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버린 고양이가 부른 멸종 비극…‘새들의 천국’이 위험하다
어청도 길고양이 증가…수천㎞ 날아온 새들 ‘쉬운 사냥감’
인간이 부른 생태계 교란…제주 까치 방사 사례 돌아봐야
지난 2일 철새들의 이동 시기를 맞아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탐조에 나섰다.
어청도는 군산항에서 뱃길로 72㎞, 중국 산둥반도와는 300㎞ 떨어진 섬으로, 서해 중부 해역 가운데 육지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다. 2021년 11월부터 새로운 배가 취항하면서 기존 2시간20분이었던 군산~어청도 항해 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됐다.
어청도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사이 이동하는 여름 철새에게 매우 중요한 길목이다.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다양한 새들이 해마다 번식지로 향하기 위해 수천 ㎞를 날아오는데, 어청도는 이런 새들에게 정거장 역할을 한다. 진홍가슴, 긴다리솔새사촌, 흰눈썹황금새, 붉은부리찌르레기 등 어청도는 희귀 조류들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어청도를 찾아오는 새들의 개체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해는 어청도에 새가 없다는 것이 탐조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화두가 되었고, 어청도 주민들 역시 같은 생각이다.
기후 변화에 민감한 조류의 이동 특성 때문일까? 혹은 어청도에 농경지가 사라지며 생긴 환경 변화 때문일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어청도에서 보기 어려웠던 고양이 개체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
관광객이 버리고 간 고양이도 있고, 어선에서 키우다 버려진 길고양이들도 있어서 이들이 만나 번식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새도 아름답지만, 개와 고양이도 사람에게 친숙하고 귀여운 동물이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외모의 이면에는 고양이로서의 포식자 본능이 숨어있다. 고양이는 새를 먹이가 아닌 놀잇감으로 사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6년 국제 과학저널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Invasive predators and global biodiversity loss)을 보면, 길고양이는 전 세계 생물 다양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의 저자인 호주 생태학자 팀 도허티 디킨대 교수와 연구진들은 특히 길고양이들에게 악영향을 받은 종은 멸종위기 조류였다고 전했다. 연구 결과, 조류 약 40종의 멸종 원인이 길고양이에게 있었다.
앞서 뉴질랜드 스티븐스 섬에서 희귀새 한 종이 멸종한 사례가 유명하다. 이 섬에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참새목 조류 ‘스티븐스 굴뚝새’가 살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나는 기능이 퇴화했다. 스티븐스 섬에는 쥐가 없었기 때문에 굴뚝새가 쥐를 대신해 곤충을 잡아먹고 살았다. 그런데 1894년 섬의 등대지기가 고양이를 데려오면서 사달이 났다. 고양이는 날지 못하는 굴뚝새를 쉽게 사냥했고, 결국 섬에서 굴뚝새는 절멸했다.
날지 못하는 스티븐스 굴뚝새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어청도에 도착하는 새들도 수백~수천 ㎞를 날아와 기진맥진 지쳐 섬에 당도한다. 고양이에게는 손쉬운 사냥감이 된다. 오랜 비행에 지쳐 잠시 쉬어가야 할 작은 새들이 안전한 경유지라고 여겼을 어청도에서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고 있다. ‘새들의 천국’이라 불렸던 어청도가 이제는 새들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주민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청도는 여름 철새들의 매우 중요한 경로로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많은 탐조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탐조인들의 유입은 자연스레 어청도 주민들의 삶에 경제적 기여를 하게 된다. 길고양이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어청도의 생태계는 물론 마을 경제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다.
진귀한 토종 동물이 서식하거나 존재하는 섬에 그동안 없던 동물이 들어오면 생태계 교란과 절멸을 초래할 수 있다. 제주도의 까치가 좋은 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주도에서는 까치를 관찰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9년 아시아나항공과 일간스포츠가 창간 기념행사를 하면서 까치 53마리를 제주도에 방사했다. 텃새인 까치는 이후 현재까지 제주도에 정착해서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다행히 어청도에 아직 까치와 참새는 없다. 누군가 일부러 들여오지 않는 이상, 참새와 까치가 날아와 텃세를 부릴 일은 없는 것이다.
몇 년 새 어청도에 길고양이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생태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무심히 버린 고양이가 수천 년을 이어온 새들의 땅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갈 줄 누가 알았으랴. 불필요한 생명이 죽어 나가지 않도록 슬기롭게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개입이 부른 일이다. 바로잡는 것이 우리 몫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건희 여사, 캄보디아 총리 오찬 참석…153일 만에 공개 행보
- [속보]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에…추미애 탈락
- [속보] 법원, 의대 정원 ‘집행정지’ 여부 오후 5시 결정
- 윤 대통령 만난 조국 “과장된 억지 미소…저는 눈으로 말했다”
- 이창수, 김건희 조사 “충분한 조치할 것”…친윤 검사 “동의 못 해”
- 김호중 소속사 대표 “대리 출석 내가 지시…음주는 아냐”
- 전남도청 향했던 청년, 5·18 ‘뒷것’으로 남다
- 국민 절반 “정치성향 다르면 밥도 같이 먹기 싫어”
- 매도 살고 수달도 사는 습지 섬…‘여행 맛집’이구먼!
- 피 솟구칠 것 같은 분노 감정, 혈관 장애 부른다