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AI는 인간과의 상호작용 통한 CQ에서 빛 발한다
최적의 문제해결 전략 도출 가능
기계가 인간 대체하는 시대 아닌
상호 협력으로 함께 발전 모색을
15년간 비밀리에 한 여인만 그린 뒤 깜짝 공개해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미국의 유명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작품 중에는 연약한 소녀가 들판에 비스듬히 누운 듯 앉아 먼 언덕 위 작은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땅을 짚은 그녀의 팔은 너무 연약해 부러질 듯하다. 한줄기 싱그러운 바람이 크리스티나의 머리칼을 조용히 흩날린다. 크리스티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사실 그녀는 가냘픈 소녀가 아니라 55세의 이웃집 여인 크리스티나 올슨이었다. 그녀의 소박한 꿈은 언젠가 벌떡 일어나 언덕 위를 단숨에 올라가는 자유(능력)를 얻는 것이었으리라. 우리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 그녀에게는 결코 쉽게 도달하지 못할 절실한 꿈일 수 있다.
과연 인공지능(AI)은 크리스티나의 꿈을 구현할 수 있을까. AI가 아무리 만능이더라도 그녀에게 벌떡 일어나 단숨에 언덕을 뛰어오를 능력을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능한 현실적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AI 자율주행 휠체어’ 또는 ‘AI로 움직이는 외골격 슈트’는 어떨까. AI 프로젝트에는 현실적 목표로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사람이 해야 한다.
먼저 AI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AI 싱킹(Thinking)’이 필요하다. AI싱킹은 기본적으로 컴퓨팅 사고에 뿌리를 두지만, 한발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기계학습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사실상 휴먼-기계의 협력을 의미한다. 컴퓨터에 인간의 뇌 구조를 반영한 AI 알고리즘을 적용해 최적의 문제해결 전략을 짜고 숨은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것이다.
다음은 ‘인간과 AI의 상호작용’이다. AI로 크리스티나를 돕는 작업에는 데이터 수집에서 모델 적용까지 ‘인간의 일과 AI가 할 일’이 지속적으로 결합된다. 인간은 문제정의, 데이터 관리, 알고리즘 선택, 모델 설계, 검증, 개선 등을 수행한다. AI는 데이터 처리 자동화, 모델 학습 및 검증, 실시간 모니터링, 최적화 등의 작업을 한다.
이처럼 인간과 AI의 협업을 통한 상호작용은 ‘협업지능’(CQ·collaborative intelligence)을 창출할 수 있다. AI란 원래 마케팅 용어였다. 현실에서 순수 인공지능은 없다. 인공 기능 기계에 인간과 동일한 진짜 지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된 바도 없다. 모든 인지 기계, 소위 AI는 사람에 의한 데이터 세팅-모델기획-검증·보완을 통해 구현되고, 인간의 지혜와 기계의 데이터 통찰력이 결합되는 CQ가 존재할 뿐이다.
CQ는 인간의 창의성과 도메인 지식의 중요성을 전제한다. AI는 데이터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지만 결정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내려야 한다. CQ를 통해 인간의 지혜와 통찰력을 결합해야 한다. AI라는 용어가 생겨난 1956년 다트머스 회의를 돌이켜 보면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클로드 섀넌 등 10명의 학자가 모였는데 대부분 AI라는 용어 사용에 주저했다. 이유는 인공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뉘앙스, 기술적 역량의 한계,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 우려, 그리고 지능이라는 용어에 대한 철학적 논란이었다. 이 쟁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AI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당시 회의를 주최한 존 매카시의 주도권이 작용했다. 그는 용어의 마케팅적 가치 등을 고려해 밀어붙였다.
실제로는 휴먼-머신이 함께 만들어가는 CQ가 더 적절한 용어다. CQ는 현실을 반영한다. 크리스티나를 돕기 위한 AI 자율주행 휠체어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CQ는 충분히 입증되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AI 시스템이 해결하려는 문제를 정의하고, 프로젝트(AI 자율주행 휠체어)를 기획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설계와 윤리·보안 정책 수립도 고려한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경우는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불명확한 문제정의, 아이디어 부재, 비효율적인 관리 때문인 경우가 많다.
둘째, AI 모델 학습을 위한 데이터 수집과 준비에는 인간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데이터 편향을 해결하고 대표성 있는 데이터세트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의 감독이 필요하다. 전처리 과정에 기계학습도 사용되지만, 데이터 품질을 높이는 과정은 주로 사람의 몫이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 패턴 인식, 반자동 레이블링 등은 AI가 수행한다.
셋째, 개발과 설계 단계에서 환경 인식, 최적 경로 계획 등 학습과 자동 모니터링은 기계가 수행하지만 AI 알고리즘을 평가하고 매개변수를 조정·개선하는 일, AI 모델을 운영 환경에 통합하고 법적·윤리적 기준에 맞추는 것은 모두 인간의 일이다.
넷째, 배포 및 운영 단계에서 기존 시스템과 AI 모델을 통합하고 사용자(크리스티나)의 피드백을 반영해 완성을 추구한다. 크리스티나를 위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사람이, 음성 인식과 눈동자 추적은 AI가 담당한다. 인간은 안전 기준과 시스템을 설계하고, AI는 실시간 충돌 예측과 회피 시스템을 테스트한다. 시스템 업데이트 및 최적화 과정에서도 사람과 AI는 긴밀히 협력한다.
이 순서는 사람과 AI의 협업을 보여주기 위해 단계적으로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단계가 동시에 진행되거나 반복될 수 있다. 또 사람과 AI의 협업은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크리스티나에게 AI 자율주행 휠체어를 만들어주는 예시를 통해 인간과 기계는 지속적으로 협력하며 CQ를 이룬다는 점을 보여줬다. 또 CQ 속에서 인간은 인지능력과 창의적 사고를 계속 높여갈 수 있다. 그리하여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아닌 상호 긴밀한 협력 속에서 AI와 인간이 함께 발전하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CQ 없는 AI는 인간이 불필요하다는 뜻이다. 오늘날 사색 없이 AI에 무조건 맡겨버리는 ‘사고의 의존성’은 우려를 자아내는 터이다. AI 알고리즘이 복잡하다고 AI 출력물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은 인간의 인지적 게으름을 초래해 창의적 문제 해결 노력을 소홀히 하게 된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저하되면 인간은 AI로 대체되기 쉽다.
인간과 AI는 서로가 ‘부족한 중간’을 채워준다. 훈련-설명-지혜는 인간의 장점이고, 연산-증강-반복은 AI의 강점이다. 크리스티나 사례에서 보듯 AI 시스템은 CQ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현덕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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