼성 파운드리에 던진 충고
‘TSMC R&D 주역’ 양광레이 인터뷰
■ 경제+
「 애플·엔비디아 첨단 칩 주문을 독점하고 있는 TSMC 역사를 되짚으면 6명의 연구개발(R&D) 공신을 만나게 된다. 제조 하청 TSMC를 기술 자립으로 이끈 6인방을 대만인들은 ‘TSMC의 6기사(knight)’라고 부른다. 6기사 중 유일하게 반도체 업계를 떠나 TSMC에 쓴소리하며, 그러나 여전히 대만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이가 있다. 양광레이 국립 대만대 겸임교수다. 그는 20년간 TSMC에서 일하며 R&D 담당 이사를 역임했고, 지난해까지는 인텔 기술고문을 지냈다. 지난 3월 타이베이에서 만난 그를 지난달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
TSMC 역사를 대만 반도체 전문가들은 3개 시기로 구분한다. ①1987~97년 제조 하청기 ②1998~2008년 기술 축적기 ③2009년 이후 투자 증대기다. 1기에서 2기로 전환을 이룬 비결로는 크게 두 가지, 해외 인재 유입과 파운드리(위탁생산) 집중을 꼽는다.
유학파 인재 잘 써 큰 TSMC…요즘 ‘1년차 15% 이직’ 충격
1970~80년대 대만대를 졸업한 이공계 인재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갔다. 1987년 설립된 TSMC는 곧 파격적인 주식 보상을 내걸고 이들을 불러들였다. UC버클리 박사를 마치고 HP에서 일하던 양 교수 등 6기사는 실리콘밸리를 떠나 대만에 돌아왔다. 1995년 귀국한 양 교수는 TSMC에서 수작업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Q : 뭐가 문제였고 어떻게 바꿨나.
A : “입사 당시 TSMC R&D는 끔찍했다. 제조만 했지 미국 회사에서 하는 것 같은 R&D는 개념조차 없었다. 내가 한 가장 큰 기여는 맨땅에서 R&D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초 방법론을 만든 거다. 눈앞 기술 격차를 따라잡으면서 인프라를 챙기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면 과제는 0.13미크론(130나노미터㎚) 공정 개발이었다. 경영진은 하루빨리 성과를 내라고 독촉했지만, 양 교수는 “인프라 구축을 허락하지 않으면 회사 ID카드를 반납하겠다”고 담판을 지어 제조 공정 통합 등 R&D 인프라를 닦았다. 2001년 TSMC는 세계 최초로 0.13미크론 양산에 성공한다.
대만은 반도체 산업이 설계·제조·패키징 등으로 분업하는 흐름에 올라탔다. 남들이 안 하는 ‘순수 제조’ 파운드리를 택해 경쟁을 피했다. 양 교수는 “당시 제품이 왕이고, 제조는 천한 서비스업에 불과했다”며 “TSMC보다 훨씬 기술이 앞섰던 삼성·IBM·인텔은 파운드리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2014년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14나노 양산에 성공하자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초유의 결단을 내린다. 생산이 아닌 R&D를 3교대로 돌리는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다. 10나노급 차세대 공정 기술 개발을 위해 R&D 인력 400명을 고용하고 이들에게 기본급 30% 인상과 주식 보상 50% 인상을 내걸어 ‘24시간 3교대 논스톱 R&D’를 실현했다.
유교적 근면·복종 문화와 경제적 보상을 결합한 이 시도는 대만 반도체 산업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양 교수는 그게 영원할 수 없다고 봤다.
“초기 200명 정도였던 R&D는 지금 1만 명에 이른다. 예전에는 목숨 바쳐 회사 성장을 위해 일하면 커리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거대한 피라미드 안에서 너무 많은 인원이 경쟁하고 있어 커리어 경로가 27년 전보다 훨씬 나빠졌다. 1년 차 직원 이직률이 15%에 달한다.”
파운드리 사업, 메모리와 달라…삼성에 ‘별도의 정체성’ 필요
중앙처리장치(CPU) 강자인 인텔은 지난해 파운드리를 별도 사업부로 분리하고 2030년까지 삼성을 제치고 세계 2위 파운드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정부는 인텔에 200억 달러(약 26조원) 보조금을 배정했다. 양 교수는 지난해 인텔 고문직을 내려놓은 후 “인텔 파운드리 성공 가능성은 10% 미만”이라고 진단했다.
Q : 왜 안 된다고 봤나.
A : “오랫동안 종합반도체사업(IDM)을 해 온 인텔의 문화와 (파운드리의 속성은) 거리가 있다. 완전히 딴사람이 돼야 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엔지니어 머릿속엔 ‘나는 기술에만 집중하면 되고 고객 응대는 하위 직급이 하는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고객을 위해 자기가 보유한 기술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Q : 사내 타 사업부라는 1차 고객이 있는데.
A : “‘내부 고객’을 상대하던 태도로는 파운드리를 잘하기 어렵다. 내부 고객은 예의를 지켜가며 말하겠지만, 외부에 있는 진짜 고객은 문제가 생기면 고함을 지른다.”
Q : 삼성의 파운드리는 어떤가.
A : “삼성은 매우 강한 회사지만, 여전히 IDM이자 메모리를 강조한다. 메모리 우산 아래 살면서 파운드리 사업을 할 수는 없다. 예컨대 인텔은 CPU 말고는 다 실패했고, TSMC도 파운드리말고는 모든 게 실패했다. 어느 하나에 강한 DNA를 갖고 있으면 그 외에 새로운 것들은 암세포 취급을 받는다.”
Q : 삼성 파운드리가 성공하려면.
A : “어떻게든 (기존 조직과) 구분해야 한다. 삼성이 잘하는 메모리를 내던지라는 게 아니다. 메모리에 집중하되 파운드리는 별도 정체성과 별도 사람으로 해야 한다. TSMC나 UMC, 미국 차터드 등 외부 출신을 데려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Q : TSMC 파운드리는 풍부한 반도체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고객사에 맞게 제공하는 서비스로 유명하다. 하지만 TSMC에도 올챙이 시절은 있었다.
A : “나는 주로 미국 고객사를 담당했는데, 마이크론을 담당할 때 우리에겐 도저히 고객사 주문을 생산할 기술이 없었다. 고객에게 어떻게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니 능력 없는 우리 설계팀은 제쳐두고 ‘아티산’과 직접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게 TSMC 설계 생태계의 시작이다.”
아티산은 1991년 설립된 미국 시스템 반도체의 물리 IP 회사로 TSMC는 1998년 고객에게 아티산의 라이브러리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발표했다. 이후 2004년 ARM이 42% 프리미엄을 붙여 아티산을 인수한다. 지금도 TSMC와 ARM은 시스템 반도체 IP에서 협력하고 있다.
Q : 한국은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를 부러워한다.
A : “고객을 위해 시작한 R&D 생태계가 27년간 한 발짝씩 성장했을 뿐이다. 대기업 위주인 한국과 달리 대만은 작은 기업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생태계 발전에 더 유리하다. 삼성전자가 생태계를 만들려고 돈을 많이 쓰는 걸 안다. 다만, 더 많은 소기업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인텔 파운드리 성공확률 10%…미국 제조업 부활 쉽지 않아
Q : 생태계 조성에 조언한다면.
A : “삼성이 매우 잘한 건 반도체 장비 회사 ‘세메스’를 키운 거다. 하지만 삼성은 설계 생태계를 개발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 분야 기술은 TSMC가 주도하기에 삼성은 일단 기존 생태계에서 협력해야 하고 후에는 기술적 돌파구가 필요하다. 생태계 전략은 딱 두 가지다. 포기하거나, 시간을 들이거나.”
현재 글로벌 AI 반도체는 ‘엔비디아(설계)+TSMC(파운드리)+SK하이닉스(메모리)’ 조합이 주도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이 설계하고 동아시아가 메모리와 제조를 도맡으며 미국이 이윤 대부분을 가져가던 기존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Q : 현재 구도에 변화가 있을까.
A : “과거에 미국은 반도체 제조를 의도적으로 나라 밖으로 옮겼다. 미국인들이 안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서다. 지금 미국의 젊은 세대도 반도체를 낡은 구식 산업으로 여기기에, (미국 내 제조는) 쉽지 않다.”
Q : 한국이나 대만은 뭘 할 수 있나.
A : “미국이 주도하는 혁신의 초기 파트너로 참여해야 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대만인, 미국 태생 한국인을 활용하면 미국 시장에 일찍, 더 높은 수준으로 진입할 수 있다.”
■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
대한항공보다 이코노미 넓다…유럽·미국까지 뜬 한국 L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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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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