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의 두 산… 임도 있는 산은 하루 만에 진화, 없는 산은 엿새 탔다

박진성 기자 2025. 3. 3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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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산불 진화] 산불 피해 키운 3가지 원인과 대책
30일 오전 경북 임하면 추목리에서 바라 본 야산이 산불로 인해 검게 변해 있다. /신현종 기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림의 3대 구조적 문제로 턱없이 부족한 ‘임도(林道)’와 헬기 등 열악한 산불 진화 ‘장비’, 불이 잘 붙을 수밖에 없는 침엽수림 위주의 산림 ‘수종(樹種)’을 꼽았다.

◇소방차 투입할 임도… 의성 710m뿐

임도는 소방차가 들어갈 수 있는 숲속 찻길을 말한다. 산불에 대비해 확보한다. 임도가 없는 산은 소방차가 올라갈 수 없어 헬기로 불을 꺼야 하는데 효율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헬기는 안전상 밤에 뜰 수 없는 데다 낮에도 연기나 먼지가 짙으면 발이 묶인다. 산림 당국은 이 때문에 이번 산불을 진압하는 데 애를 먹었다. 헬기를 총동원해 진화율을 올려 놓으면 밤에 다시 불이 번졌다. 산림청은 “임도가 있는 산은 소방차가 숲속 깊이 들어가 밤에도 호스로 물을 뿌릴 수 있다”며 “산불 진화 효율이 5배 이상 높아진다”고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임도로부터 1m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이 1.55㎡씩 증가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임도는 이어진 숲을 갈라 산불의 확산을 저지하는 ‘방화선’ 역할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임도 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산림 1ha당 임도는 4.1m로 독일(54m)이나 일본(24.1m)보다 짧다. 전체 국토 중 산림 비율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핀란드는 5.8m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의 산불 임도는 710m로 조사됐다. 안동과 경남 산청에는 산불 임도가 없다.

29일 오전 경북 의성군의 한 야산에서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산불로 타버린 낙엽 등을 갈퀴로 헤치며 잔불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있다./육군

이번에 산불이 난 울산 울주군은 임도 유무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지난 25일 산불이 난 울주군 화장산은 폭 3m짜리 임도가 있어 낮뿐 아니라 밤에도 진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소방차 92대와 대원 1240명이 밤새워 물을 뿌렸다. 그 결과, 불이 난 지 20시간 만에 주불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임도가 없는 근처 울주군 대운산은 지난 22일 불이 난 이후 128시간 만인 28일 불을 잡을 수 있었다.

2020년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림 특성을 고려한 임도 밀도 목표량 산정 연구’에서 “우리나라 산 1ha당 최소 6.8m의 임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면 임도 1만6000km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산림청은 올해 산불 진화 임도 91km를 늘리는 데만 1574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산이 사유지인 경우 산 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환경 단체의 반대도 넘어야 한다. 강호상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 교수는 “특별법을 만들어 산불이 나기 쉬운 지역은 산 주인의 동의 없이도 임도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윤혜

◇‘물폭탄’ 날릴 대형 헬기 늘려야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산불을 효과적으로 끄려면 한꺼번에 많은 물을 뿌리는 게 중요하다”며 “찔끔찔끔 붓는 물은 산불 확산을 저지하는 수준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5000L 이상 물을 싣고 날 수 있는 대형 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 헬기 50대 중 담수 용량이 5000L 이상인 대형 헬기는 7대다. 담수 용량이 1000∼5000L인 중형 헬기가 32대로 가장 많고, 11대는 1000L도 싣지 못한다.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4일째로 접어든 24일 오전 산불진화헬기들이 덕천강에서 물을 담수하고 있다./뉴시스

대형 헬기 7대는 미국 시코르스키 S-64(담수량 8000L) 기종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2대는 정비 중이어서 이번 산불 때는 5대밖에 투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산림청의 주력 헬기인 러시아제 카모프(담수량 3000L)는 29대 중 16대만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 8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부품 수급이 끊겨 멈춰 서 있다고 한다.

이번에 지방자치단체나 군이 보유한 헬기도 동원했지만 이 헬기들은 담수 용량이 더 적다. 이 때문에 경남 산청에는 주한 미군 블랙호크·치누크 헬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까맣게 그을린 골프장 -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한 골프장 곳곳이 산불에 까맣게 그을린 모습. /연합뉴스

산림청은 지난해 발간한 ‘2023 봄철 전국 동시다발 산불백서’에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불을 막으려면 5000L 이상 대형 헬기가 최소 24대 필요하다”고 했다. 전국 산림을 12개 구역으로 나누고 2대씩은 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산림청이 추가 도입한 헬기는 2대뿐이다. 그마저 중형 헬기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대형 헬기는 1대당 가격이 500억원이 넘는 데다 발주를 넣어도 도입까지 3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시코르스키 S-64 기종은 1대당 가격이 505억원에 달한다. 대형 헬기를 생산하는 나라도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손에 꼽을 정도라 물량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래픽=송윤혜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대형 헬기를 충분히 도입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군 헬기를 개조해 쓰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산불 피해를 자주 겪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 방위군에 ‘소방 전담팀’을 꾸려 대기한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시즌에는 블랙호크나 치누크 헬기를 산불 진화용으로 쓴다.

산불이 나면 진화 대원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산불 감시원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매년 단기 일자리로 모집하다 보니 ‘노인 일자리’가 되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산불 감시원의 평균 연령은 61세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감시원에 대한 전문 교육을 강화하고 근무 형태를 무기 계약직으로 바꾸면 지원하는 청년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침엽수 줄이고 활엽수 늘려야

침엽수는 기름 성분인 송진을 품고 있기 때문에 산불이 발생하면 불쏘시개나 화약 역할을 한다. 소나무 송진의 주요 성분은 불에 타기 쉬운 탄화수소인 ‘테르펜’이다. 송진은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횃불의 연료로 사용됐을 정도로 인화성이 높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나무는 활엽수에 비해 1.4배 더 뜨겁게 타고 불이 지속되는 시간도 2.4배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오후 경북 의성군 신계리 산불 모습. /장련성 기자

그런데 우리나라는 침엽수림이 넓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 산림(629만8134ha) 중 침엽수림이 차지하는 비율은 36.9%로 활엽수(31.8%)보다 높았다. 우리나라는 단단한 화강암 지반이 많아, 예전부터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잘 자랐다. 침엽수는 뿌리가 넓게 퍼져 단단한 땅에도 잘 자라는 반면 활엽수는 무른 땅에서 잘 자란다. 뿌리가 아래로 깊게 자라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과 안동시도 지반이 단단한 곳들로, 침엽수가 많이 자란다. 산림청 관계자는 “경북 산림 일대를 가보면 흙을 3~4cm만 파내도 단단한 지반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안동시의 침엽수림 비율은 52.9%로 전국 평균보다 16%포인트 높고, 의성군의 침엽수림 비율도 51.4%다.

그래픽=송윤혜

전문가들은 이번에 불탄 지역은 활엽수로 수종을 변경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간벌(間伐)’ 작업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간벌은 빽빽한 숲에서 나무를 솎아내는 것이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숲이 지나치게 빽빽하면 산불이 더 빠르게 퍼진다”며 “간벌을 하면 잡목이 줄어 진화 작업도 쉬워진다”고 했다. 경남 산청 산불의 경우 나무와 수풀이 얽혀 있어 진화에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문화유산이 인근에 있거나 산불 위험이 높은 곳은 간벌로 나무 사이 간격을 띄워주고 일본처럼 방화림(防火林)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불에 잘 타지 않는 수종을 선별해 방화림을 만든다. 방화림으로는 주로 굴참나무,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등을 많이 쓴다. 침엽수 사이사이에 이러한 방화림을 섞어 심어도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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