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8년이 지나도 여전히 반복되는 죽음
“강남역은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곳입니다. 8년 전 여성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여성을 잃었습니다.”(박주희 서울여성회 회장)
17일 오후 7시 30분쯤 서울 서초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서울여성회가 주관하고 여성·시민사회 단체 30여 곳이 주최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8주기 추모 행동’ 집회에 200여 명이 모였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에게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 사건’ 8주기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매일 거리·직장·가정에서 수많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젠더 폭력에 대한 투쟁을 멈출 수 없다” “우리가 반격의 시작”이라고 외쳤다.
당시 피의자는 “여자들에게 더는 무시를 당할 수 없어 범행했다”고 했다. 그러자 여성들은 강남역 현장에서 촛불 집회를 하며 “여자라서 죽었다”고 했다. 8년이 지난 이날,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은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반(反)여성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직장인 여성 전모(32)씨는 “8년간 변화가 없는 현실에 여성들은 불안에 시달린다”고 했다. 대학생 이다경(24)씨는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두려워하며 귀가한다”고 했다. 실제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성 대상 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2018년 거제도 폭행 살인 사건, 2020년 인제 등산객 살인 사건, 2023년 신림 등산로 살인 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 마’ 살인 사건이 이어졌다.
아내나 연인을 살해·폭행하는 일도 계속 발생했다. 지난 6일엔 강남역 인근 건물에서 의대생 최모(25)씨가 연인 A(25)씨를 살해했다. 작년 12월에는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가 서울 종로구의 한 주상 복합 아파트에서 별거 중인 40대 아내를 쇠파이프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여성들은 “남편과 연인도 믿을 수 없다”며 불안을 호소한다. 온라인에선 옛 남자 친구와 인연을 확실히 단절하는 ‘안전 이별 가이드’가 화제다. ‘몰래 이사하고 연락 끊기’ ‘공공장소에서 이별 통보하기’ ‘계속 큰돈을 빌려달라고 하기’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경찰청 집계 교제 폭력 신고는 2020년 4만9225건에서 지난해 7만7150건으로 57% 증가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정부와 국회는 각종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날 집회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은 “정책 효과를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2016년 정부는 강남역 살인 사건 대책 중 하나로 성폭력 상담·의료·형사 절차 지원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바라기 센터’를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현재도 센터 숫자는 당시 36곳에서 39곳으로 큰 차이가 없다.
2022년 한 직장인 남성이 입사 동기 여성을 스토킹하고 살해한 신당역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당국은 온라인 스토킹 범죄 유형을 세분화하고, 스토킹 범죄를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했다. 피해자 국선 변호사 지원과 스토킹 행위자에 대한 위치 추적 전자장치 부착 제도 등이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인 간 데이트 폭력은 여전히 법률 사각지대에 있다. 현행법상 데이트 폭력은 가정 폭력·아동 학대·스토킹과 달리 접근 금지 등 조기에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정치권은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 접근 금지를 가능케 하거나,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는 특별 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교제 관계를 정의할 수 없다’는 이유로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앞두고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여성들이 위협을 받아 신고를 해도 일부 경찰은 ‘사소한 것으로는 신고 접수가 안 된다’ ‘맞았으면 신고해라’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과태료 수준에 그치고, 피해자 역시 신고가 오히려 가해자를 자극한다는 생각에 신고 자체를 무의미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고 한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공정식 교수는 “인구 밀집도가 높은 강남 등 지역에 감시 카메라 설치나 순찰 강화 등 물리적 차원의 안전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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