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만 27㎏, 하루 2시간 눈 붙인다... 지쳐가는 진화대원들
26일 경북 의성의 산불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하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숨졌다. 조종사 박모(73)씨가 제작된 지 30년 된 헬기를 몰고 연기 속을 날다가 전깃줄에 걸려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2일에는 경남 산청에서 산불을 끄던 진화 대원 4명이 숨졌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불 속에 고립됐다.
지난 21일부터 전국 곳곳의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 대원은 1만117명, 헬기는 118대다. 이들은 매일 역대 최악의 산불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26일 산림청 등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51분쯤 의성군 신평면의 한 산에서 물을 뿌리던 헬기 1대가 추락했다.
헬기는 추락한 직후 화염에 휩싸이며 전소했다. 사고 헬기는 미국 시코르스키사가 1995년 제작한 S-76A 기종이다. 물 1200L를 실을 수 있다.
조종사 박씨는 비행 경력 40년의 베테랑이라고 한다. 전날 의성 현장에 투입됐다. 이날 혼자 헬기를 몬 것으로 조사됐다.
조종사들은 박씨에 대해 “후배들이 따르던 따뜻한 선배였다”고 했다.
경찰은 “헬기가 진화 작업을 하다가 전깃줄에 걸려 추락했다”는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의성 산불 현장에서 불을 끄고 있는 조종사 이동규씨는 “그동안 대형 산불 현장을 많이 봤지만 골짜기가 많은 의성은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뀐다”며 “연기 사이로 비행하다 보면 아찔할 때가 많다”고 했다.
조종사 안성철(46)씨는 “조종사들은 한번 헬기를 탈 때 8시간씩 비행한다”며 “2시간에 한 번씩 기름 넣을 때 20분 정도 쉬면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김밥도 먹는다”고 했다. 해가 지면 비행은 끝나지만 오후 10시쯤까지 헬기를 점검하고 작전 회의를 한다. 다음 날 오전 6시면 바로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씨는 “하루에 8시간 비행하면 120번 물을 뿌릴 수 있다”며 “한 번이라도 더 뿌려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산불은 헬기가 공중에서 수천L씩 물을 뿌리며 큰불을 잡으면 진화 대원들이 숲속을 훑으며 잔불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압한다. 진화 대원들은 지상에서 호스로 ‘방어선’을 치고 밀려오는 불길을 막기도 한다.
지난 25일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 현장에서 만난 진화 대원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불길과 마을의 거리는 불과 100m. 뿌연 연기 속에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았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대원들은 호스를 끌고 오솔길조차 없는 산을 타고 올랐다. 경사가 40도는 돼 보였다. 방화복 등 장비의 무게는 27㎏이었다.
곳곳에서 ‘타다닥’ 소리가 나며 불꽃이 튀었다. 경력 30년 차인 박현중(52)씨는 “안동엔 소나무가 많아서 이렇게 불꽃이 튄다”며 “불꽃이 강풍을 타고 날아다니니 더 위험하다”고 했다.
또 다른 대원 안성국(46)씨는 “다 껐다 싶어도 바람이 세게 불면 다시 불이 붙는다”며 “낙엽 아래 숨어 있는 잔불까지 축축하게 죽여야 불을 다 끄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차에서 하루 2~3시간 자면서 이러고 있네요. 그래도 불은 꼭 꺼야죠”라며 씩 웃었다.
전날 끔찍한 화마 속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한 주민들은 “생지옥 같았다”고 했다.
의성 산불이 동해안까지 넘어온 25일 영덕군에선 대피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7번 국도가 꽉 막혔다. 주민들은 “불덩이가 비처럼 쏟아져 차에도 불이 붙었다”며 “너나 할 거 없이 차 문을 열고 나와 뛰었다”고 했다.
영덕 축산항에서는 불길이 바닷가까지 밀고 내려와 주민 100여 명이 방파제 위에 고립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 경비함이 이들을 전부 구조했다. 어민 이모씨는 “뒤로는 바다, 앞으로는 불길이라 죽었다 싶었는데 구사일생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후 5시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 부근을 달리던 한 운전자는 “불길이 몰아쳐 급하게 차를 돌려 역주행했다”고 말했다. 하천에 몸을 던져 목숨을 건진 이들도 있었다. 영양군 석보면에 사는 한 주민은 “뜨거운 열기에 타이어가 터졌다”며 “급한 마음에 차에서 내려 근처 도랑에 몸을 던졌다”고 했다.
청송군 파천면의 한 노부부는 차를 몰고 대피하다 불길에 도로가 막히자 근처 밭으로 돌진했다. 불길은 탈 게 없었던 밭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노부부는 50분쯤 뒤 무사히 탈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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